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설마 했건만... 이 나라가 부끄럽고 슬프다
온 국민이 상실과 자괴감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을 둘러싼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 소문이 현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 이상 정상적인 국정운영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영향으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취임 뒤 가장 낮은 14%로 급락했다. 이는 한국갤럽 조사 결과로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 역시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가 78%로 취임 후 최고치다.
여론을 반영하듯 곳곳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들풀처럼 번지고 있다. 대학가를 시작으로 사회· 종교단체에 이르기까지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만 보면서 뒷짐을 지고 있는 사이, 일부 언론들의 취재만으로 밝혀진 결과다. 앞으로 특검과 국정조사를 하면 얼마나 더 많은 국정농단 사례가 나올지 벌써부터 겁이 날 정도다.
문제는 이 같은 사태가 일찌감치 예견됐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여당과 보수언론들은 권력 유지와 자사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최순실의 아바타’ 권력창출에 앞장섰다. 그리고 권력을 잡은 후엔 양심있는 인사들과 언론의 올바른 비판여론이 있었음에도 재갈을 물리기에 급급했다. 그때마다 새누리당 친박계 인사들과 검찰은 온갖 쇼로 박근혜 대통령의 방패막이를 자처해왔다. 그 결과, 대통령을 제대로 보필하기는커녕 3년8개월을 비선실세들의 방패막이와 꼭두각시로 전락해 왔던 것이다.
당장 박근혜 정권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우병우 청와대 정무수석, 그리고 청와대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을 두루 거친 이정현 현 새누리당 대표부터 사퇴해야 한다. 정말 무능하고 나쁜 사람들이란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와 관련된 내각과 청와대 인사들도 전면적인 물갈이를 해야 한다. 사퇴와 함께 엄중한 책임도 물어야 마땅하다. 국정운영에 있어 불의를 방조하고 조장한 죄는 역모죄 만큼이나 큰 대역죄다.
도올 김용옥은 4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당선되면 환관들만 들끓을 것이라고 예견한바 있다. 그는 지난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통일은 대박’ 이런 게 박근혜 언어인가. 어떤 면에서는 영매적 언어”라며 “(그동안 대통령의) 성명서(공식 발언)를 분석해 보면 전후 맥락이 맞지 않는다. 정치인 태도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무당춤을 춘것 같다. 그러니까 최순실의 아바타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또 “최순실이란 인간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허약한 멘탈리티를 가지고 대통령이 된 박근혜가 그동안 국민들과 같이 저지른 죄악을 책임지고 가야 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을 제외한) 청와대의 모든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보수언론이 보수세력과 같이 그 여자를 만든 거다. 국민들 눈을 멀게 한 세력이 바로 보수언론 세력이다. 그런데 이제 와 이 여자를 빨리 털어버려야 우리가 산다고 하는 건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국회가 환골탈퇴 후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일부 대권후보들은 거국내각 구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야 정치권은 이미 특검에 합의했고, 국민들 사이엔 탄핵과 하야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진실규명이 우선이다. 자칫 탄핵 국면으로 갔다가는 또 다른 블랙홀로 빠져 진실이 미궁으로 빠질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사태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한 게 천만다행이다. 안 그랬다면 박 대통령 임기 5년을 온전하게 환관정치로 끝냈을 것이다. 지금은 이 나라가 부끄럽고 슬프지만, 그래도 위기가 기회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