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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ㅣ북방(北方)ㅣ안도현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북방(北方)

 

안도현

 

 

물 좋은 명태의 대가리며 몸통을 칼로 쫑쫑 다져 엄지손톱 크기로 나박나박 썬 무와 매운 양념에 버무려 먹는 찬이 있다 어머니가 말하기를, 명태선이라 한다 국어사전에는 물론 없다

 

 

이 별스럽고 오래된 반찬은 눈발의 이동경로를 따라 북방에서 남으로 내려왔을 것 같다 큰 산에 눈 많이 내리거나 처마 끝에 고드름 짱짱해야 내륙의 부엌에서는 도마질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이것을 나는 노인처럼 편애하였다, 들창에 눈발 치는 날 달착지근한 무를 씹으면 입에서 눈 밟는 소리가 나서 좋았고, 덜 다져진 명태뼈가 가끔 이에 끼여도 괜찮았다

 

 

나도 얼굴을 본 적 없는 할아버지 맛있게 자셨다는 이것을 담글 때면 어머니는 솜치마 입은 북쪽 산간지방의 여자가 되었으리라 그런 날은 오지항아리 속에 먼 바다를 귀히 모신다고 생각했으리라

 

 

갓 담근 명태선을 놓고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 오늘 저녁, 눈발이 창가에 기웃거린다 북방한계선 밑으로 내려가고 싶지 않은, 수만 마리 명태떼가 몰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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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겨울이 북방을 향해 서 있습니다. 이 시와 마주하며 백석을 떠올리는 것은 겨울이 맵찬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추워야 겨울일 테니까요. 백석은 한 겨울 국수 나눠먹는 풍경을 시 안에 담고는 했습니다. 오늘의 시인은 북방식 명태무침인 명태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 안에서의 음식은 물질이 아니라, 정서이지요. 누구와 함께 어떻게 나눠 먹느냐에 따라 음식 맛은 완성되고 또 결정됩니다. 그리고 기억으로 남아 영원하겠지요. 오늘도 우리는 우리라는 먼 바다를 귀히 모시는 마음으로 서로를 향해 서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을 안겨주는 이번 겨울을 편애하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이 지나지 않아 눈발이 창가를 기웃거릴까요. 눈발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고요하게 들릴 것도 같은 나날들.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