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아버지 올라이는 아들이 무사히 태어나길 소망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빌어 요하네스라는 이름도 준비했다. 산고를 겪는 아내에게 달리 건넬 말도 없었고 태어난 아기에 안도하는 엄마는 “응”, “그래” 정도의 말을 할 뿐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요하네스는 생각한다. 그러나 물건들은 지금까지 해온 일들로 인해 무겁고, 동시에 가볍다” 생각 외 달리 할 일도 없었다. 태어난 아들 요하네스는 나이 들어 자식을 낳았고 이제 노년을 맞는다. 여느 때처럼 일어났는데 그날은 이상하다. 이발을 해주던 페테르도 신실했던 구두장이 야코프도 유명을 달리했다. 그래도 여전한 매일을 살던 요하네스. 하지만 그날따라 다른 날과 다르다. 요하네스는 다른 날과 유난히 다른 날 생각을 멈추지 않고 계속 했다. 친구들도, 아내 에르나도. 소설에서 생각은 반복된다. 올라이의 지금에 대해서, 요하네스의 지금에 대해서, 그리고 페테르와 요하네스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추억에 대해서. 요하네스의 막내 싱네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친다. 이제 영혼으로 밝혀진 요하네스와 페테르 역시 자신들이 향하는 곳에 대해 깊이깊이 또 생각한다. 이처럼 반복되는 상념들의 열거가 이 소설의 중심축이다.
[용인신문] 두 개의 인생이 있다. 하나는 “네가 아는 인생”, 다른 하나는 “오래전부터 너를 기다리고 있는 인생”(55쪽). 선택은 어느 쪽이어야 할까? 앨리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만난 점쟁이의 말에 자신의 앞집에 사는 화가 달드리와 무작정 튀르키예로 떠난다. “진실? 맙소사, 미래는 대리석에 새겨져 있는게 아냐. 너의 미래는 너의 선택으로 이뤄지는 거니까.”(55쪽) 떠나는 것을 망설이는 앨리스에게 점술사가 하는 말은 작가가 독자에게 직접 하는 말이나 다름 없다. 소설의 배경은 1950년대, 비행기 여행보다는 기차여행이 더 익숙한 시대이다. 소식은 전보나 편지로 전하던 때에 공간과 시간이 어긋난 편지도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든다. 점술사의 말을 듣고 여행을 떠나는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는 인물이 기억하는 냄새, 거듭되는 악몽, 기시감, 붙이지 않는 편지 같은 이야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작품 초반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작품은 앨리스가 만나야 할 여섯 인물을 헤아리며 그 끝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 예측해 보는 것도 소설을 읽는 재미이다. 조향사 앨리스는 전쟁 중 눈앞에서 부모를 잃었고 지독한 고독 속에서 현실을 살아내며 예언보다는 우연을 믿는 편이다. 앨리
[용인신문] 이상하다. 아름답다. 하지만 힘들어서 어쩌면 판타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실험적인 일이다. 이는 남해로 간 청년들의 이야기이다. 폐교를 세내어 “팜프라촌”을 세우고 그곳에서 필요한 기술을 익혀 시골 생활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는 프로젝트. 2017년 청년 둘이서 꾸린 팀을 시작으로 여전히 또 다른 도약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서는 어쩌다 촌에 청년들이 모였는지를 시작으로 어떻게 터전을 마련하고 먹거리와 잠자리를 마련했는지, 생계를 위해 어떤 도전을 했는지 소개한다. 평안해 보이는 마을 사진에 비해 청년들의 일터는 땀내가 진하게 배어난다. 청년들의 삶은 환경친화적이다. 농작물은 농약을 이용해 쉽게 키우지 않는다. 농작물을 갉아먹는 달팽이를 손으로 잡으며 텃밭을 지키고자 하지만 쉽지는 않다.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은 청년들은 촌 라이프에 수십년의 노하우를 짧은 기간 안에 경험하게 한다. 코로나로 미리 준비한 유채꽃 축제를 열지 못했을 때 유채를 배달한다는 아이디어로 성공적인 촌의 삶에 희망을 갖기도 했다. 팜프라촌 청년들은 자신들의 시골 생활에서 어떤 것도 쉽게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청년들은 양아분교에 세운 팜프라촌을 포기해서 프로젝
[용인신문] 혹자는 첫사랑은 마음속에 간직할 때에만 아름다운 것이라 주장하지만 프레야 심슨의 소설 속 주인공은 60년째 첫사랑을 찾아다닌다. 88번 버스에서 만난 ‘그녀’를 찾기 위한 프랭크의 이야기 『88번의 기적』은 2010년 뮤지컬 공연을 영화로 리메이크 했던 ≪김종욱 찾기≫와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속 초록초록한 사랑이 생각나게도 한다. 투르게네프의 「첫사랑」과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있다. 프랭크가 ‘그녀’를 만난 것은 88번 버스에서였다. 첫눈에 둘은 사랑에 빠지고 빨간 머리의 ‘그녀’는 버스표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 주고 내린다. 안타깝게도 프랭크는 그녀의 메모를 잃어버리고 60년 동안 88번 버스를 타게 된다. 그녀와의 만남에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 프랭크는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원에 들어가면 버스도 타지 못할 위기에 처하는데…. 프랭크가 버스에서 만난 리비는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부모의 간섭으로 꿈도 잃은데다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직장까지 잃은 리비에게 프랭크의 첫사랑 찾기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소설은 펑크족을 표방하는 프랭크의 요양보호사 딜런과 온 동네 참견쟁이 페기가 등장하며 흥미를 더한다. 소설 속
[용인신문] '병 속의 악마'는 읽기에 아주 쉬운 이야기이다. 선한 의도가 성공하고 사랑은 위대하며 인간의 탐심은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도서의 표제작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명성도 자자하지만 뒤에 실린 작품도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사유를 품고 있다. 케아웨에게 팔려간 병은 소원을 들어주는 병이다. 케아웨는 병을 사기 위해 쓴 50달러가 자신의 소원대로 주머니에 돌아온 현상을 보고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의심하지 않은 채 마냥 신이 났다. 하지만 자기에게 주어진 행운이 다른 사람의 희생에 의해 치러진 댓가임을 알게 되고 절망한다. 병이 팔리고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케아웨는 문둥병이 걸린다. 결혼을 하게 된 케아웨, 그를 사랑한 코쿠아는 남편의 절망을 목도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병을 사서 그의 지옥을 가져간다. 시간이 지나 케아웨는 코쿠아가 자신의 지옥을 가져간 사실을 알고 아내 몰래 2상팀의 가격에 병을 사도록 어느 뱃사람에게 지시한다. 케아웨가 처음 병을 샀을 때는 50달러였지만 마지막에는 1상팀-아마 1센트 쯤 되겠다-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코쿠아에게 2상팀에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선원은 병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용인신문] 「망가진 시대」는 독일을 아동문학가 에리히 케스트너를 주인공으로 적은 평전이다. 이 평전은 독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품이기도 하다. 케스트너는 신문 칼럼리스트로, 희곡 창작자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그가 쓴 대부분의 아동문학 작품들은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다. 「망가진 시대」에 소개된 에리히 캐스트너는 독일의 미래를 책임질 주인공이 어린이라 생각하며 여러 개의 작품을 발표한다고 했다. 에리히 캐스트너는 자신의 소설 「파비안」이 눈 앞에서 괴벨스의 주도로 불태워졌고 집필 금지까지 당했음도 독일을 떠나지 않았다. 케스트너는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독일인들은 그런 에리히 캐스트너를 ‘독일의 양심’이라 칭찬했다. 독일이 전범국가라는 이미지를 벗고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망가진 시대를 탈출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파이 이야기」로 유명한 저자 얀 마텔은 캐나다 수상에게 국가의 수장이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편지로 적어 보냈다(「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작가정신, 2013). 그의 편지에 대해 캐나다의 수상은 어떤 공개적인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독서와 관련한 주요 행사에 그를 초대했다. 박근혜가
[용인신문] 아이들이 사라졌다. 전 세계에서. 전조증상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나 모두 무시했다. 오래전에 이 상황에 대해 경고를 했던 이가 있었지만 다들 그의 출신과 비행을 문제 삼아 묵살해 버렸다. 아이들은 달을 향해 날아갔다. 다소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일종의 종말론적 재난 서사이다. 기본적으로 재난을 소재로 한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은 크게 두 축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하나는 혐오와 차별이다. 이름조차 없이 ‘용달’로 불리는 용달차 모는 가장의 가족이다. 7세의 지능을 가진 10대 용달 기사의 아들이 드러나는 혐오의 대상이라면 총리 운택은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서사의 다른 한 축은 가족서사이다. 서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마음을 열기보다 외적인 조건을 갖추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에 양심의 문제가 얽히면 더 복잡해 진다.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오해와 증오가 쌓이고 해결의 길은 점점 요원해진다. 게다가 이런 관계에 이기적인 목적을 가진 인물이 끼어들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이야기 속 재난 상황은 사람들의 갈등과 무관하게 파국을 향한다. 물에 잠기고 화마에 휩쓸리는 것과 같은
[용인신문] 어른이 아이들에게 삶을 가르쳐줄 때 책 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는 삶 속에 있는 희노애락을 부족함 없이 담고 있다. 생에 대한 원리가 장엄한 이야기로 엮인 이 작품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지만 어른들이 더 열심히 읽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는 2022년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우수작품으로 전 세계 어린이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 이현의 <푸른 사자 와니니> 시리즈 6권이 출간되었다. 와니니의 무리의 수사자 아산테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번 이야기에서는 리더에 대한 사유를 담아냈다. 1권에서 자신만의 싸움을 하고 생을 마감한 아산테의 이름을 이어받은 사자 아산테. 초원의 동물들은 그 이름만 듣고도 경외감을 갖는다. 이제 막 수사자로서 도립한 아산테는 명예로운 이름을 물려받았지만 그에 걸맞는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주인공 아산테가 과거의 영광을 이어받아 수사자로 그리고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눈에 띄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다른 수사
[용인신문] 프랑스의 도토리 초등학교에서 은퇴하는 로베르 푸르파티는 은퇴식을 마치자마자 받은 꽃다발과 들고 다녔던 낡은 가방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집으로 간다. 왜일까? 이야기는 로베르 선생님이 은퇴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그는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37년간을 돌아본 사진 속에서 로베르 선생님은 단 한 번만 웃고 있었다. 어째서? 『로베르 선생님의 세 번째 복수』는 37년간 근무 중 자신에게 가장 큰 굴욕감을 준 세 학생에게 복수를 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다. 선생님은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어릴 적 친구들의 괴롭힘을 해결하는 방법을 선생님도 부모님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선생님이 된 것은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함보다는 후배 세대들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부임했을 시기엔 교육관이 또 달라졌다. 아이들을 존중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철없는 아이들의 존경을 받은 것 같지 않다. 세 번의 굴욕적인 사건을 겪은 로베르는 복수를 꿈꾸며 은퇴할 날만을 기다렸다. 최근 뉴스에서 교권이 사라졌다거나 교실에서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게다가 학
[용인신문] 인간은 변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변한다. 뇌과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인간의 뇌가 변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이 변하는 원인은 백만 가지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이다. 과학은 정확한 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인문학은 적확한 정보를 다룬다. 유시민의 과학공부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문학자의 과학 공부는 복잡한 수식과 기호들보다는 과거 인문학자들의 주장과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연결하는 작업이 중심이다. 이해의 벽이 너무 높다는 칸트의 도덕철학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거울신경세포 이론과 연결점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윈과 멜서스의 연구를 예로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과학과 인문학의 상보적 관계 속에서 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넓고 방대한 과학의 세계에 작은 창을 내어 보려는 필자의 태도 속에서 필자가 과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더 겸손해지고 더 너그러워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천문학자, 물리학자, 뇌과학자와 같은 연구력 만렙이면서 대중과 멀리 있는 듯한 과
[용인신문] 혹자는 어느 소설에서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고, 소심해서 안 해도 될 고민을 사서 하는 능력”을 가리켜 “쪼다력”(정은, 『산책을 듣는 시간』(2018), 149쪽, 이라 말했다. 쪼다력 뿐이겠는가. 이런저런 사건들은 쉼없이 우리 삶을 뒤흔들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부터 달아나게 만든다. 마음근력은 이때 필요하다.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항상성을 유지하면서도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단단한 마음근력에서 시작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 필자는 『회복 탄력성』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내면소통』은 이전 저술보다 학술적이고 실천적인 저술이다. 『내면소통』은 인간의 불안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자아를 기억자아와 경험자아, 배경자아로 구분하여 대상에 따라 마음 근력 훈련의 방법이 달라지고 조금 더 근원적인 처방을 발견해 나간다. 내면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대안으로 필자가 적극 추천하는 방법은 명상이다. 종교적인 행위로서 명상은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졌으나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명상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때로는 논리적인 측면에서 어떤 면은 뇌과학의 관점에서 혹은 물리학적 입장이나 심리학적 작용 등을 넘나들며 내면의 안녕을 찾아가는 작가의
[용인신문] 이 책은 어느 환멸적인 인간의 이야기다. 발자크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비범하게 남의 돈으로 살았던 삼촌의 이야기다. 제목은 마치 빚에 허덕이는 사람을 위한 글처럼 보이지만 실용서가 아니라 발자크가 1827년에 쓴 소설이다. 보들레르는 이 작품에 대해 “빚 청구서”를 근사하게 썼다고 평했다. 역자는 글을 쓴 발자크가 “돈이 없어서 꿈이 더 많은 사람”이라 평하기도 했다. 필자는 서문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열심히 일하지만 빚이 늘어가는 사람들에게 비열했던 자신의 삼촌 앙페제를 배우라고 말한다. 앙페제는 사업에 필요한 돈은 내기를 해서 따거나 채무에 의존했으며 죽음을 맞이한 순간조차 갚을 생각이 없었다. 앙페제가 제시하는 삶의 원칙들은 어쩐지 쓴웃음이 나온다. 앙페제는 채무를 갚지 않을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교묘하게 법과 권력을 비웃는다. 법망은 교묘하게 선한 사람들이 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락으로 가는 것을 방조하고 권력자들은 막대한 채무를 지면서도 호사를 누리며 당당하다. 삼촌은 채무자가 채권자보다 건강해야 하며 갖추어야 할 정신적 자질도 있다고 말한다. 채무자가 해야 할 일들이 나열될수록 사회를 비틀어 바라보는 필자를 발견하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