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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77 l 사랑법 l 강은교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77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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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랑을 완성하는 방법이 있다면, 모두 귀를 기울이지 않을까요. 여기 시인이 들려주는 ‘사랑법’이 있습니다. 묵독도 좋지만 낭독이 더 알맞은 시편이지요. 대상이 원하는 것을 존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답니다.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침묵할 것.” 어쩌면 존중 이후의 침묵이 곧 사랑의 완성인지도 모르겠군요. 꽃과 하늘과 죽음에 대해 침묵의 언어로 소통하는 일은 경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쉽게 꿈꾸고, 쉽게 흐르고, 쉽게 꽃 피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네요. 이제 철학자의 말에 귀 기울여 볼까요. 바디우에 의하면 사랑은 만남으로부터 발생하는데, 그는 이 만남을 ‘사건’이라고 지칭합니다. ‘사건’은 주어진 상황을 지배하는 법칙성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오로지 우연의 형식을 통해서만 나타나게 되지요. 다시 시인의 사랑 이야기로 돌아오면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그대 등 뒤에 있다.”는 깨달음은 일생일대의 ‘사건’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랑이여, 오라.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