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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94ㅣ오늘의 결심ㅣ김경미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4

오늘의 결심
김경미


라일락이나 은행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지 않겠다
초저녁 별빛보다 많은 등을 켜지 않겠다
여행용 트렁크는 나의 서재
지구 끝까지 들고 가겠다
썩은 치아 같은 실망
오후에는 꼭 치과엘 가겠다

밤하늘에 노랗게 불 켜진 보름달을
신호등으로 알고 급히 횡단보도를 건넜으되
다치지 않았다

생각하면 티끌 같은 월요일에
생각할수록 티끌 같은 금요일까지
창들 먼지에 다치거나
내 어금니에 혀 물린 날 더 많았으되

함부로 상처받지 않겠다
목차들 재미없어도
크게 서운해하지 않겠다
너무 재미있어도 고단하다
잦은 서운함도 고단하다

한계를 알지만
제 발목보다 가는 담벼락 위를 걷는
갈색의 고양이처럼

비관 없는 애정의 습관도 길러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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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굳게 정하다, 봄날의 결심. 요즈음 무엇을 하기로 결심하셨는지요. 하지 않기로 결심하셨는지요. 누군가는 꽃과 나무보다 높은 곳에 살고, 누군가는 꽃과 나무와 눈을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행용 트렁크가 서재일 때, 주인의 모든 발자국은 살아있는 문장이 되겠지요. 그러한 트렁크라면 지구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문득 지구 끝에서 만나고 싶은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 봅니다. 삶은 숭고한 그 무엇, 일상이 모여 일생이 된다는 말. 그 무거운 말 앞에서도 때로 하루하루가 티끌 같아 보이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티끌이 우주를 품는 이치 너머의 이치. 다정이 병(病)이어서 상처를 받고, 서운함을 느끼고 결국 고단함이 속눈썹 그늘 아래 쌓이기도 합니다. 두보는 꽃잎 한 점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든다고 말했지요. 당신의 발자국이 저만치 오고 가는 봄날…. 결심과 실행 사이, 문장과 행간 사이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 애정의 습관이여 안녕, 안녕.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