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예의 혹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누구에게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는 우리. 그러나 그런 예의나 배려 혹은 상황적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오늘의 책에 나오는 요한이가 그렇다. 꼭 해야 할 말조차 못하고 사는 현빈의 입장에서 자폐스펙트럼의 하나인 아스퍼거를 가지고 있는 요한이는 거슬리는 존재이지만 어쩐지 부럽기도 하다. 게다가 어쩌다 방문하게 된 요한이네 집은 온갖 부러운 것 투성이다.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아스파라거스』는 고등학생 현빈과 그의 아빠가 타인의 모습에서 자기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위로와 돌파구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고등학생 현빈의 아빠는 너무 예민해서 직장생활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다. 무직인 아빠를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는 엄마는 최근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집에 모셔야 하는 일까지 더해 머리가 아프다.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현빈은 아빠가 “자기 편한 대로만”산다고 생각하며 어릴 적부터 그렇게 살면 “곁에 있는 사람이 힘들어진다는 걸” 알고 있기에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고 있다. 소설 속에서 현빈이는 요한이를 보며 아빠를 이해하고, 아빠는 요한이를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엄마는 요한이와 현빈이 얽힌
용인신문 | 변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속도 역시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어떤 이는 끊임없이 내면을 가꾸고 외적 위치를 바꿔가며 시대의 흐름을 쫓기도 하지만, 다른 어떤 이는 그러한 변화에 환멸을 느끼며 어딘가에 정착하기를 갈망하기도 한다. 『제자리에 있다는 것』은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제자리’라는 개념에 대한 성찰을 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 탐색한 저작이다. 저자 클레르 마랭은 ‘제자리를 지키는 것’과 ‘탈주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욕구 모두에 각기 다른 문제가 있다고 본다. “존재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여정이며, 머무는 행위조차 그 여정을 구성하는 정서적·사회적·지리적·정치적 기착지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자리라는 개념을 탐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특정 장소와 연결되기 마련인데, 때로는 그 장소 자체가 개인에게 억압이나 폭력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제자리를 벗어나는 탈주가 절실하다. 반대로 탈주 역시 능사는 아니다. 자아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끝없이 방황하는 것 또한 존재의 안녕에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탈주’의 가치에 좀 더 주목한다. 대개의 작가는 제자리를 지키는 것을 일종의 구속으로
용인신문 | 이보다 더 간절할 바람이 있을 수 있을까.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진 성인 아들을 둔 한부모 가정의 아버지. 간암 선고를 받고 여명 6개월을 이미 넘겨버린 벼랑 끝 아버지의 이야기가 『안녕, 피터팬』이다. 피터팬은 당연히 생각이 자라지 않는 아들일 터. 아들의 인지는 세 살을 넘기지 못한다.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 이 도서는 앞부분이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생애를 화자 꼭두와 함께 돌아보고 뒷부분은 자폐에 대한 이해가 중심이야기이다. 보통의 가정에서 보통의 시절을 보낸 보통의 아버지인 저자는 이제 특별한 아들을 돌보게 되었다. 자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기의 저자는 자폐를 회복될 수 있는 질병으로 인지해 “아들은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장애와 질병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고 장애는 받아들여야 함을 깨닫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아들이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전국에 장애인 수용시설이 1000곳이나 되지만 아들의 안식처가 없다는 가혹한 현실을 무척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김장을 하는 아버지의 당찬 모습은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안녕, 피터팬』은
용인신문 | 『읽는 교실』은 AI시대 “읽기와 문해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다룬다. 저자는 교실을 역동적인 공동체로 보고 교육 또한 그들에 맞게 설계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 독서와 문해력의 관계를 설명하며 가정과 학교, 도서관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독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점점 대중의 독서 및 문해력은 떨어지고 있다. 초연결사회 속에서 생성형 인공지능까지 등장하자 대중이 읽고 처리해야 할 정보는 더 많아진 가운데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해석으로 인한 갈등이 곳곳에 격화되고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해맹 시대에 교실이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저자는 “사회적·문화적·언어적으로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 다양한 특성과 장점에 더하여 그만큼 제각각 결이 다른 어려움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을 문해력이 좋은 사람으로 유도하면 삶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타인과 더불어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자세를 갖게 되어 좋은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도 한다. 읽기와 쓰기 훈련은 여전히 강조된다. 인간이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기 위해 스스로 선택·분류·결
용인신문 | 소로의 『월든』을 사랑한, 33년간 생물학 교수, 미국 100마일 울트라마라톤 기록 보유자, 이들은 모두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 실험, 관찰을 망라해 『모든 이야기는 숲에서 시작되었다』를 저술했다. 식물 관찰에서 시작하는 첫 번째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몸으로 느꼈던 숲의 다채로운 변화를 색과 향을 보태어 그려낸다. 작은 곤충 하나도, 그 곤충이 먹고 간 잎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변화를 밝혀내고 그 변화의 의도롤 유추해 나간다. 지루한 관찰보다는 느낌과 생각이 가미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숲 이야기는 식물에서 시작해 작은 생물에서 점점 큰 생물로, 그리고 식물과 나무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어떤 생물이건 상호의존적이다. 마지막 단원에서 다루는 삶에 대한 전략은 거대한 생명의 우주 안에 깃든 인문학적인 배움을 소개하며서 인간이 가져야 할 생태에 대한 태도로 균형감각을 강조한다. “중요한 건 배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지, 전복을 막기 위한 바닥짐의 종류를 무엇으로 하느냐가 아니다. 어쩌면 그게 내가 숲에 서 얻은 깨달음인지도 모르겠다.”(329쪽)고 말한다. 숲은 나무만 살고 있는
용인신문 |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시설이다. 종교시설이었지만 그곳에 소녀들은 감금된 채 가혹한 학대와 노역이 있을 뿐이었다. 70여년간의 인권 유린은 2013년이 되어서야 정부가 사과문을 발표했다. 작가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소설이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소설은 이같은 상황에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민을 밀도 있게 포착해 나간다. 주인공 펄롱은 석탄을 팔며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는 하녀의 배에서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결혼해 자녀를 다섯이나 두고 있다. 펄롱이 석탄을 공급하고 있는 수녀원은 그 지역에 영향력도 있어서 펄롱에게 중요한 고객이기도 하다. 그의 삶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크리스마스 무렵 펄롱은 수녀원에서 은밀하게 자행되는 학대와 조우하게 된 것이다. 소설은 펄롱의 내면을 아주 깊숙하게 탐색해 나간다. 그는 지금껏 소소한 삶을 살며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자부했다. 자신의 성실성, 아내의 단호함, 성숙한 딸. 그리고 그의 고객들. 그런데 수녀원에서 만난 소녀를 돕다면 어떻게 될
용인신문 | 올더스 헉슬리는 대중에게 『멋진 신세계』에 구현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의 소설로 유명한 인물이다. 『멋진 신세계』는 독재정치가의 강력한 권력아래 물신 포드를 숭배한다. 이와 달리 『아일랜드』는 유토피아가 그려진다. 그곳은 독재도 없고, 독점기업도 없다. 차별도 없다. 팔라는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한 곳이다. 그곳의 지도자들은 자신이 속한 공간이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석유개발을 억제하고 절제된 삶을 영위한다. 그곳 사람들은 외부에 비해 노이로제나 심장질환이 현저히 낮다. 간호사들이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암송하는 시를 봐도 팔라는 위대한 곳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법칙들을 따르는 복합체입니다. ‘나의’ 존재는 화학적 불순물입니다. 한 가지 원인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유일한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설에 그려진 팔라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인간의 안정과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공간이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이상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후반부로 갈수록 미심쩍은 면이 고개를 들며 이웃 나라 디파의 욕망으로부터 팔라가 무사할지 걱정이 짙어진다. 소설의 거의 대부분
용인신문 |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가』는 판타지에 대한 날 선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을 작품 속에서 찾아가는 안내서이다. 저자 브라이언 애터버리(Brian Attebery)는 오랜 시간 판타지와 SF 분야의 경력을 가진 인물로, 잡지 ≪예술 속 판타지(Journal of the Fantastic in the Arts)≫에서 에디터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아이다호주립대학교의 영문학과 명예 교수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판타지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하지만 저자는 “현실에 대한 반응이며 좀 더 다르게, 더욱 전통적으로 세상을 보고 상징화하는 방식”이라 하며 판타지 작가들을 르귄의 말을 빌어 “더욱 큰 현실의 현실주의자”라고 말한다. 이들이 일구어낸 판타지는 시대를 관통하며 변화를 거듭하지만 진실의 본질을 드러내며 서로 다른 신념과 가치를 가진 이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게 만드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 이 책은 작가들에게 하는 조언이기도 하지만 판타지를 즐기는 독자를 향한 조언도 많다. 학술적인 개념을 설명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인용한 작품들은 이미 우리가 애독해 왔거나 많이 알려져 대략의 내용을 아는 작품들이다. 미디어에서 판타지적 요소들
용인신문 | “만성절 전야에 죽은나무가 고사리빛에 풍파를 몰고 올지니, 달이 지기 전 죽은나무숲에 있는 자는 영영 사라지리라.” (43쪽)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예언으로 회자되고 있다면? 그리고 예비된 도착지가 무한한 고통을 느끼는 곳이라면? 이런 상상으로 시작되는 동화가 『죽은나무숲의 죽다 만 여우』이다. 죽다 만 여우 클레어는 죽은나무숲에서 떠도는 영혼을 사후세계로 안내한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은 헤스터파울의 예언이다. 예언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오소리 생강촉새와 지내며 점점 예언이 실현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클레어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자신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을까? 이 동화는 클레어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죽음이라는 소재를 정면으로 다룬다. “날 쫓아낼 순 없어요! 길잡이 일은 내 전부고, 나 자신인데, 이대로 빼앗기지 않을 거예요!”(171쪽.)라며 자신 앞에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는 클레어. 두려움에 결정을 못하는 클레어를 움직인 건 생강촉새와 클레어 자신이다. 죽음이라는 소재 때문에 동화는 슬프고 진지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다. 수시로 등장하는 서술자의 목소리도 이야기
용인신문 | 태양을 갉아먹는 아스트로파지를 막기 위해 머나먼 은하 속 타우세티를 향해 떠난 지구인은 고작 세 명. 도착한 이는 그레이스 박사 뿐이다. 전작 『마션』으로도 유명한 앤디 위어의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시작이다. 역자는 헤일메리를 “미식축구 및 농구 경기 용어이기도 하지만, 가톨릭 등 기독교 일부 종파의 기도문인 성모송을 일컫기도 한다”(180쪽)고 적는다. 어느 쪽이건 성공확률이 매우 낮은 일에 성공을 바라며 하는 최후의 시도에 쓰는 말이고 그런 일은 모든 것을 걸어도 성공이 어렵다. 상당한 분량임에도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렵다. 광년을 뛰어넘는 공간, 평범한 인간도 타인을 위해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근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레이스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진다. 그런데 그레이스는 어쩌다 우주선에 탑승하게 되었을까? 머나먼 우주에서, 그것도 편도로 파견된 우주에서 만난 로키는 이 소설의 또다른 핵심 캐릭터. 그레이스는 외계인 로키와 어떻게 소통해 나갈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나를 지키고 싶었던 그레이스는 어째서 영웅이 되었을까? 단서는 “헤일메리”라는 말에 있다. 마지막 시도인 줄 알면서도 골대를 향해 던지는 미식축수
용인신문 | “그래픽노블”이란 명칭은 1978년 윌 아이스너(Will Eisner)의 작품 『신과의 계약(A Contract with God)』의 표지에 처음 등장했다. 만화와 비슷하지만 질적 차이가 있다는 의미였다. 『버드와처』 역시 그래픽노블이다. 2020년 초 일본 도쿄에서 팬데믹을 겪은 작가의 경험이 투영되었다. 당시 작가는 일상의 고립감을 공원에서 새들과 만나며 해소한다. 이 작품은 고립되고 무기력한 청년이 주인공이다. 마을을 지키는 까마귀도 참새도 만나지 못한 청년. 참새가 들여다본 방에는 다 먹고 정리되지 못한 일회용 용기들이 널브러져 청년의 우울감을 보여준다. 그는 공원에 나온 뒤에야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고 그 하늘 속 파랑새를 본다. 이후 청년은 바깥 세상에 눈을 돌린다. 작가는 청년이 바라본 공원, 공원에 나온 사람들, 사람들이 대형 카메라를 동원해 관찰하는 새들을 보게 된다. 청년이 바라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청년은 시간이 갈수록 다른 버드와처들처럼 시야도 넓어지고 도구까지 갖추게 된다. 맑은 초록과 하늘이 배경에 가득한 새들의 세계는 바람과 구름이 자유롭고, 시선 속에 애정이 있고, 조화가 있다. 그리고 종내 발견한 것은 다시 파랑
용인신문 | 말이 태어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은 서울이 중심지라는 선망에서 나온 옛말이 아닐까. 소설 『유자는 없어』의 배경은 거제도이다. 작은 섬, 작은 공동체 그곳 청소년은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옛날엔 유배지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빵집도 있는 아름다운 지안이네 동네. 유명 가수도 찾아오는 동네에 사는 지안은 자신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 통학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섬지역이라 기회가 줄어든 것만 같다. 거제도를 떠나는 상상을 해도 고민이다. 정작 도시에서 편히 지낼 자신이 없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성적도 관리가 안 된다. 때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지안의 공황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지방에서 나름 열심히 살고 있는 고등학생 지안이의 심리를 살펴가는 이 작품은 그간 만났던 청소년소설과 다른 결을 갖는다. 소설은 일상의 작은 균열들을 메꾸며 살아내는 평범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작은 공동체 안에서 개인으로 지내기 어려워 이름이라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 바깥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공포로 다가오는 아이, 반대로 잦은 이사로 부유하는 삶 속에서 정착을 바라는 아이는 그저 평범한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