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독수리 날갯짓과 꿈으로 용기백배하시길
이경철(시인, 전 중앙일보문화부장)
얼마 전 용인시청 로비를 하늘의 제왕 독수리들이 점령했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커다란 날개가 등골 서늘한 바람을 일으켰다. 같은 시각 무더위가 절정을 경신하고 있는 한여름 시청 앞 물놀이 장에서는 용인시가 마련한 풀장 혹은 주위 파라솔 그늘에서 시민들이 가족들과 더불어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그런 용인시민들에게 저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온 독수리들이 만년설 바람을 선사했다.
지난 8월 1일, 용인시청 1층 로비갤러리에서 김종경 사진전 ‘독수리 용인 하늘을 날다’ 개막식이 열렸다. 지난겨울 용인에서는 사상 최초로 관찰된 독수리 떼를 작가가 겨우내 찍은 사진 중 50여 점을 전시해 놓았다. 길이가 3m에 이르는 날개를 쭉 펴고 막 날아오르는 독수리 한 마리가 우선 관객들의 시선을 제압하며 하늘의 제왕임을 수긍케 한다.
이어 쭉 이어진 사진 작품들 속에서는 독수리들이 각자 자신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고난스런 삶의 역정을 들려주고 있다. 오래 숨죽여 참고 기다린 작가의 앵글 앞에서 독수리들은 우리네 삶과 다를 게 없을 그들만의 용기와 좌절, 행복과 궁핍을 털어놓고 있다. 카메라 앵글의 긴장된 떨림의 긴 기다림 앞에서는 피사체도 그들의 속내까지 드러내는 법.
날개 죽지에 힘을 주고 튼실한 발로 뛰며 서로의 사랑을 전하는 한 쌍의 독수리와 그걸 바라보는 어린 독수리 가족. 항소의 불거진 어깨 근육과 맨몸으로 불알까지 내놓고 노는 아이들로 가족의 정, 그 끈끈한 애정의 질감을 그리려했던 이중섭 화백 그림 속 그 질감이 김종경 작가의 앵글 속에서도 묻어났다.
서로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먹이를 힘차게 뜯고 있는 무리들의 즐거운 순간, 먹이를 두고 텃새인 까치와 까마귀들에게 쫓기는 참담한 자존심의 순간, 먹이는 없고 땅바닥에 널린 검은 비닐봉지에 고개를 떨군 낙담의 순간. 그리고 소나무 위에 외롭게 앉아 떠나온 저 시베리아나 히말라야 설산 고향을 한없이 바라보는 향수에 젖은 눈빛의 순간순간들을 작가는 애정으로 잡아내고 있다.
자신보다 덩치가 훨씬 큰 독수리 등에 올라타 독수리를 몰아내고 있는 까마귀를 보며 우리 동네 초부리 뒷산 까마귀봉 그 까마귀들의 지난겨울이 떠올랐다. 춥고 배고픈데 눈에 덮인 산과 들은 먹을 것도 다 덮여버렸나. 낮게 날며 까욱까욱 배고프다고 울먹이다 내 창가까지 내려와 앉던 까마귀들. 그놈들이 날아가 그 먼데서 온 독수리들을 텃세 부리며 쫓아내고 있다니.
개막식에서 작가는 “독수리의 꿈을 보여 주려했다. 독수리의 꿈은 살아남는 것이다. 이 어려운 환경 속 어떻게든 살아남아 가족을 보전하려 수만리 그 먼 길을 날아든 그들의 꿈에서 우리도 용기를 얻기 위해”라고 이번 전시 목적을 밝혔다.
그렇다. 독수리는 이 지구상에 만 마리도 채 안 되는 멸종 위기종으로 우리도 천연기념물로 보호하고 있다. 시베리아의 혹한을 피해 살아남으려 백 마리가 무리지어 이 용인까지 날아든 이 보배로운 손님들을 시민들은 잘 보호해 그들 고향으로 보내야할 것이다. 더불어 독수리의 꿈과 용기, 결단으로 우리도 난관을 극복할 힘을 얻자는 게 작가와 개막전에 참석한 시장의 말이다.
“설산에 사는 히말라야 독수리들은/먹이를 찢는 부리가 약해지면/설산의 높은 절벽에 머리를 부딪쳐//낡은 부리를 부숴버리고/다시 솟구쳐 오르는/생명의 힘을 얻는다//백지의 눈보라를 뚫고 나아가지 못하는/지상의 언어가/펜촉 끝 절벽에 걸렸을 때//낡은 부리를 떨쳐버리고/설산의 절벽을 타고 날아오르는 히말라야 독수리/두개골이 눈앞에 떠오른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최동호 시인의 시「히말라야의 독수리들」이다. 독수리는 스스로 새롭게 다시 태어나 삶을 이어가기 위해 저렇게 갱생의 노력을 하는데 시를 업으로 삼는 시인도 그래야할 것 아니겠느냐 다짐하고 있는 시이다. 그리하는 게 어디 시인뿐이겠는가. 우리 모두 독수리의 뼈를 깎는 결단의 용기와 노력을 본받아 우리네 삶을 매양 값있고 새롭게 해야 할 것을.
독수리는 길면 70년까지도 산다. 단 갱생의 결단이 있어야 그리 오래 살아갈 수 있다. 30년 넘게 살다보면 부리도 발톱도 깃털도 무뎌진다. 그때 용기 있는 독수리는 홀로 높은 절벽으로 날아가 반 년 쯤 부리를 바위에 무수히 부닥쳐 깨뜨린다. 부리가 다시 나면 그 부리로 발톱도 뽑아버리고 날기에 부담스러운 낡은 깃털도 뽑아 새로 나게 한다. 그야말로 각고의 노력으로 다시 태어나 반생을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럴 용기가 없는 독수리는 30년쯤에 수명을 다하고 마는 것이고.
독수리의 이런 갱생의 결단과 용기, 어떠신가. 우리들 각자 나름으로는 물론 선진 복지국 문턱에서 기진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교훈과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독수리들이 우리 용인으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또 다시 기회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독수리 사진전을 관람하며 독수리의 힘찬 날갯짓을 꿈꾸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