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오래 된 사진 속 이야기가 그림책이 되었다. 주인공은 우리의 할머니들이다. 어쩌면 두 작가의 할머니이기도 한... 낡은 사진을 연상하게 하는 그림 속 할머니의 삶은 나름의 고단함을 숨기고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맑은 사랑이 가득하다. 1922년생 할머니, 할머니는 소반 위 떠 놓은 물을 건너온 기도와 함께 태어났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아련했지만 일제강점기의 삶은 꿈조차 꿀 수 없었다. 할머니는 결혼을 했고 자녀를 낳아 그 자녀가 또 아이를 낳아 키우도록 묵묵히 자기 앞의 삶을 살아냈다. 정자씨와 월순씨와 같은 할머니들의 역사가 우리를 만들어냈다. 그림책은 어떤 삶도 담담하게 살아낸 그분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며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좌에서 가운데로 그리고 우로 가다가 양면을 모두 활용하는 그림은 점점 할머니의 세계가 커가며서 사랑도, 사람도, 삶도 확대되는 느낌을 전달한다. 슬픔은 작게 기쁨은 화면 가득 채운, 어쩌면 화면 밖에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대목에서는 할머니의 행복이 우리 세상에 온기를 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세대를 뛰어넘어 함께 읽을 수 있는 『넌 누구니?』는 2023년 BIB 수상 후보작 중 한 권으로 선정되었다. BIB(Bienni
[용인신문] 매란국죽. 옛 선비들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이 네 식물에게 ‘군자(君子)’라는 신분을 부여했다. 君子는 신분상으로 통치자 혹은 성직자를 의미했지만 시간이 지나 학문과 도덕적 덕목을 구비한 위대한 스승을 의미하게 된다. 이들 사군자(四君子)는 오래전부터 군자라고 불린 이들의 손에서 태어나 오늘에 이른다. 김외자의 『사군자의 세계』는 사군자의 역사와 필자 자신의 현대적 해석이 반영된 작품을 소개한다. 도서는 사군자의 유래와 의미, 역사와 함께 하는 사군자, 그리고 필자의 현대적 감각을 입힌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옛 문인화를 소개하는 부분은 개인적 사색보다 학구적인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것일까? 국내외 여러 박물관을 찾아야 볼 수 있는 작품이 고루 수록되어 있어서 천천히 음미하는 독서를 하는 것도 권해 볼 만하다. 재료와 기법을 새롭게 하여 완성한 현대 작품도 관람하듯 볼 수 있다. 특히 문인화 내부의 공간은 마치 숫자 0과도 같은 상징성을 갖는다. 0은 숫자 자체로 없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있는 존재의 지위를 만들어 준다. 1에 0을 붙이면 10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김외자가 창조한 공간은 서정이며 지조
[용인신문] 추리물은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이 왜, 누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규명한다. 이야기는 독자와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며 범인과 동기를 끝까지 쉽게 내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심스러운 상황 속에 놓은 인물을 등장시켜 다음 사건을 향하게 한다. 소설은 유령이 된 주인공이 영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미스테리를 파헤친다는 이야기다. 소설은 세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가 사선처럼 엮인다. 우선 주인공의 죽음에 관한 미스테리 해결이 큰 축이다. 끊임없이 주변인물에게서 살해의 동기를 찾지만 번번이 그 동기는 무력화 된다. 이야기의 다른 측면은 작가적 고뇌가 차지한다.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였기 때문에 작업의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고, 창작 자체에 대한 불안으로 자기복제에 대한 두려움같은 것을 보여준다. 또 한 가지는 끊임없이 제시되는 문학작품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상상력 사전 제시가 다른 축이다. 다른 한편으로 영매의 연인 찾기도 하나의 맥락을 갖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마치 피라미드의 네 꼭지점이 하나를 향해 달려가듯 이야기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도대체 주인공의 죽음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인가? 죽음을 소
[용인신문] 정치는 실천이 따르지만 과학에는 정치에 비해 실천이나 효용성이 의무로 따르지 않는다. 실용적인 측면보다는 정확한 연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핵무기처럼 인류를 위험하게 만드는 결과물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과학 연구는 투입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투자되는 자원은 얼마나 될지 등의 항목을 정하는데 연구자가 속한 사회의 가치관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과학 연구가 가치관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과학에 관한 정책을 입안하는 이들과 과학자가 속한 사회가 생각하는 실천과 과학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탈린을 예로 들며 과학에도 철학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당대에 육종학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과학자 리센코와 환경 개선을 통해 생산량을 늘리자는 바빌로프가 있었다. 바빌로프의 주장은 스탈린과 통했다. 게다가 스탈린에게는 집단농장 정책에 대한 실패에 대해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육종학을 강조하며 유전자 연구를 중요하게 생각한 리센코는 감옥에서 죽게 된다. 리센코의 죽음과 같은 안타까운 사례를 막기 위해 필자는 ‘투명성’, ‘대표성’, ‘참여’라는
[용인신문] 갑작스런 인공지능 채팅의 유행이 사람들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머리를 맞대 일을 하던 시대는 이제 가는 것인가? 200년 전에도 소설 속에 비슷한 존재가 있었으니 E.T.A 호프만의 「모래사나이」속에 등장하는 올림피아라는 여성 인형이다. 어린 시절 잠 못 드는 아이들에게 모래 사나이가 찾아와 눈에 모래를 뿌린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어버린 나타나엘이 주인공인 이 소설은 짧은 소설임에도 다수의 서술자가 등장한다. 화자가 여럿이라 작품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듯하지만 그 모호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기도 하다. 특히 나타나엘이 관심을 갖는 올림피아라는 자동인형은 오늘날 인공지능 비서를 연상하게 만든다. 나타나엘은 올림피아를 사랑하게 된다. 심지어 약혼녀 클라라를 잊을 만큼 올림피아에게 푹 빠진다. 사교모임에 나타난 올림피아에게 절절한 고백을 하는 나타나엘, 나타나엘이 보기에 올림피아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랑스러운 여성이다. 하지만 서술자가 바뀌면 올림피아는 이상한 여인으로 바뀐다. 구체적인 대답보다는 “아아”와 같은 말을 하고, 지루한 사교모임에 어울리는 하품 대신 재채기를 할 뿐이다. 오늘날
[용인신문] 정현종의 「섬」이라는 시는 너무나 유명해서 따로 소개하지 않아도 ‘아~ 그 시’하고 떠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달랑 두 줄 밖에 안되는 시는 오래도록 인간관계에 대해 말할 때마다 화두로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문학판에서 펴낸 ‘시인의 그림이 있는 정현종 시선집’, 『섬』은 책이라는 물성 안에 예술을 담았다. 우선 정현종의 시를 담은 것으로 그것은 큰 우주다. 여러 평자들이 정현종의 시에 상찬을 남겼으며 대중적인 인기까지 얻고 있다. 정현종은 그 속에서 사람을 이야기하고 관계를 이야기하고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이야기 한다. 두 번째는 시인의 손글씨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시인의 투박한 글씨는 기계가 만든 활자와는 다른 힘을 전해준다. 한 획 한 획 눌러 쓴 글씨에 천 걸음, 만 걸음의 우주를 담는다. 세 번째는 시인의 그림이다. 전문적인 화가의 그림이 아니라 이제 막 그림을 시작하는 시인의 그림이라 더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시인은 그의 미술에 대해 겸손하다. 네 번째는 일반적인 해설과 다른 해설이다. 작품의 훌륭함을 설명하는 학술적인 용어 대신 오랜 친구를 소개하며 시인의 인간됨을 설명했다. 나이가 들면 삶이 통합된다고 한
[용인신문] 프랑스에서 온 『자코미누스』는 다른 그림책에 비해 조금 길다. 왜냐하면 주인공의 인생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크다. 주인공이 살아낸 인생 속에서 사유의 무게가 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코미누스』는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도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이다. 유화를 보는 듯한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유명 미술관에 들러 휴식의 시간을 갖는 듯하다. 주인공 자코미누스는 평범한 토끼이다. 달에 다녀온 탓에 약간의 불편함을 얻어 가끔은 삶이 무겁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을 묵묵히 살아나가는 그의 옆에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것보다 중요한 만남이 있으며, 슬픈 이별도 있고, 때로 무력하기도 하다. 물론 충실한 친구가 있는 반면 적도 있다. 생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하지만 답을 얻은 질문은 몇 없다. 그는 사소한 불안을 가지고 있으며 근심은 그가 경험한 어떤 것을 다 합친 숫자보다 많다. 자코미누스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특별한 삶보다 평범하게 살길 바라는 이들이 늘어가는 요즘이다. 어쩌면 평범하게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자코미누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길에 함께 하고픈 마음이 들
[용인신문] 설날이 되면 미디어의 지면은 가족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자주 등장한다. 선배 세대가 이룩해 놓은 일들이 다음 세대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하지만 자칫 지나쳐서 간섭이 되거나 왜곡된 권력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명절의 장시간 이동과 노동은 성역할 갈등으로 이어진다. 요즘은 경제적 문제까지 보태어지고 있다. 1968년에 발표한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or, Meg, Jo, Beth, and Amy)』의 배경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름다운 가족이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메그와 조, 베스, 에이미가 각자의 일상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한 자아를 발견하고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쟁 중인데다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풍요롭지는 않지만 어머니를 중심으로 서로 아끼며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하는 자매의 모습은 아름답다. 1부의 인기는 2부 집필로 이어진다. 애초부터 소녀이야기로 기획된 『작은 아씨들』은 2부로 이어지면서 여성의 이야기가 된다. 성장한 네 자매들이 가정을 이루기까지의 갈등과 고민이 주요
[용인신문] 어떤 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것과 원칙보다는 현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입장은 늘 부딪힌다. 도덕 교과서와 현실의 차이라고나 할까? 교사와 엄마의 입장이 그렇고 검찰과 경찰의 관계도 그렇다. 『사라진 소녀들의 숲』에 등장하는 환이가 원칙파라면 매월은 유연한 현장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언니 환이는 원칙이 지도와 같아서 길을 잃지 않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동생 매월은 언니의 해결방식은 막다른 길에 부딪히게 만드니 현장에서 다른 출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길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은 환이의 제주행으로 시작된다. 제주의 소녀들은 왜 사라졌을까? 그것도 열세 명이나. 소녀들은 숲에서 사라졌고, 민환이의 아버지 역시 그곳에서 소식이 끊겼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맞는 걸까? 종사관이었던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을 쫓다가 사라진 걸까? 어째서 동생 매월이는 제주에서 5년 동안 무당과 살아야 했을까?’ 환이와 매월이가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지만 소개되는 제주의 풍경에 빠져 가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다. 이주 한국인이 쓴 한국이야기라는 특이한 면도 있다. 작품을 읽다보면 결국 매월이의 방식도 환이의 방식도 정답이 될
[용인신문] 『소녀와 고양이와 항해사』라는 제목을 가진 책. 돛대를 칭칭 감은 굵직한 괴물의 다리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먼 하늘을 바라보는 어떤 소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고양이 한 마리가 그려진 표지. 소녀의 이름은 우나. 우나는 다른 평범한 여자아이들과 달리 추운 겨울 바다에서 수영 연습을 했고, 아버지와 항해를 하는 꿈을 꾼다. 그러나 위대한 선장인 아버지는 자신을 이을 위대한 아들이 태어난다는 예언을 믿었으나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다. 우나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우나의 아버지는 고래사냥을 하는 배의 선장이다. 선장이 이끄는 배는 북쪽 나라에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사냥을 나갔다. 목숨을 걸고 나간 사냥에서 잡은 고래는 식량으로 상품으로 어둠을 밝힐 양초 재료로 쓰였다. 추운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고래를 잡지 못하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수 밖에 없다. 우나도 아버지의 배에 타서 함께 항해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배에 태워주려 하지 않자 몰래 승선한다. 이 작품은 동화답지 않은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항해사 해로일드만이 우나를 응원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 우나가 아버지를 잃을 작정을 한다는 것이다. 우나
[용인신문] I would prefer not to do.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멜빌의 단편 「필경사 바틀비」에서 주인공이 반복해 하는 말이다. 반복적으로 ‘하지 않고 싶다’는 그의 말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이된다. 그의 실력은 은근히 그를 고용한 사장에게도 자랑거리였는데도 한결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사장을 비롯한 주변 사람을 당혹하게 만든다. 바틀비는 왜 그렇게 말할까? 전 세계의 돈이 모이는 월스트리트 한 복판에서 가장 바쁘게 보내야 할 필경사 바틀비.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실력으로 연봉을 올리며 사장과 타협을 해 보는 것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주장을 하는 바틀비가 이해되기도 한다. 사장에 비해 결정권한이 없는 바틀비. 사장은 언제든지 고용을 거부할 수 있지만 바틀비는 그렇지 못하다. 사장은 언제든 사치스런 음식을 제안할 수 있다. 하지만 바틀비는 어떤 결정도 제안도 힘을 갖지 못한다. 오로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거부할 때만이 권력자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하고 싶지 않다”와 “귀찮다”는 말이 만연한 지금의 우리도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선택의 자유는 적어도 두 개의 선택
[용인신문] 레이먼드 카버는 1980년대 ‘미국의 체호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름이 보여주듯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한결같이 짧다. 50세에 사망한 작가의 작품이 다수 번역되어 우리 독자들을 찾았음에도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거든』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기도 하며, 이미 번역된 적은 있지만 찾아보기 힘든 작품도 수록되어 있다. 이중 표제작인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은 간결하면서도 오래오래 곱씹어 볼 만하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황급히 떠난 것 같다. 이 침대를 다시 보게 될 때마다 이런 모습을 기억하게 될 것임을 나는 안다.”(121쪽) 황급함, 인간의 생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필연보다 우연이 더 많고 그 일 또한 ‘황급하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처럼 누가 어디에 있었든, 무슨 일을 하든, 그리고 어떤 상황에 놓이든 어떤 사건은 돌발적으로 찾아와 우리 앞에 놓인다. 등장인물의 밤과 새벽 시간에 걸려오는 낯선 전화처럼 말이다. 매번 전화 코드를 뽑아놓고 자야 하는 등장인물의 사연도 흥미롭다. 어쩌다 전화 코드를 뽑지 않아서 오게 된 낯선 전화 때문에 자신들의 미래-죽음의 순간까지 대화를 이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