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려 일하고 함께 먹는 밥맛의 이 살가움이라니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국민시’이다. 이 시조를 지은 약천 남구만 묘소를 바로 눈 건너편에 둔 초부리 초록전원마을.
마을 입구 도로가 칡덩굴 등으로 무성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그야말로 동창이 밝아오는 새벽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칡덩굴도 자르고 무성한 나무들도 치고 잡초도 뽑고 길도 깨끗이 쓸고 하며 마을 동구(洞口) 청소를 부지런히들 했다.
이른바 울력이다. 촌락사회에서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무보수로 하는 일의 순우리말이 ‘울력’이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로부터 ‘오늘은 어디어디로 울력 나간다’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는데 나이 들면서, 도회에 살면서 잊혀져가던 ‘울력’이란 말이 새벽부터 땀 줄줄 흘리며 신나게 일하다보니 절로 떠올랐다.
일하면서 짬짬이 이 집은 어떻고 저 집 살림은 어떻고 등의 이야기도 나눴다. 일반 술자리에서 나누는 이야기들하고는 그 내용이니 질에서 다르다. 어느 누구의 흠도 안 잡고 안녕만을 바라는 무해한 이야기들. 무슨 이익을 도모하는 이야기들이 아닌데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먼동이 트기 전에 시작했는데도 열심히 일하다 보니 해가 떠오르고 후줄근히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칡덩굴을 파헤치고 돌무더기들을 가지런히 하다 허리를 펴보니 앞산 뒷산에서 뻐꾸기들이 저네들 소리에 저네들이 공명하며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나도 몰래 잡았던 칡덩굴 끝부분을 떼어 입으로 가져가 질근질근 씹어보았다. 비릿한 내음이 입 안 가득 번지며 그 씁쓰름한 맛이 이런 시상을 불러왔다.
다 떨어져가는 이빨로
울울창창 뻗어가는 칡덩굴
여린 순을 따 씹는다
쌉쌀하게 번지는 초근목피
그 시절 그 허기 뻐꾹,
뻐꾸기 울음에 보리모개 익어 가는데
여직도 철없는 허기만 까칠하게
목에 걸린 이 나이
씁쓸하다.
보리타작까진 아직 멀어 배고프던 유년의 보릿고개 추억이 칡덩굴 맛에 씁쓸하게 떠올랐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자연과 유리되지 않았고 또 마을 공동체 이웃들이 있어 배고픔도 넉넉하게 넘겼거늘. 지금은 배고픔도 없는데 걸신들린 양 허기만 가득 찬 다 떨어진 이 나이, 세태가 서글펐다.
네 시간 가량 울력을 마치고 다함께 마을 인근 올갱이해장국을 먹으러갔다. 그 시원하고 맑은 국물을 먹으며 또 어린 시절 냇가에서 올갱이도 줍고 가재도 잡고 중태기, 꺾지 등의 물고기도 잡아 모두모두 함께 넣고 끓여먹던 천렵놀이가 떠올랐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을 하여 보세/해 길고 바람 잔잔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겠네/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수단화(水丹花) 늦게 핀 꽃에 봄빛이 남았구나/촉고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반석에 솥을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팔진미 오후청(五候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
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조선 헌종 때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중 한 대목이다. 보리 이삭이 패고 고추와 마늘과 감자도 실하게 여물어가는 초여름. 장마에 대비해 고랑도 파고 지붕도 고쳐놓는 등 열심히 일하고 나서 동네 사람들 모두모두 어우러지는 천렵놀이를 그린 대목이다.
저 고조선 청동기시대 넘어 더 먼 선사시대 조상들의 수렵시대를 잊지 못해 앞 시내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 끓여먹는 천렵놀이는 여직도 계속되고 있다. 시골 촌락에서는 그 형태 그대로, 도심 속에서는 여름철이면 더욱 성행하는 민물매운탕집 등에서 우리네 멋과 맛이 핏속에 유전돼오고 있다.
마을 울력을 하고 함께 모여 막걸리 잔을 나누며 먹는 올갱이해장국의 그 살가운 맛이라니.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뿔뿔이 헤쳐 살다 모두모두 함께 모여 일하고 먹는 그 맑고 밋밋하지만 죄 없이 편안한 공동체의 맛 또한 우리민족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겠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