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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ㅣ월훈(月暈)ㅣ박용래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월훈(月暈)

 

박용래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뚝,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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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의 시인 박용래의 시편입니다. 월훈의 우리말은 달무리. 첩첩산중, 깊은 골짜기, 모과빛 등불, 창호지 문살. 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들이지요. 시 속의 풍경은 달무리가 어리는 시공간. 세상 모든 만물에 귀를 모으고 듣는 이가 여기 있습니다. 하물며 인간의 역사를 다 듣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마음이 필요할까요.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인생이란 없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숨을 죽이고 생각하는 일. 또는 마음의 가장 안쪽까지를 고요하게 들여다보는 일. 새해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가만히, 저만치 들려오는 새로운 소식에 귀와 마음을 기울이는 나날.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