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갖자고 간곡하게 제안했다.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9월 10일(현지시간),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이 있었으며 북미 2차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적인 조율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취소되면서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후속조치가 시계제로 상태에 놓인바 있다.
미국은 선 비핵화 후, 체제보장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북한이 원하는 제제조치 완화요구에 냉담하게 대응해왔다. 북한은 최소한 종전선언과 부분적인 제재완화라도 보장해야 추가 비핵화 일정을 진행 할 수 있다고 버텼다.
북한과 미국의 갈등의 배경에는 중국도 한몫 했다. 중국은 종전선언의 당사자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모색해왔고 그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직간접적인 훈수를 두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의 공로는 오직 자신에게 집중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독특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
트럼프는 북한이 핵사찰 리스트를 내놓지 않고 종전선언을 먼저 해줄 것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며 시진핑 주석이 배후라고 지목했다. 중국의 약한고리는 미국의 중국상품에 대한 관세보복이다. 한동안 트럼프는 미중무역전쟁에 몰두하면서 중국을 압박했다.
9월12일 블라디보스톡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한 시진핑 주석은 종전선언은 당사자인 “조선-한국-미국 3자가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며 중국-러시아-일본은 이를 돕고 공식화하는데 조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종전의 당사자라는 기존의 입장에서 한발 후퇴한 것이다. 다시 공은 트럼프에게 넘어갔다. 시진핑의 메시지는 “트럼프 당신이 종전선언을 주도하시오, 나는 빠지겠소...그러니 무역전쟁, 이쯤에서 그만 합시다”라는 것이 핵심이다.
중국의 입장 변화는 외교루트를 통해 트럼프에게 전달되었고 긍정적인 신호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한발을 빼는 상황에서 북한은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2차 정상회담을 정중하게 제안하면서 트럼프 대통령 1차 임기중에 비핵화를 매듭짓고 싶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러시아 스캔들로 사면초가의 처지에 놓인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예상대로 10월에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그 장소는 평양보다는 워싱턴이 될 전망이다.
워싱턴 북미정상회담이 실현되면 김정은은 세계정치의 중심무대에 화려한 첫발을 내딛는 것이며 북한은 은둔의 왕국이 아니라 정상국가라는 것을 전 세계로부터 공인받게 되는 것이다.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비핵화 일정과 종전선언에 대한 큰 틀의 합의가 도출되면 비핵화 로드맵은 속도를 낼 것이 확실시 된다.
북한비핵화의 주인공은 누가뭐래도 트럼프와 김정은이다. 트럼프가 공언한대로 세계는 그가 김정은과 의기투합하여 ‘한반도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을 조만간 보게 될 전망이다.
김정은의 입장에서는 ‘트럼프’야말로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구원자인 셈이다. 미국 주류세력의 입장은 북핵의 현상유지다. 북핵을 빌미로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면서 중국을 봉쇄하고 아시아에서의 지배력 강화를 공고하게 다지는 것이야말로 미국이 21세기 유일패권국가의 지위를 유지하는 핵심전략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어왔기 때문이다.
북한의 비핵화가 실현되면 동북아 정세는 근본적인 대전환의 시기를 맞게 된다. 당장 미국의 영향력이 크게 감소하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일방적인 독주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미-중-러-일의 세력균형이 조정되고 남북한의 역할이 새롭게 재조명되게 될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일월서각) ‘한국현대사’(창비)의 저자인 ‘브루스 커밍스’(1943~)교수는 세계 최고의 한반도 전문가이자 당대의 석학이다. 현재 미국 시카고 대학의 교수로 재직중이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면 통일이 되거나 남북한 경제공동체를 이루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그 해법으로 최소한 분단구조의 타파와 평화체제 구축, 실질적인 민족동질성 회복과 경제공동체 실현을 주문했다. 이것이 전제된다면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단일내수시장의 필수조건을 갖추어 독일에 버금가는 성공적인 모델이 될 것이며 통일의 장애물을 자력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즉 선진국이 되고 싶으면 분단 이데올로기를 혁파하고 남북협력과 공생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의 정치지도자들은 혁신성장이니, 소득주도성장이니, 출산주도성장이니, 자잘한 의제에 매몰되지 말고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권고대로 분단구조 혁파와 남북협력과 공동체 건설이라는 거시적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서 경제성장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지원을 퍼주기로 매도하는 천박한 논쟁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정대로 9월18일부터 20일까지 2박3일간 평양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다. 문재인-김정은 회담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준비실무회담의 성격을 띠게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무산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대북특사를 시의적절하게 활용하였고 대화의 불씨를 살려냈다. 북미-미중간의 직간접적인 외교채널이 작동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대북협상은 유의미한 것이었다.
문재인-김정은 회담에서 비핵화로드맵에 대한 남북의 견해차를 조율하고 공동의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의제다. 남북정상은 별도로 북한의 철도 도로 발전소 등 인프라 구축에 대한 견해도 심도 있게 교환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고 북한에 대한 제재가 상당부분 해제된다면 즉각 ‘북한인프라’구축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냐이다.
자유한국당과 일부 보수언론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경제협력과 대북지원은 절대 안된다는 입장이다. 이들의 반대보다 더 신경 쓰이는 대목은 체감경기가 IMF 이후 최악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북경협을 추진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동의다. 불행하게도 대북경협은 ‘퍼주기프레임’에 갇혀버린 지 오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하도 많이 퍼주어서 그 돈으로 핵개발을 했다”는 억지논리가 국민의식에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사실 별로 퍼준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대통령과 정부, 민주당은 먼저 북한에 대한 지원은 절대 무상이 아니며 경제회복과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필수적인 과정임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정부는 9월13일 국회에 ‘판문점선언’에 대한 비준동의를 요청했다. 야당의 반대로 여야는 3차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를 보고 비준 여부를 결정한다는데 합의 했다. 이 과정에서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는 대목이 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기도 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생방송으로 국회 의장단과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 여야 5당 대표에게 대통령의 방북에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을 제외한 야당은 즉각 반발했고 문희상 국회의장도 정기국회 일정을 들어 동행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다수 국민의 눈에 임종석 비서실장의 제안은 경솔했고 다소 무례하게 보였다.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을 빌어 “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동행거부에 유감을 표명하고 민족사적 전환기를 맞아 당리당략을 버려줄 것을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제기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는 왜 국무회의 석상의 모두발언을 통해 대통령의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내야 했는가라는 것이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전화를 직접 하거나 만나서 다시 요청해보고 그래도 거부하면 면전에서 유감을 표하는 것이 적절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언재부터인가 직접 기자 앞에 서서 의견을 밝히기보다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대국민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선호해왔다. 습관으로 굳어질까 심히 염려된다. 국민은 지금도 생생히 몸서리치게 기억하고 있다. 국무회의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화난 표정으로 야당과 유승민 의원을 비난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밀어 붙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을 말이다. 표독스럽기조차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은 그 자체로 국민의 집단 스트레스를 유발시켰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들은 보이지 않게, 최선을 다해 야당과 국회를 설득하고 정 안되면 국민에게 호소하는 방법을 택하기 바란다. 일부 야당 대표와 국회의장단의 동행거부는 충분히 이유 있는 것이다. 국회-정당 차원의 대북협력이 필요하다면 정부의 협조를 받아 독자적으로 하는 것이 3권분립의 정신에도 맞는다.
문재인 대통령의 3차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의 돌이킬 수 없는 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용인신문 - 김종경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