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삽십 분
김상혁
미친 아이가 집 앞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저기서 언덕을 밀고 있어요.
그래 나는 호의를 베풀려고 언덕이 얼마나 움직였는지 되물었다.
-어제는 십분, 오늘은 이십 분을 밀었지요.
여름의 뜨거운 정오라서 먼 풍경은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가 계속 잘하고 있었구나.
시간이 정말 흐르고 있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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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아이’(아마도 세상이 그렇게 호명했을)와 ‘내’가 마주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고사, 우공이산(愚公移山)이 떠올리게 하는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지나친 고민의 시간 대신 발자국을 내딛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는 어떤 말씀도 아니고 가르침은 더더욱 아니고, 한 방향을 다같이 바라보자는 정언명령이 아니지요. 그저 질문하고 답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백지 속에 찍힌 활자들이 서로 어울려 한 세계를 이루는 기적, 시만이 할 수 있는 그 능력을 바라봅니다. 아이와 나는 서로 조응하기도 하지만, 극과 극의 당김 속에 팽팽한 기류가 흐릅니다. ‘먼 풍경이 흔들리는 사이’, 아이는 언덕을 밀고 있었겠지요. 그 행위를 바라보는 나는 말합니다. “아이가 계속 잘하고 있었구나./시간이 정말 흐르고 있겠구나.” 우리는 그들은 바라보며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더 많은, 젊은 우공이여, 오라.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