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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이 만난 사람

조효상 (주)대지정공 회장

축구계 대부. . . 방위산업 신한류 이끈다



올 가을 3000만불 수출탑 영예

선적 지연 5000만불 탑 다음에


OEM 탱크로리 생산 만족치 않고

물 대포차 인도네시아 수출 물꼬


장갑차 . 방어벽차 등 외연 확장

정직한 경영 '동남아 시장' 장악

  


작고 마른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기와 에너지는 분명 청년의 그것이다. 진짜 사나이다운 사나이, 멋진 사나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조효상 대지정공주식회사 회장(75).


올해 70 중반의 나이라고는 전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건강과 기백이 넘쳐나는 만년 청년인 조회장을 만났다.


올 가을 한국무역협회에서 주는 3000만 불 수출탑을 수상하게 됐어요. 선적이 늦어지는 바람에 5000만불탑 수상이 안됐지요.”


연매출 500억 원대의 특장차 전문 중견 수출기업으로 성공신화를 이뤄낸 조 회장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 눈치다.


축구하는 사람이 무슨 수출탑이지?


용인 축구계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를 떠올리며 용인 사람들은 수출 운운하는 것을 의아해 할테지만 조 회장의 진면목은 성공 기업을 이끌고 있는 CEO.


줄곧 OEM으로 탱크로리를 생산해오다가 지난 2009년부터 인도네시아에 수출길이 열리면서 물대포차를 독자적으로 수출하기 시작, 비약적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그는 장갑차, 방어벽차등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올해 방위산업체로 지정됐다.


수출한지 채 10년도 안 돼 동남아시장을 장악, 해외에서 알아주는 1등 업체로 자리를 굳힌 조회장의 성공 비법은 다름 아닌 기술력과 신뢰.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처럼 기술력과 신뢰가 있다 보니 소문이 난거지요. 인도네시아가 홍보해 준 셈이지요.”


현재는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주변국으로 계속해서 수출국과 차종이 늘어나고 있다.


부설 연구소를 중심으로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대지정공은 최근 세계 최초로 에어로 눈을 녹이는 친환경 제설차 개발에 성공해 수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물론 탱크로리 로라를 유압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력 개발에 성공해 신개발인증서와 함께 산자부장관상도 받았다.


옛날 내 별명이 박사였어요.”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좋아 중학교 때는 공부도 안하면서 공부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그는 기계부품을 한번 보면 원리를 파악해서 뚝딱 만들어 낸다.


조 회장은 분뇨차를 최초로 국산화 시킨 장본인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일본 부품을 수입해서 조립했는데 조 회장이 자체 부품개발에 성공하면서 수입대체효과를 가져오게 됐다.


그밖에도 수입대체효과를 가져온 개발품이 많다.


기계는 한 번 보면 알아요.”


조 회장은 1975년부터 탱크로리 사업을 시작한 이래 줄곧 성공가도를 달렸다.


수중에 18만원밖에 없던 내가 사장을 할 수 있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기술력과 신뢰였어요. 당시 공장부지 시세가 보증금 300에 월세 20만원이었는데 내가 근무하던 공장의 사장과 그의 친구들이 나를 보증금으로 삼겠다고 공장 부지에 공구까지 가져다 주며 사업가의 길을 터줬지요.”


사업 시작 1년 만에 벌어서 갚을 것은 다 갚고 살 것은 다 샀다.


서울에서 용인 고림동에 내 땅을 마련해 내려온 것이 1990년이었다. 계약한 59일이 안 잊혀진다. 그날 비가 엄청 오기도 했지만 내 부지를 직접 마련한 기쁨 때문이다.


용인에서 점차 사세를 늘려오다가 수출길이 열리면서부터 본사인 고림동 공장에 이어 원삼공장, 남사공장, 경기도 광주하청공장 등으로 사세가 급성장했다. 현재 백암에 이들 모든 공장을 수용할 2만평의 산업단지를 조성 중에 있다.


사업체를 운영 하다보면 중간에 우여곡절도 겪게 마련이지만 40년 넘는 세월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별다른 고비가 없다.


남 속이지 않고 열심히 하면 도와주는 것이지요.”


우린 한다면 해요.”


마치 좌우명과도 같은 성실, 정직, 신뢰는 성공의 보증수표, 조 회장의 오늘을 있게 한 최고의 비밀 병기다.


사업이면 사업, 운동이면 운동, 어느 하나라도 허술하게 하는 법이 없는 조 회장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 운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거꾸로 매달리기, 아령 등 몇몇 동작으로 가볍게 몸 풀기 운동을 마친 후 골프연습장으로 향해 한 시간 정도 땀을 흠뻑 흘린 후에야 본격적인 하루 일과에 들어간다.


조기축구회가 일주에 한번밖에 안하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축구를 안해요.”


매일 축구를 해야 축구할 맛이 나는데 일주일에 한번 밖에 안하기 때문에 싱거워서 축구를 그만뒀단다. 상식적으로 70세가 넘었으면 몸이 말을 안 듣거나 몸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멈춰야 마땅하다. 그런데 매일 조기축구회가 운영되지 않는다고 싱겁다니, 도대체 조 회장의 젊음은 몇 살일까.


저녁에도 한 결 같이 체육관을 찾아 운동으로 일과를 마무리하는 그는 절제와 절도 있는 삶, 그리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호탕하고 소신 뚜렷한 똑 부러지는 삶으로 지역사회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몸이 날렵하고 운동을 좋아했던 조 회장은 축구를 잘하기도 했지만, 용인축구협회 회장을 맡아 16년여를 용인 축구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기여해 용인을 축구의 메카로 만든 용인 축구계의 아버지다.


경기도축구연합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경기도축구연합회 명예회장이다. 용인인재육성재단 고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회적 책임도 완수하고 있다.


바람 불면 부는 대로 사는 거지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매사 확실한 조효상 회장 답지 않게 선문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