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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85 ㅣ늦게 온 소포 ㅣ고두현

시로 쓰는 편지 85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니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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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새 마음으로 잘 출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소포’라는 말 참 좋지요. 그것도 ‘늦게 온 소포’라니, 무슨 사연이 담겨있는 것일까요. 다름 아닌 남쪽 섬에 계신 어머니가 보내오신 ‘겨울 안부’라고 합니다. ‘겨울 안부’라는 말 속에는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따뜻한 입김이 스며들어 있고…. 그 입김에 고단한 일상마저 일순 환해져오는 것을 느낍니다. 이 풍경을 조용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네요. 마침내 얼굴을 드러내는 유자 아홉 개. 이어지는 어머니의 전언이 아니어도, 유자의 그 말간 얼굴에서 전언보다 더 뭉클한 마음을 바라보게 됩니다. ‘밤새 남향의 문’을 닫지 못하는 것도 한 사람의 마음이 그곳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겠지요. 멀리서 가까이서 유자향이 온 방안에 가득하고, 무연히 시큰거리는 콧등에도 다 ‘이유’가 있겠지요. 그보다 길고 긴 ‘내력’이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겠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벽 눈발 글썽이는 날. 그 글썽거림의 힘으로 맞이하는, 새해 아침을 당신에게.

이은규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