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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철 초부리 시첩

   
오는 봄, 한 몸 한 때의 인연으로 맞아 어우러지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봄으로 가는 길목에 눈도 참 많다. 햇살은 벌써 봄을 머금어 따스한데 눈은 내리고 또 녹아내려 낙숫물 소리와 개울물 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덕분에 극심했던 겨울 가뭄도 어지간히 풀렸을 테고 마른 나뭇가지들도 부지런히 물을 뿜어 올리며 뽀얗게 봄을 부르고 있다.

올 겨울엔 한겨울보다 끄트머리 이 봄 길목에서 참 많은 눈을 봤다. 천지간이 갑자기 안개처럼 흐려졌다 마침내 보일 듯 말 듯 결정이 되어가며 내리는 눈. 잘 바순 백설기 쌀가루처럼 내리는 눈. 직선으로 쑥쑥쑥 쏟아져 금방 큰 무게로 쌓이는 눈. 그러다 이내 목화솜처럼 포실하고 부드럽게 내리는 눈 등등.

햇살이 비추고 눈이 그쳤는가 싶으면 햇살의 몸뚱인양 환하게 빗금 치며 내 눈 속으로 들어오는 눈. 사선斜線으로 내리며, 서로 부딪치며 다시 도약하는 발레의 파드되 동작으로 군무群舞를 펼치는 저 환한 햇살 속의 눈발들을 뭐라 이름 지어 불러야 좋을까.

눈 다 그치고 무엇이 또 아쉬운지 내린 눈들이 바람에 휘날려 다시 솟구쳐 오르는 저 눈발들. 나무들이 무겁게 쌓인 눈을 털어내며 일으키는 하얗디 하얀 눈보라는 또 뭐라고 불러야할 것인가. 이름을 헤아려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참 많은 눈들과 그 눈들의 몸짓을 올 겨울 끄트머리는 보여줬다.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다 보면 야산으로 빙 둘러 싸인 우리 초부리 초록전원마을에는 많은 새들이 찾아든다. 뒷산 까마귀봉에 둥지 튼 까마귀들도 마을을 낮게 비행하며 뭔가를 간청하듯 정겹게 울어댄다. 숲속에서 먼먼 사랑 혹은 설움을 구구구구 울어대던 멧비둘기들도 눈 쌓인 나뭇가지 사이로 날아들고.

새벽녘부터 일어나 나무목탁을 부지런히 두드려 천지를 깨우던 딱따구리도 날이 밝으면 내 창 나뭇가지까지 날아들어 기웃기웃하다 나무 파는 시늉만 보여주고 날아간다. 눈이 천지간을 뒤덮은 날에는 큰 새, 작은 새, 이름도 모를 새들이 이렇게 내 창 까지 날아들어 뭔가를 간청하듯 지저귀다 간다. 눈 쌓여 먹을 것 없어 배고프다는 듯이, 그래도 봄이 오고 있으니 참아내라는 듯이. 제각각의 음색으로 울고들 간다.

잘 알아보면 이런 여러 눈들과 새들에게도 그 생김새와 내력에 딱 어울리는 이름들이 다 있을 것. 그러나 그런 이름들을 굳이 찾아서 알아보기가 그 눈과 새들 앞에서는 싫었다. 가슴 뭉클하게 들었던 음악이 작곡이나 연주의 내력을 알고 나면 그 감동이 줄 듯 이 계절의 길목에선 이름이나 언어의 중재 없이 그냥 그대로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뜻을 못 찾고 허허로이 흩어지는 소리들의 환한 실루엣 하얗게 왔다 온 듯 만 듯 스러지는 겨울 끝자락 햇살에 일렁이는 바람결 빛깔 눈 뒤집어쓴 나무들이 털어내는 눈보라 맺혔다 풀어지는 의미와 소리의 무늬 아득히 나뉜 하늘과 땅 발돋움하다 끝내 무너져 내리는, 한 몸이었다 지금은 떨어져 사는 것들의 안쓰러운 자세 서로 서로 부르다 하얗게 하얗게 흩어지는……

굳이 명명命名하여 뜻에 갇히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이런 의미도, 문맥도 흩트린 ‘ㅎ(히읗) 이미지’란 시로 터져 나오게 했다. 노자老子도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며 언어로 전하는 것은 도나 실재가 아니라 했고, 보리수 아래서 득도해 평생 말로써 불법을 펼친 부처님도 열반할 때 “나는 한마디도 안했다”라 하지 않았던가.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실제 사랑하는 그 깊고 넓은 마음 다 전할 수 없다는 것쯤은 우리 모두 익히 다 체득하고 있지 않은가. 하여 눈과 새들의 실재와 느낌으로, 마음으로 온전히 통하기 위해 굳이 그것들의 이름을 알아 뜻, 인식의 틀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동박새 한 마리 창 밖 나뭇가지에 앉아 무언가를 지저귀고 있다. 며칠 전 눈 쌓여 천지가 은산철벽銀山鐵壁같이 빛나며 막막했던 아침에 날아와 한참을 지저귀며 문득 모골을 송연하게 했던 작은 새이다.

가뭄이 극심했던 지난여름 우리 집 통유리 창 밖에 두 마리 동박새가 떨어져 있었다. 날다 폭염에 목말라 떨어졌는지, 유리창을 하늘로 알고 부딪쳤는지 나뒹굴어져 있었다. 접시에 물을 받아 두 마리를 올려놓고 나무 그늘에 두고 한참을 안쓰럽게 지켜봤다. 몇 시간 후 한 마리는 살아나 날아갔고 한 마리는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그때 살아서 날아간 새가 찾아와 인사하고 있다는 직감에 뒷골이 찌르르 했는데, 며칠째 조석으로 날아들어 이렇게 한참을 지저귀다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동박새의 이 지저귐을 대체 뭐라 말하고 형용해야할 것인가. 천지간 한 몸이었다 하얗게 흩어졌다 다시금 이어지곤 할 이런 인연들을. 오는 봄과도 말과 생각이 아니라 그냥 나도 한 때 봄이었으니 하고 한 몸으로 맞아 어우러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