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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73 ㅣ 단풍주의구간 ㅣ 안영선

용인신문-시로 쓰는 편지 73



단풍주의구간

안영선

풍경은 말의 재단사였을지도 몰라

(단풍주의구간입니다 주의 운전하시기 바랍니다)
내비게이션의 낭랑한 소리가 들렸지
알록달록 물든 단풍이 골짜기를 품고 있었어
하늘은 온통 바다 빛으로 채색된 날이었을 거야
말은 저속으로만 풍경을 즐기는 시간을 허락했어
아내는 모든 말이 단풍처럼 선홍색이거나 노란색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지

풍경은 차창에 가까워질 때마다 선명한 말을 쏟아냈어
저 앞선 곳 고라니 한 마리 풍경에 갇혀 쓰러져 있었지
(야생동물출몰지역입니다 주의 운전하시기 바랍니다)
붉게 물든 풍경은 가끔 말을 놓치기도 하나 봐
말을 놓친 풍경이 도로 위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지

단풍주의구간
아내에게서 처음 들어본 말이야
두근대는 아내의 속내를 귀가 먼저 읽어낸 말이지
도로표지판에 없는 말
인터넷에 검색되지 않는 말
풍경이 꼭꼭 숨겨두었다 이 계절에만 끄집어내는 말이었지

아내는 시월이면 단풍주의구간을 달리고 싶어 했어
풍경이 전하는 말을 듣고 싶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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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가 지나고, 이제 초록들은 단풍을 준비하는 것으로 분주합니다. 가을에는 늘 물들어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요. 시인은 ‘풍경은 말의 재단사’라는 가설을 첫 문장으로 내세웁니다. 이채롭게도 시가 이어지는 사이, 문득문득 내비게이션의 목소리가 들려오지요. 길 따라 단풍을 바라보는 동안, 아내의 마음은 풍경에 물들어 “모든 말이 단풍처럼 선홍색이거나 노란색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입술 끝에서 탄생한 ‘단풍주의구간’이라는 말. 모든 예술은 음악을 지향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단풍주의구간’이라는 말은, 풍경이 들려주는 안내 음악을 상상하게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언어는 시인의 말대로, 도로표지판과 인터넷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풍경이 꼭꼭 숨겨두었다” 어느 한 “계절에만” 들려주는 선물인 것이지요. 시인은 제1회 ‘문학의 오늘’ 신인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그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통해 풍경의 연금술사가 되기를 바라며 믿으며!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