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그림을 그리려고 노트를 펴면 멍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땐 내 앞에 있는 풍경을 그리곤 한다. 잘 그리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물건을 관찰한다. 공간드로잉을 할때는 다 그리려 하지 않고 세가지 정도를 정한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자주쓰는 방법이라고 그랬다. 주인공을 하나 정하고, 조연을 둘 그린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대상을 뚫어지게 쳐다보게 된다. 그림엔 담기지 않더라도, 이 나무는 이렇게 생겼구나, 잎이 이 각도에서 보면 이렇게도 보이네? 평소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정보들이다. 그래서 나는 드로잉을 권하고 싶다. 드로잉을 하면 어떤 장소나 순간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림은 그 이후에 남는 것일뿐. 그리는 동안 느려지는 시간을 경험해보길!
[용인신문] 요새는 민망하다 머쓱하다 곤란하다와 같은 말들이 좋다. 기쁘다 좋다 행복하다 즐겁다 말고도 나에겐 다양한 감정들이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오는 글은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잘 들여다보고 쓰는 고백과 같은 말들. ‘해사하다’와 같은 말들을 수집하고 싶다. 잘 쓰지않는 우리말을 구사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때면 어찌나 반가운지. 말은 듣고 이해하는 것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뱉는 것이 다르다. 꼼꼼히 고른듯한 단어를 쓰는 사람을 보면 말을 수려하게 하는 사람보다 호기심이 간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혹은 더 가깝게-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아 헤메는 사람이다. “이 단어보단 저 단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작은 다름을 꼼꼼히 챙겨서 고민끝에 내뱉는다. 말을하다 멈춰서 언어를 고르기도 한다. 나도 그들처럼, 사진에 보이는 수많은 책갈피들처럼 다양한 단어로 나를 표현할수 있었으면!
[용인신문] 좋아하는 것에는 물든다. 나도 모르게 따라하게 된다. 그래서 무언가를 깊이 좋아하는 일은 내 안의 무언가를 바꿔놓는 일이다. 이 장면은 소녀가 무언가에 반한 순간 소년이 다시금 소녀에게 반하는 장면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내가 가진 모든 귀한 것들을 주고 싶어진다. 밥 잘 먹었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나의 세계가 상대방을 포함하게 된다. 그전까지는 나의 안온함만이 중요했다면 상대의 상태가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게 참 귀한 경험인 것 같다. 사랑을 할수록 나의 세계는 넓어지므로, 때론 더 아프기도 하지만 더욱 기쁘기도 하다. 그래서 허무의 반대는 다정이고 사랑이다.
[용인신문] 고등학교의 기억이 꼬박꼬박 생각난다. 이제는 졸업한지가 더 오래인데 여전히 생생하다. 학교다닐 때는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벚꽃이 피면 벚꽃을 보려고 큰 창 앞에 앉아 밥을 먹었고, 더운 여름에는 땀을뻘뻘 흘리면서 축구시합을 했다. 하늘이 높아지기 시작하면 땡땡이 치고 평상에서 낮잠을 자고 싶었다. 겨울에 수업하고 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날 수업은 끝이었다. 달려나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선생님들은 막을수 없었다. 밤엔 별보러 나가서 친구랑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하곤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러 나갔다. 그 기억들이 여전히 힘들때 위로가 되어준다.
[용인신문] 요즘은 더 잘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면의 소리도, 외부의 소리도. 평생 듣기보단 말하기에 더 에너지를 써왔는데. 그렇다면 잘 듣는다는 것은 뭘까. 한마디 보태고 싶어도, 참는 거, 감정을 찾아주고, 그대로 인정해주는거,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않는거, 듣고 생각하는 거. 마음을 열고 들으면 날카로운 말도, 톡 쏘는 말도 받아들일 수 있다. 저사람이 무슨 마음으로 이 말을 하는 걸까 생각하면 들어줄 만하다. 각자 다른 말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비슷한 말을 하고 있을때도 많다. 상처를 주기 위해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하면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용인신문] 오랜만에 한강에 갔다. 한 주 만에 가을 느낌이 물씬 난다. 하늘은 높아지고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잔디밭에서 또치가 지칠 때까지 공을 던져주었다. 난 뛰지 않는데 내가 먼저 지칠 뻔했다. 봄과 가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므로 부지런히 나들이하러 다니지 않으면 놓친다. 나들이하러 갈 짬이 나지 않으니 더 자주 걸어야겠다. 이번 가을은 천천히 흐르면 좋겠다.
[용인신문] 명절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몇 년 전까지는 갈비에 잡채, 각종 전을 준비하느라 하루 전부터 할아버지 댁에 갔다. 요즘엔 전은 시장에서 사고, 한두 가지만 직접 부친다. 제사는 아침에 소박하게 지낸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할아버지도 몇 년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햅쌀로 지은 밥을 먹고, 일 년간 열심히 자란 과일을 먹는다. 설거지는 손녀 손자가 모여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짧은 시간에 희비가 교차한다. 혼자 사는 친구들 몇몇은 모여서 따듯한 저녁을 차려 먹는다고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풍성한 한 끼 먹고 든든하게 남은 몇 달을 지내보자!
[용인신문] 바느질의 좋은 점은 언제든지 실행취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망하는 건 없고 대처하면 된다. 조금 비뚤어도 괜찮고 밑에 천과 함께 꿰맸어도 괜찮다. 놀라지 말라고 나도 많이 한 실수라고 이야기한다. 실수하면 포기하고 싶어지는데 일단 괜찮다고 한다. 아, 별거 아니예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요. 고칠 수 있는 곳은 고치고 다시 해야 하는 부분은 다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가장 서러웠던 기억이 그런 기억이다. 난 아직 모르겠는데, 마구 나가던 진도라거나. 왜 저번에 알려줬는데 못하냐 거나,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모르냐는 식의 꾸중을 들을 때면 속상하고 분했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왜 여기 앉아있겠냐고. 나이랑 내가 못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난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