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성 나 떠나는 날 내 시도 데리고 가리 시는 언어구조물이라지만 서울의 아파트 같은 콘크리트 건물과는 달라서 그 속에 들어가 즐겁게 혹은 서럽게 살다가 아무도 없는 방안 훠이 한번 둘러보고 침대에 몸을 눕힌 채 조용히 눈을 감고 그렇게 오랜 세월 흘러도 흉물스럽지는 않으리 나 죽고 나면 내 시 읽을 사람 없고 평생 두고 지은 언어구조물은 무너져 아무도 들어가 사는 이 없고 기쁨이나 슬픔도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남았다가 모래처럼 흩어지고 혹은 허공 속에 증발되어 자연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테니까 정희성 시인은 80년대를 격정적으로 건너온 시인이다. 낙관적 전망이 실현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아 그는 아직도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버릴 수 없는 꿈이있다고 선언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연에 오래 머문다. 그 자신 말고도 그가 평생 써온 시편들도 그와 함께 자연으로 고스란히 돌아갈 것을 설파하고 있는 정희성 시인은, 그가 세상 다 마치고 나 떠나는 날 내 시도 데리고 가리라고 노래 한다. 그의 시편들은 언어로 지은 집들이어서 그 속에 들어가 즐겁게 혹은 서럽게 살다가 침대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오랜 세월을 흘려보내도 시인의 죽음이므로
첫째, 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소외계층의 청소년들은 많은 것을 경험하거나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꿈에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가난이 대물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청소년을 대상으로 되고 싶은 인물에 대해 조사를 한 후 동일 직업인으로 멘토를 맺어준다면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키워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멘토링을 통해 직업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 하는 일도 구경하면서 미래 직업을 구체화 시키고 꿈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꿈이 바뀔 수 있으니 멘토제도를 통해 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 행운도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채소밭이 딸린 별장 개념의 러시아 다차처럼 주말에 전원에 나가 채소도 키우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한다. 전원에 머물면서 자연을 호흡하고 쌓인 스트레스도 해소할 수 있는 공간. 소유 개념이 아닌 임대 개념의 이 같은 공간이 제공된다면 용인 서부지역의 아파트에 살면서 전원을 꿈꾸는 이들에게 벅찬 행복을 줄 것이라 생각 한다.
요즘 수박농사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독성리에서 8000여 m², 12동의 수박하우스를 경영하는 강일영씨는 노력 끝에 찾아온 그만의 행복에 즐거움을 표현한다. 옆에 있는 사람이, 싱글벙글하는 강씨의 모습만 봐도 덩달아 즐거워지는 순간이다. 6만 6000여 m²의 수도작을 경작하며 1993년부터 종묘회사와 계약하고 고추채종 농사를 함께 짓던 강일영씨는 종묘회사의 외국진출로 고추채종 농사를 접고 풋고추를 키워 고춧가루를 생산했다. 그리고 2년 전인 2007년에는 친구가 권유한 수박농사를 시작하게 된다. 낙천적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당시 용인이 수박농사 불모지인 까닭에 수박농사가 앞서 있는 음성까지 다니면서 수박에 대한 지식과 수박 전문자재 등을 구해야 했다. 하지만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열심히 배우고 구입하여 수박농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열심히 생산한 것에 비해 판로가 어려웠다. 판로는 있었지만 늦게 시작한 농사였기에 제값을 받기가 어려웠다. 이미 수박시장은 기존의 다른 생산자들이 차지한 상태였다. 그는 품질을 높이는데 주력했다. 맛과 크기가 뛰어난 강씨의 수박은 수박경매사들의 눈길을 끌었고 급기야 경매사들이 기
아이들에게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들려주고 만약 현대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글로 써보라고 한 적이 있다. 한 친구가 그들은 학원으로 성공을 했을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현대는 다양한 형태의 강의들이 등장하고 있고 평강공주가 남편 온달을 교육시키고 성공시킨 경험은 다른 사람들도 배우고 싶어 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온달이 성공 할수록 평강공주의 남편을 성공시키는 방법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강좌가 될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으로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같이 모인 친구들에게 이 글을 읽어주고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라고 다시금 질문을 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는 것은 했지만 다른 결론을 끄집어내는 연습을 위해서는 다른 친구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 같았지만, 아이들은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만들어 갔다. 혹시 다른 생각을 가진 친구는 없을까? 아이들의 의견이 한 방향으로 모이는 것을 염려하며 다시 물었다. 한 아이가 손을 들고, 아마 온달은 직장을 그만두고 평강공주가 하는 학원의 버스기사로 취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아
홍신선 읍내 시장 갱로(坑路)같은 깊은 골목에 좌판들과 점방들 지천으로 몰려 있다 만두집과 생선 가게, 스티로폼 상자 속에 은화식물 꽃술처럼 박힌 먹갈치꽃, 대발 위 한 무더기씩 쑥개떡과 절편들 벌려놓은 떡집들 왁자지껄 시도 때도 없이 가장 낮은 이 진창 바닥에도 무슨 내용 없는 꽃이라고 목숨 꽃들 핀다 제각각 빛깔과 향기를 속 깊이서 끌어올려 혼신으로 핀다 사람이 혼몽하듯 취하는 것은 늦은 귀갓길 청옥을 투명하게 깎아든 새잎들 속의 만개한 산벚꽃들에게서만이 아니다 바람에도 뼈가 들었는지 장날 허공은 우두둑우두둑 무너져 내리는데 사람이 혼몽하듯 취하는 것은 목숨 꽃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세상에 목숨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 홍신선 시인은 지금 시골의 갱로처럼 혹은 미로처럼 펼쳐진 시장 골목에 서 있다. 시장 골목은 사람들로 붐비고 장삿꾼들의 억척스런 호객소리들이 삶의 교향악처럼 펼쳐진다. 그곳에 목숨 꽃이 만개한 것이다. 생의 절절한 터전인 시장 골목에 놓여진 모든 것들이 목숨 꽃인 것이다. 갈치는 갈치대로, 절편은 절편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가장 낮은 진창 바닥에 핀 목숨 꽃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처럼 아름다운 목숨 꽃에 취해서 봄날 하루를 바람의 뼈 무너
최연소 이장, 최연소 농협이사 등은 모두 노재홍씨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다. 현재 노재홍씨는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방아리에서 16만 5000여 m²규모의 수도작을 경작하며 쌀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어릴 적 고향을 떠나 약 7년여 동안 모 대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향에서 농사일에 전념하던 부모님의 뒤를 잇기 위해 직장생활을 접고 귀향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농사일을 시작한 것이 어느덧 30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2만 3000여 m²정도였던 농사 규모가 이젠 16만 5000여 m²규모의 대농이 됐다. 또한 8년 전부터는 1만여 상자 생산 규모의 육묘장을 만들고 남사지역 쌀 전업농가들과 공동으로 육묘를 생산하여 회원들은 여기서 생산된 육묘를 이용한다. 이곳 육묘는 백암, 남사, 원삼, 이동지역 쌀 생산혁신단지의 G-rice용이다. 처음 고향에 돌아와서는 농사일을 하면서 마을의 크고 작은 일에도 발 벗고 나섰다. 마을 이장은 물론 새마을 지도자로서도 큰 힘을 발휘하며 17년여를 보냈다. 현재는 용인시 쌀 전업농 연구회 회장으로 판로에 걱정하는 쌀 농가들을 대변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지난해 말에
우리 애는 글쓰기는 잘하는데 논술은 약해요 라고 하소연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그런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부모님 스스로가 논리적 글쓰기와 일반 글쓰기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논술문은 따로 배워야 하는 글,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다른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논술문은 글쓰기의 한 영역이다. 글쓰기의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큰 갈래로 감성적인 글쓰기와 논리적 글쓰기로 나눠지는 것이다. 감성적인 글쓰기가 감정에 충실하게 써나가는 글쓰기라면, 논술적 글쓰기는 서론 본론 결론을 나누어 논리적이며 객관적으로 써나가는 글이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서론 본론 결론을 이야기하며 그 결과로 이끌어가려고 한다면 어린이들은 단어에서부터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논리적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다 라는 인식을 먼저 가지게 되는 것이다. 논술이라는 것은 자기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쓰는 글이다. 자신의 주장을 편다고 하는 것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글이다. 남의 글을 베껴 쓴다든지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식을 먼저 배우고 서론은 이렇게 써야하고 본론은 이렇게 써야하고 결론은 이렇게 내려라
거리에 여기저기 있는 구두 수선소, 거기 앉아 있는 사람은 한결같이 평화롭다. 마음은 넘친다- 바라보아도 좋고 앉아 있어도 좋다. 작아서 그럴 것이다. 낮아서 그럴 것이다. 그것들 보다 더한 성소(聖所)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비로소 제자리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현종은 우리들에게 낮은 자리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거리에 여기 저기 있는 구두 수선소, 그곳에 구두를 수선해달라고 맡긴 사람들의 표정은 성소를 찾아온 사람들의 표정처럼 평화롭고 넉넉하다. 구두가 지니는 사회적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지치고 헐벗은 삶을 고스란히 지문으로 담고 있어 발바닥이 지나간 온갖 거리와 지형을 기억하고 있는 구두이다. 삶의 지문이 그대로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구두가 낡고 헐어 찾는 곳이 거리의 구두 수선소이다. 낡은 구두의 수선이 끝나면 새로운 삶을 위한 질주가 시작될 것이지만 지금은 다만 진지했던 삶의 반추로 평화롭고 넉넉한 것이다. 작아서 넉넉하고 낮아서 평화로운 곳, 그곳이 성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고 낮은 곳이 우리들의 본향이 아니겠는가. 정현종의 깨달음이 빛나는 것은 이처럼 작고 낮은 삶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전하게 때문이다. (김윤배/시인
지난 3일 국토해양부에서는 5월말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 현황을 공개했습니다. 미분양 주택 현황은 부동산 경기의 현재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데이터이기 때문에 주요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15만1938호로 전월(16만3856호)대비 1만1918호 감소하였으며, 특히 수도권은 2만7344호로 전월(2만9156호) 대비 1812호 감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준공 후 미분양은 5만4141호(수도권2185호,지방5만1956호)로 전월(5만2665호) 대비 1476호(수도권250호 감소, 지방1726호 증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 미분양 주택현황을 확인해 보면 미분양 주택수가 감소하기는 했지만 뚜렷하게 감소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 전 수준인 2007년 12월이 1만1000여 가구였던 것을 보면 현재 1만5000여 가구는 그 차이가 아직까지는 커 보입니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놓고 볼 때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2008년 12월 그 정점을 지나 점차적으로 미분양 주택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다른 분석도 있습니다. 미분양 주택이 감소하는 것이
처인구 원삼면 목신리에는 오씨 집성촌이 형성돼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농업인 오복근씨는 30여 년 동안 오직 한길, 꾸준히 수도작을 경작하고 있다. 원래 과수원을 경영했던 그는 과실수에 농약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농약에 중독되는 사고현장을 목격했다. 그리고는 아예 과수원을 접었다. 그 후 쌀 전업농의 길을 걷게 됐는데 현재는 17만 여m²의 논을 경작하는 대농이 됐다. 그는 당시 농촌의 젊은이들은 도시로만 나가려했기 때문에 농촌의 앞날이 걱정됐다며 농촌을 지키고 지역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농사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 마음 변치 않고 농사를 짓는다고 말했다. 그는 원삼면의 상징인 청둥오리농법을 이용하여 파란하늘 맑은햇쌀이란 제목으로 친 환경 유기농 백옥쌀을 생산했고 전량 원삼농협에 판매해왔다. 오복근씨는 지금까지는 판로에 큰 문제가 없었고 농협에서의 수매가 큰 도움이 됐었다며 하지만 요즘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고품질 보다는 가격에 민감하고 그런 이유로 농협에 저장된 쌀이 점점 늘어감에 따라 앞으로의 판로는 명확하지 않다고 걱정 섞인 말을 했다. 하루빨리 경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고품질 쌀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토로했다. 오복근씨
송찬호 그해 봄 결혼식 날 아침 네가 집을 떠나면서 나보고 찔레나무 숲에 가보라고 하였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아 한쪽 눈썹을 밀면서 그 눈썹자리에 초승달이 돋을 때쯤이면 너를 잊을 수 있겠다 장담하였던 것인데 읍내 예식장이 떠들썩했겠다 신부도 기쁜 눈물을 흘렸겠다 나는 기어이 찔레나무 숲으로 달려가 덤불 아래 엎어놓은 하얀 사기 사발 속 너의 편지를 읽긴 읽었던 것인데 차마 다 읽지는 못하였다 세월은 흘렀다 타관을 떠돌기 어언 이십수 년, 삶이 그렇데 징 소리 한 번에 화들짝 놀라 엉겁결에 무대에 뛰어오르는 거, 어쩌다 고향 뒷산 그 옛 찔레나무 앞에 섰을 때 덤불 아래 그 흰빛 사기 희미한데 예나 지금이나 찔레꽃은 하앳어라 벙어리처럼 하앳어라 눈썹도 없는 것이 꼭 눈썹도 없는 것이 찔레나무 덤불 아래에서 오월의 뱀이 울고 있다 송찬호는 과작의 시인이다. 이번 시집도 9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시집이니 다음 시집을 기다리려면 또 족히 10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들은 빛난다. 이 말은 그의 시편들이 그를 기다리던 독자들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독자들을 설레이게 한다는 뜻이다. 찔레꽃은 서사가 도드라지는 시편이다. 사랑하던 연인이 시집 가던
779호 다르긴다른가 정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