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12월이 되면 교회를 가지 않아도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린다.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과 산타클로스가 펼치는 판타지가 한데 어우러져 마음은 어느새 축제를 향해 달린다.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저녁 따뜻한 무릎담요를 덮고 읽을 만한 이야기다. 바스티안이라는 어린 소년이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을 피해 들어간 어느 서점에는 고약하게 생긴 아저씨가 이상한 책을 읽고 있다. 바스티안은 그 책을 훔쳐 학교 다락방에서 읽기 시작한다. 현실에서 어머니가 죽고 그래서 슬픔에 빠진 아버지는 바스티안의 낙제에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다락방에서 읽는 책 속에서는 다르다. 도서는 초록색과 붉은색이 각각 현실과 환상의 이야기임을 알려준다. 책 속으로 점점 빠져드는 바스티안의 이야기는 어느 새 초록색이 된다. 바스티안이 책 속에 온전히 들어가 판타지 속에서 강하고 아름답고 용맹한 전사로 거듭난다. 하지만 판타지는 판타지 안에서만 가치가 있으니 이를 두고 그모르크는 환상세계의 존재가 현실로 건너가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망상이 되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두려워 할 게 없는데 상상의 두려움이 되고,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용인신문] 리프킨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들이 1·2차 혁명의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산업혁명이 일구어낸 자본주의는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지구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네트워크를 점령한 알고리즘은 우리의 사고까지 상업적·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타개해야 할까? 리프킨은 그의 저서 『회복력 시대』에서 지구의 위기에 대한 원인과 대안을 모색한다. 리프킨은 지구가 위기에 빠진 이유가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급격하게 바뀌는 지구 환경에 인간은 다양한 전략으로 적응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구의 위기였으니 리프킨이 제시한 구제 방법은 회복력이다. 회복력을 얼마나 어떻게 발휘하는가에 성패가 달려있다는 것이다. 리프킨이 제시한 근거에서 눈여겨볼 만한 것은 인프라 만들기 사례이다. <미국의 회복력 3.0 인프라 혁신 America 3.0 The Resilient Society: A Smart Third Industrial Revolution Infrastructure and the Recovery of the American Economy>(2020~2040)(
[용인신문] 호랑이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은 세계가 인정하는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호랑이는 경이감을 주는 영적 지주의 특징을 갖는다. 일제강점기는 한국인의 슬픔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배경이며 한국전쟁은 이념의 대립이 만들어낸 극단적 인간상을 드러내는 데 일조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불행한 시대를 지키려는 야수 같은 인물들이 있으니 바로 소시민들이다. 그들은 그저 생존하기보다 명예롭기를 원한다. 김주혜의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도 이같은 이야기이다. 무엇인가를 지키는 들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이들의 사랑에 대한 역사이자 인류애를 가진 이들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소녀에서 기적에 오른 여인이 되었으나 예술가로 성장하는 옥희, 타인을 품어주는 지혜로운 할머니가 되어 다음 세대를 지키는 옥희의 삶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이며 한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으로서의 덕목을 배워가는 여정이 된다. 옥희와 인연이 닿은 이들은 단지 사랑을 위해 살기도 하지만 명예를 위해 살기도 한다. 나라를 팔기도 하지만 독립운동에 젊음과 재산과 열정을 바치는 이들도 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시작되어 해방 후 한국전쟁 시기를 지나 대한민국 초반에 이르는 옥
[용인신문] 조선시대에 벼슬 대신 30년간 전국의 산을 두루 다닌 선비가 있었다. 김홍도는 그에게 단원도를 그려주었고 김만덕의 도움으로 한라산을 오르기도 했다. 선비 채제공은 “창해 자네야말로 썪어 없어지지 않는 존재”라고 칭찬을 하기까지 한 인물 창해일사 정란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조선 최초의 전문 산악인 창해 정란』은 정란이 다녔던 산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사유를 모아 만든 여행기이면서 삶을 논하는 인문서이기도 하다. 정란은 벼슬을 하기 바라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도산서원에 가려고 길을 나서지만 정작 그가 먼저 간 곳은 낙동강이 흐르는 청량산이었다. 퇴계가 그 산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승 신유한은 정란의 산행을 응원해 가야산 등정을 권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정란이 가장이면서 벼슬도 마다하고 산에 다닌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은 “답은 머리나 입이 아니라 언제나 심장이었지”(108쪽)라고 말한다. 정란을 보면 꿈을 꾸는 사람에게는 그를 돕는 손이 생긴다는 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산행에 드는 비용을 가족에게 의지할 수는 없는 그에게 보부상이 찾아와 서신을 적어주는 대신 비용을 주겠다고 나서거나 병든 노새를 걱정했는데 새로 나귀가 생긴 것
[용인신문] 시 읽기를 밥 먹는 일처럼 하는 평자가 있다. 바로 신형철이다. 밥을 꼭꼭 씹어먹어야만 삶에 필요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시를 그렇게 꼼꼼하게 읽는다. 『인생의 역사』는 가을에 출간된 그의 최근 저작물이다. 동서양의 유명 시를 “인생의 역사”라 말하며 그 깊이와 쓰임새를 가늠한다. 책 머리에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시와 시인의 삶과 의미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인생의 역사』는 고통, 사랑, 죽음, 역사, 인생을 주제로 5부에 나눠 시를 경험하게 한다. 저자는 브레히트의 시를 읽으며 아버지 신형철이 된다. ‘공무도하가’를 감상하며 인간의 삶이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음을 보여준다. 사랑을 탐구한 시를 감상하며 자신을 가르쳤으나 그 깊이를 모른다며 겸양을 드러내기도 한다. 외국 시 번역은 어울리는 단어를 찾아내느라 깊은 한숨을 토해낸 자취를 보여주기도 한다. 부조리한 현실 세계와 시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도 찬찬히 설명한다. 황동규의 시를 읽으며 그 안에서 나와 타자가 조우한다고 말하는 신형철은 시가 공동체를 향해 열린 예술임을 보여준다. 시라는 예술이 지독히도 진실을 간명하게 표현하려는 성격이
[용인신문] 로드무비가 재미있는 이유는 낯선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고 발견하지 못한 자아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여행의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일단 떠나기 위해 용기가 필요한데 필자는 좀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10여년의 연극계 생활을 과감히 접고 영국행을 택했으니 말이다.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는 필자의 영국행을 한 치의 공란 없이 적어 내려간 여행기이자 역사서이자 도시 설명서이면서 자아를 탐색한 기록이다. 필자는 “명품 가방 대신 샌드위치 하나 달랑 들어있는 가난한 배낭”(7쪽)을 메고 세계적인 공연과 만나고 미술관을 방문한다. 필자의 여정은 각 장마다 있는 친절한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명한 관광지 외에도 그 관광지에 얽힌 정치, 사회, 역사, 문화의 관점에서 망라된 설명은 여행안내서보다 다채롭고 알찬 정보가 가득하다. 영국이 셰익스피어의 나라인 만큼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함께 소개되고 있다. 연극계에 있는 필자의 관심이 짙게 전달되는 대목도 많다. 골목골목 작가가 직접 방문해 얻은 정보들은 마치 현장에 필자와 독자가 함께 걷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독자들은 작가가 발행한 야드티켓을 받아 대극장
[용인신문] 예술가는 시대와 불화하는 사람들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거대 담론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이들이 바로 예술가이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 『단순한 열정』도 그런 맥락으로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면에서 실연의 상처를 촘촘하고 밀도있게 적은 작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작이 프랑스어이니 문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한국 독자가 알기에는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소설이 발표되던 시기에 정치나 사회를 장식하는 거대 담론에 대해 문제적 시각을 가진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니 에르노의 소설은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물밑으로 가라앉히려 했던 욕망들을 만천하에 드러낸다는 면에서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에르노는 사람들이 개인의 밑바닥 마음을 숨기려 하거나 숨겨야 하던 시절부터 자신을 글이라는 수면 위에 내보였다. 『단순한 열정』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주인공은 잠시 외국인과 사랑에 빠졌고 그 남성과의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여성이다. 사랑에 빠진 여성은 남성이 떠나자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변한다. 남성과 함께 했던 시간과 공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그 시간과 장소를 맴돌며 비유와 상징으로 대변되는
[용인신문]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백년 후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말이다. 나라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수정되는 우리 교육은 과연 백년 후의 일을 내다보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최민아의 『앞서지 않아도 행복한 아이들』은 행복한 아이로 키우기 위한 프랑스의 제도와 어른들, 그리고 사회 분위기를 소개하는 책이다. 프랑스의 학교의 유급은 우리나라의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일 수 있다. 초중고 모두 적극적인 유급을 하고 일정 수준이 되어야 학년이 올라간다. 이는 대학도 마찬가지인데 진입 장벽을 낮춰 누구든 원하는 전공을 할 수 있으나 일단 입학을 하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프랑스 학생들이나 사회가 유급을 따가운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입시제도 역시 눈여겨볼 만 하다. 6일에 걸쳐 치르는 시험은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다. 일정 시간 동안 몇 안되는 문제를 푸는데 화장실을 간다거나 시리얼을 먹는다거나 입시 불안을 이기기 위해 작은 인형을 들고 있어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채점은? 여러 선생님이 한달 동안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험의 결과가 대학입학에 결정적이지도 않다. 그러니 프랑스 아이들은 학
[용인신문] 훈민정음은 누구나 쉽게 쓰지만 제자원리나 창제배경, 원리 등을 알고 쓰는 이는 많지 않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누구나 볼 수 있게 아주 쉽게 쓴 안내서이다. 훈민정음의 구성은 세종대왕의 서문, 예의편, 해례편, 정인지의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한문을 잘 모르더라도 글의 의미와 의도를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를 드러내놓고 할 수 없었다. 사대부는 표면적으로 중국과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창제를 반대했지만 사실 기득권을 내놓기 싫다는 이유도 있었다. 백성들에게 그간 누리던 특권을 내줘야 할 만큼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굴되던 1940년에도 발굴 사실을 밝힐 수 없었다. 일본이 지배하던 시기에 우리 말을 지켜줄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훈민정음은 우주를 담고 면면히 전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훈민정음, 특히 그 창제 원리와 쓰임새를 적은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렇게 비밀스럽게 보관되고 전해졌으나 이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
[용인신문] 여왕이 죽었다. 많은 나라의 수장이 여왕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고, 어떤 이는 여왕의 죽음에 춤을 추기도 했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마지막 의식이기도 하지만 산 자들이 죽은 이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늘 소개할 『아버지의 해방일지』도 장례식 이야기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7쪽) 이 얼마나 모순적인 발언인가. 아버지가 죽었다면 상실감과 슬픔으로 가득해야 마땅하겠지만 고아리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어쩐지 덤덤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버지는 너무 진지했고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은 웃었다. 빨치산이었던, 사회주의자였던, 감옥에 갔던, 감시받던 아버지. 죽은 아버지와 조문객을 위해 떡을 비롯해 전을 부치고 국을 끓이고 밥을 차린다. 찾아온 이들은 밥을 먹으며 죽은 이를 추억하고 남은 이야기를 한다. 가장의 자리가 부실했던 가족 이야기나 평생 아버지와 원수로 지낸 작은 아버지의 이야기, 아버지의 담배 친구 혹은 술친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장례식은 애도를 거쳐 축제의 분위기가 된다. 그리고 아버지는 빨치산에서 아버지가 된다. 그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진지하고 무거웠다면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언어는 독
[용인신문]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호모가 되지 마세요.” 라고 쓴 화장실의 낙서는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예수가 사람들을 조건없이 사랑한 것처럼 누구든 수용할 수 있지만 ‘누구든’에 어떤 조건이 생기면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배척의 의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화장실 벽에 쓴 낙서』는 배척의 조건을 가진 인물 애덤의 이야기이다. 애덤은 조현병을 앓고 있다. 애덤의 곁에는 어떤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해 애덤에게 뭔가를 이야기 한다. 함께 점심을 먹는 드와이트, 길 가다가 갑자기 수영장에 뛰어드는 마야. 알몸으로 찾아오는 제이슨 등 애덤의 눈에는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보이고 애덤에게 말을 걸어온다. 애덤은 끊임없이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이 실재인지 환각인지 구분해내야 한다. 사람들이 조현병 발작을 혐오하니 애덤은 자신만 보고 듣는 세계를 숨겨야 하고 그래서 애덤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보편적인 조현병 환자들과 달리 애덤은 일상을 소화해 내며 사람들 속에 어울리며 지낸다. 애덤의 상담과정을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조현병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다는 것 외에도 자신으로 사는 것이 외로운 이들에게 위로를 준다. 남들보다 더 큰 책임을 맡은
[용인신문] 수원의 세 모녀의 비극에 대한 뉴스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오래 전 신화에도 있었다. 메데이아가 이아손의 배신때문에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죽인 이야기다. 토니 모리슨은 『타인의 기원』에서 살해의 이유가 자식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인이 되어버린 존재들이 차별과 혐오 속에서 기초적인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러한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비정한 결정을 한 이유가 사랑이라는 논리가 과연 정당한 것일까? 『타인의 기원』은 절대로 자녀살해가 정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의 죽음은 차별과 혐오에서 시작된다. 차별의 시작은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자신의 인간성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고 하는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과 다른 이들을 ‘타자’로 정하고 이들을 비난한다. 또한 자신들의 행위를 ‘낭만적’인 태도로 묘사하여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도덕성이나 정당성을 망각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정치세력이 되어 미디어와 결합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