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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87ㅣ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ㅣ백무산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7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

백무산


그대에게 가는 길은 봄날 꽃길이 아니어도 좋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새하얀 눈길이 아니어도 좋다

여름날 타는 자갈길이어도 좋다
비바람 폭풍 벼랑길이어도 좋다

그대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그대는 그곳에서 그렇게 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일렁이는 바다의 얼굴이다
잔잔한 수면 위 비단길이어도 좋다
고요한 적요의 새벽길이어도 좋다
왁자한 저잣거리 진흙길이어도 좋다
나를 통과하는 길이어도 좋다
나를 지우고 가는 길이어도 좋다
나를 베어버리고 가는 길이어도 좋다

꽃을 들고 가겠다
창검을 들고 가겠다
피흘리는 무릎 기어서라도 가겠다

모든 길을 열어 두겠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하나일 수 없다
길 밖 허공의 길도 마저 열어두겠다

그대는 출렁이는 저 바다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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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미래에게 가 닿을 수만 있다면, 그 길이 꽃길이든 눈길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요. 자갈길 혹은 벼랑길이라도 달게 걷고 걷게 될 것 같습니다. 걷는 것만이 방법이라면 말이지요.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로운 발돋움일 테니까요. 지금의 ‘나’를 통과하는 것, 지우는 것, 베어버리는 것만이 다른 형질의 ‘나’를 만나는 지름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일에 필요한 것은 가닿고자 하는 또렷한 지향점. 다른 것은 군더더기가 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준비했느냐 질문하신다면, 꽃과 창검과 피흘리는 무릎을 마련했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백무산 시인의 선언처럼 ‘모든 길을 열어 두겠다’라는 문장은, 이미 오고 있는 시간들을 향해 활짝 열려있습니다. 그대, 저 출렁이는 바다의 얼굴은 밀려왔다 밀려가는 것으로 전언을 대신 할 뿐. 바다는 늘 청춘! 이제 우리의 몫은 열려 있는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것. 언제나 그렇듯 첫 발을 내딛는 것으로.

이은규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