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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농(愚農)의 세설(細說)

상소문 쓰는 법

<우농의 세설>

<우농의 세설>

상소문 쓰는 법


공자는 말을 할뿐이다. 그 많은 말들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제자가 됐다. 제자가 된 자들은 스승의 말을 목숨 걸고 기억해서 후대에게 스승이 했던 똑같은 방식으로 말을 전했다. 그러므로 논어는 기억으로 전달된 책이다.

기억이란 똑똑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게으른 사람이 들고 다니기 싫어서 머릿속에 담아두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기억은 오래가지 못하는 맹점이다. 그래서 기록 한다. 기록하는 순간 기억은 사라진다. 조선 선비들이 일생을 통해서 추구했던 것이 바로 기억이다. 이는 조선 선비들의 공부 방식이기도 하면서 생존을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 그는 선비로서는 아웃이다. 조선 선비들은 집에서는 기록을 해야 했고 집밖에서는 기억을 해야 했다. 조정에서는 임금과 경연을 해야 했으므로 수많은 말들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어야했다. 또 궁궐을 나와 술 한 잔을 하더라도 입에서 시(詩)구절은 물론 경서(經書)와 사서(史書)가 막힘없이 나와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머릿속에 엄청난 양의 기억이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선비로 산다는 건 결코 녹녹한 게 아니다. 돈이 있고 없고는 관심 밖이다. 당장 집밖에 나가서 상대방의 말에 대구(對句)를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수모를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어려서부터 부단한 훈련 즉 끝없는 반복 학습을 통해 머릿속에 쪼아서 박아 넣으므로 완성된다. 아버지 바지를 끌어당길 수 있는 나이인 해제지동만 되면 글을 읽기 시작하는데 일자언· 삼자경· 사자소학· 오추칠율, 그리고 천자문. 이런 식으로 기초가 끝난다. 천자문 정도만 떼면 13경의 60%를 읽을 수 있다.

글이란 어려운 말 때문에 이해를 못하기보다는 쉬운 말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해서 하루에 천자를 외는 일송천언(日誦千言) 맹자공부까지 오는데 기간은 대략 5년이 소요된다. 우스게 소리로 서당 개도 삼년이면 풍월을 읊고(堂狗三年吠風月) 서당 밥 오년이면 문장이 난다 했다(堂飡五年出文章).

조선 선비들의 기본 교과서는 사서인데 그중 으뜸이 논어요 문장은 맹자다. 논어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책을 읽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며, 맹자를 읽지 않았다는 것은 글을 쓸 줄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유는 조선 선비가 상소문을 쓸 때 논어로 뼈대를 잡고 맹자로 살을 붙이는 까닭이다. 가끔 정치인들이 큰일에 앞서 상소문 쓰는 심정 운운하는데 듣기가 민망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