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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현명한 군주

얼마 전 용인 명지대학교 종점에서 광화문 행 5005번 버스를 타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평상시 서울 갈 때는 자가용을 타고 다녔지만, 그날은 버스를 타고 싶었다. 취재차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일행들과 저물녘에 도착한 청계천 광장.

콘크리트 옹벽사이로 네온사인의 물줄기가 흐르는 청계천엔 젊은 연인들과 남녀노소 군중들이 물길을 따라 거닐었고, 삼삼오오 모여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중년의 남자들도 보였다. 그런데 기자는 청계천 풍경을 볼 때마다 완벽한 인공미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프랑스 파리를 관류하는 센 강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용인의 경안천만 보다가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청계천이 아름다울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를수록 서울의 밤은 더욱 현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토요일 밤이기도 했지만, 촛불문화제 행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거리를 걷다보니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강기갑 의원이 단식 농성중인 민주노동당 막사 앞에서 군중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이 유명세를 실감케 했다.

촛불집회가 열리던 서울역으로 자리를 옮기던 중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바이올린 대신 쥐덫을 땅에 질질 끌고 다녔다. 일종의 퍼포먼스로 웃음이 나왔지만, 쥐덫 끌리는 소리에 가슴이 쓰려왔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가족단위를 비롯해 대학생, 직장인, 노동조합 등 다양한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광우병 국민대책위 추정으로는 당일 전국적으로 10만 명 규모의 인파가 몰렸다고 했다. 국민적 저항의 힘이 크게 느껴졌지만 집회장 풍경은 구호와 노래만 있을 뿐, 평화로운 분위기가 계속됐다. 물론 청와대가로 가는 길은 사전에 전경 버스 수백 대를 붙여 가로막혀 있었다.

사진취재가 끝날 때까지 일부 시위자들의 거리행진이 계속되었고, 결국 용인 오는 버스가 끊겨 밤 112시가 넘어 신갈 행 버스를 타고 에둘러 와야 했다. 그리고 아침 뉴스를 보니 과잉진압 때문에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기자가 버스를 탄 직후 물대포를 동원한 강제 해산이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군홧발에 짓밟히는 서울대 여대생 동영상이 포착되는 등 과잉진압 논란이 일파만파 번졌다.

그런데 몇일이 지나서도 안타까운 것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 태도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모두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전에 일어났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속 시원히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촛불 하나하나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왜 국가 위정자들은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들의 함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뒤늦게 인적 쇄신안을 만든다며 청와대 참모진들이 일괄 사표를 냈고, 이 대통령은 원로들을 만나 국정의 자문을 받는다고 한다. 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그래서 어설픈 쇄신안은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는 게 국민여론이다.

“현명한 군주는 잘못이 있으면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백성에게 돌린다. 잘못을 백성에게 돌리면 백성이 분노하고, 좋은 일을 자신에게 돌리면 자신은 더욱 교만해질 뿐이다. 백성을 분노하게 만들고, 자신을 교만하게 만드는 일은 바로 몸을 망치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분노한 목소리가 귀에 들리고, 분노한 낯빛이 눈에 보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두려워함을 나에게 끌어옴, 이것은 현명한 군주가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이는 중국 5000년 역사에서 최고의 정치가로 꼽히는 관자(管子·기원전 725~645년)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