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인간은 변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변한다. 뇌과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인간의 뇌가 변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이 변하는 원인은 백만 가지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이다. 과학은 정확한 정보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인문학은 적확한 정보를 다룬다. 유시민의 과학공부는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문학자의 과학 공부는 복잡한 수식과 기호들보다는 과거 인문학자들의 주장과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연결하는 작업이 중심이다. 이해의 벽이 너무 높다는 칸트의 도덕철학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거울신경세포 이론과 연결점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는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윈과 멜서스의 연구를 예로들어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의 진화와 발전을 과학과 인문학의 상보적 관계 속에서 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넓고 방대한 과학의 세계에 작은 창을 내어 보려는 필자의 태도 속에서 필자가 과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더 겸손해지고 더 너그러워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천문학자, 물리학자, 뇌과학자와 같은 연구력 만렙이면서 대중과 멀리 있는 듯한 과
[용인신문] 혹자는 어느 소설에서 “지나치게 남을 배려하고, 소심해서 안 해도 될 고민을 사서 하는 능력”을 가리켜 “쪼다력”(정은, 『산책을 듣는 시간』(2018), 149쪽, 이라 말했다. 쪼다력 뿐이겠는가. 이런저런 사건들은 쉼없이 우리 삶을 뒤흔들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부터 달아나게 만든다. 마음근력은 이때 필요하다.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항상성을 유지하면서도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단단한 마음근력에서 시작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 필자는 『회복 탄력성』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내면소통』은 이전 저술보다 학술적이고 실천적인 저술이다. 『내면소통』은 인간의 불안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자아를 기억자아와 경험자아, 배경자아로 구분하여 대상에 따라 마음 근력 훈련의 방법이 달라지고 조금 더 근원적인 처방을 발견해 나간다. 내면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대안으로 필자가 적극 추천하는 방법은 명상이다. 종교적인 행위로서 명상은 이미 세간에 많이 알려졌으나 뇌과학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명상은 낯설면서도 익숙하다. 때로는 논리적인 측면에서 어떤 면은 뇌과학의 관점에서 혹은 물리학적 입장이나 심리학적 작용 등을 넘나들며 내면의 안녕을 찾아가는 작가의
[용인신문] 이 책은 어느 환멸적인 인간의 이야기다. 발자크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비범하게 남의 돈으로 살았던 삼촌의 이야기다. 제목은 마치 빚에 허덕이는 사람을 위한 글처럼 보이지만 실용서가 아니라 발자크가 1827년에 쓴 소설이다. 보들레르는 이 작품에 대해 “빚 청구서”를 근사하게 썼다고 평했다. 역자는 글을 쓴 발자크가 “돈이 없어서 꿈이 더 많은 사람”이라 평하기도 했다. 필자는 서문에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열심히 일하지만 빚이 늘어가는 사람들에게 비열했던 자신의 삼촌 앙페제를 배우라고 말한다. 앙페제는 사업에 필요한 돈은 내기를 해서 따거나 채무에 의존했으며 죽음을 맞이한 순간조차 갚을 생각이 없었다. 앙페제가 제시하는 삶의 원칙들은 어쩐지 쓴웃음이 나온다. 앙페제는 채무를 갚지 않을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교묘하게 법과 권력을 비웃는다. 법망은 교묘하게 선한 사람들이 채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락으로 가는 것을 방조하고 권력자들은 막대한 채무를 지면서도 호사를 누리며 당당하다. 삼촌은 채무자가 채권자보다 건강해야 하며 갖추어야 할 정신적 자질도 있다고 말한다. 채무자가 해야 할 일들이 나열될수록 사회를 비틀어 바라보는 필자를 발견하게 된
[용인신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감각을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눴으나 생물들의 감각은 더 풍성하다. 모든 생명체는 각각의 고유한 감각으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세계를 인지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굉장한 세계』는 동물들의 감각과 인지에 관하여 13꼭지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를 통해 지구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안내한다. 지구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굉장한 “광경과 질감, 소리와 진동, 냄새와 맛, 전기장과 자기장”같은 보이지 않는 풍경으로 가득하다. 동물들은 어떤 풍경 속에서 사는냐에 따라 다른 감각으로 먹이를 구하고 짝을 찾는다. 인간이 세 개의 색을 조합해서 인지한다면 어떤 생물은 열 여섯 개의 색각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생물은 소리를 이용해 시력이 닿지 않는 그 너머의 존재를 인지하기도 한다. ”감각은 동물의 삶을 구속함으로써 '탐지할 수 있는 물체'와 '할 수 있는 일'을 제한한다. (23쪽)“ 그런데 무궁한 감각을 동물들은 모두 활용하지 않는다. 자연의 생물은 오히려 가장 최소의 감각만을 활용한다. 필자는 “환경적 빈곤은 행동의 확실성을 위해 필요하며, 확실성은 풍부함보다 더 중요하다.(....)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는 동물은 없으며, 그럴 필요도
[용인신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짠내가 진동하다 못해 쓴 내가 올라올 지경이다. 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정우 엄마의 넋두리는 깊은 걱정이 묻어난다. “사는 게 참 얄궂다. 인생 지랄에 비하면, 바다가 갑자기 미쳐 날뛰는 건 일도 아니지.”(14쪽) 이수는 불행했다. 양육비를 타기 위해 이수를 데리고 있지만 돌보지는 않는 엄마. 그리고 비슷한 수준의 새 아빠. 다행히도 새아빠의 엄마인 할머니는 그런 이수를 일터로 불러 밥도 챙겨주고 돌아가는 길에 슬그머니 반찬도 챙겨준다. 어느 날 엄마도 새아빠도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고 그 자리에 이수도 있었다. 할머니는 이수를 작은 섬 솔도로 데려온다. 조용히 살고 싶은 이수를 기윤이 괴롭히고 이 상황에서 신세아가 등장해 이수의 향방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결말은 충분히 예상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과정 속에서 이수가 어떤 결정을 하는지,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흥미롭게 봐야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학교폭력, 무관심, 무기력, 복지의 사각, 재판의 문제점, 청소년 심리 등을 이야기 안에 자연스레 녹여냈다. 이수가 사는 솔도의 원래 이름은 수인도. 죄인을 가두는 섬이었다. 사람과 섬의 이름에 의미를 담
[용인신문] 국가 간의 전쟁은 피해자에게만 두려움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전범국의 시민들은 그들의 지도자에 대해 어떤 감정들을 가지고 있을까? 전쟁과 상관없어 보이는 오지에서는 전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전범 국가 소시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인 요한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소설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가던 독일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우편배달부 요한은 전사가 되고 싶었으나 3주 만에 왼쪽 손을 잃고 돌아왔다. 요한은 전장에서 보내온 편지들을 마을로 배달해 주고, 마을 사람들이 전장으로 보내는 소식도 대신 받아 우체국에 전달했다. 무엇보다 검은 편지가 중요했다. 그것은 전사자 소식이었다. 맨 처음 전사 소식을 전했을 때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없었던 요한은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게 요한은 일곱 마을에 우편배달을 했다. 요한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마을에 남은 사람은 부녀자들과 아이들과 노인 혹은 장애인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품은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두 어머니를 요한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보여주어 전쟁이 주는 참상을 더욱 짙게 전달한다. 요한은 우편배달부가 전쟁 중 소식을 전해줘서 의사와 같은 역할을
[용인신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파독 간호사를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실업문제 해소와 외화획득을 위한 해외인력 수출의 일환으로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1만여 명의 간호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짧은 해설 속에 간호사들이 경험했을 외로움과 슬픔, 고립감,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모멸감 같은 것들은 누락되어 있다. 백수린의 『눈부신 안부』는 그런 감정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몇 가지 사건들이 얽힌다. 부천에서 어떤 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가족이 그 슬픔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독일에 가고 그곳에서 파독 간호사들과 만난다. 그들은 만나고, 웃고, 울고, 누군가를 위해 서명에 동참한다. 소설이 펼쳐 보이고자 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안녕하지 못한 채 안타까운 사연을 품고 겨우겨우 현실을 견디는 사람들이다. 사건으로부터 시공간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도망치지만 소용없다. 하지만 작품은 문제에 집착하기보다 이들이 어떻게 불행들을 견디고 헤쳐나가고 직면하는지를 독자에게 더 많이 보여주려 한다. 슬픔 때문에 잃어버렸던 꿈을 찾아가고야 만다. 꿈의 방향은 정해지지 않아서 그것이 어린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인간애가 되기도 하고, 독일에서 담그는 김장의 맛이 되기도,
[용인신문] 나이가 든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저술이다. 책날개에 소개되고 있는 파거 J. 파머의 면면을 보거나 그가 설립한 ‘용기와 회복 센터’를 종합해 보면 필자는 행동주의 학자이다. 저자 『비통한 자들의 정치학』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한데 그 역시 실천하는 시민을 강조하고 있다. 도서의 제목인 “모든 것의 가장자리”라는 말은 커트 보니것의 『자동 피아노』에서 “가장자리에서는 한가운데서 보지 못한 온갖 것을 볼 수 있다”(14쪽)는 말에서 차용해 온 말이다. 생의 후반부에 있는 필자가 멀티태스킹도 할 수 없고, 두려움도 있지만 그래서 볼 수 있는 시야가 넓어지고 때로 부정적인 감정마저도 삶을 단단하게 해주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나이 듦에 대한 소회로 시작하여 세대간 소통이 필요한 이유, 현실이 뒷받침되는 사유에 관하여, 그의 저술들에 대한 단상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노년 세대가 가져야 할 사유들, 그간의 삶에 대한 반성, 지금의 소중함에 대한 재인식 등을 에세이에서 소개하고 있다. 파머는 “우리는 무덤으로 끌고 가는 중력”에 “경쾌함”으로 맞선다. 나이 들수록 유머를 즐기며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러기 위
[용인신문] 에마는 하트필드에 사는 우드하우스의 미혼인 상속녀이다. 언니 이저벨라는 존 나이틀리와 결혼해서 런던에 살며 한해 한 번 정도의 방문을 받는다. 가정교사이자 친구인 테일러 양은 웨스턴씨와 결혼해서 랜들스에 살고 있다. 어느 날 애마는 해리엇 스미스라는 열 일곱 처녀를 소개 받고, 이 소녀를 앨튼이라는 사람과 연결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앨튼은 애마에게 마음이 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애마는 자신의 판단 착오에 당황한다. 애마는 이 사실을 스미스에게 밝히고 후회한다.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는 것이다. 항간에 수없이 회자되는 I 메세지로 말하기 등은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들여다보라는 사회적 처방전이 아닐까 싶다. 남의 연애에 혹은 감정에 이러쿵저러쿵 조언하는 애마를 보면 우리도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타인의 고민에 쓸데없다 단정을 내리고 있는 것.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할지라도 애마의 행태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이성과 감성』(1811)과 『오만과 편견』(1813)이 더 유명하지만 『에마』(1816)도 나름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용인신문] E.M. 포스터가 쓴 Aspects of the Novel(한국 도서명 『소설의 이해, 』)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차용한 도서 제목 『호모 픽투스의 모험』. 저자는 스토리텔링이 인류를 진보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면보다 광기로 이끈다는 부정적인 견해에 무게를 두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스토리텔링의 대상은 주로 대중이다. 미디어는 대중의 뇌리에 스토리텔링을 암시적으로 은유적인 방법으로 각인한다. 대중은 미디어 속 이야기의 인물이 가상인 것을 알면서도 그 인물에 자신을 투영해서 받아들인다. 스토리텔링에 노출된 대중은 그 속에 담긴 의도대로 때로 부족의 사명에 부응하거나 종교적인 신념을 갖기도 하고 정치적인 입장을 정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대중이 자아 소멸을 눈치채지 못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의 의도를 따른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보편적인 이야기의 구도인 악과 선의 대결에서 선의 승리이다. 보편적인 이야기의 구도는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정치의 현장에서, 역사의 기록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모두 허구임을 설명한다. 미국 의회에서 벌어진 대통령의 연설과 시선에 담긴 스토리텔링은 정치에 함의된 이야기 방식을 알게 한다.
[용인신문]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을 빌어 제목을 정한 이 산문집은 오묘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때로 행복한 결말로, 때로는 슬픈 순간에 막을 내리는 연극 무대. 그곳에 펼쳐진 사랑을 길어와 하나의 새로운 생애를 엮어냈다. 산문집은 아홉 연극에 작가 자신의 삶을 까메오처럼 엮어 넣어 새로운 공연을 산문집에 펼쳐놓았다. 연극을 해설하지만 문학을 이야기하며 삶을 거쳐 철학적 사유에 이른다. 작가가 소개하는 연극은 400년 이상 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으로부터 2019년에 무대에 오른 루비 래 슈피겔의 《마른 대지》까지 다양한 시대의 작품을 아우른다. 국내 작품으로는 배삼식의 《3월의 눈》이 소개되었다. 필자는 무대에 펼쳐지는 사랑의 이야기에 분노하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한다. 역사적 사회적 사실보다 사랑에 더 몰입한다. 삼각관계, 엇갈린 사랑, 아픈 사랑, 분노의 사랑. 어떤 사랑도 간절하고 애틋해서 파멸에 이를지라도 결국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야 만다. 연출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인물 소개도 흥미롭다. 배우의 사진은 독자를 연극의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배우의 출연작을 소개하고 있어서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지막에 연극 포스터와 간단한
[용인신문]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장자료 알려진 키플링이 쓴 작품 『정글북』은 두 개의 판본을 가지고 있다. 모글리가 숙적 시어칸을 물리치기까지의 내용이 첫 번째 판본에 실렸고, 이후 성인기까지의 이야기가 두 번째 판본에 실려 있다. 이미 애니메이션으로도 소개가 많이 된데다 간결하게 요약되어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도 많이 출간이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원본이 가진 의미가 달라진 채 회자 되고 있다. 어버이 날을 맞아 『정글북』의 모글리를 키워낸 이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모글리에게는 다양한 층위의 부모가 있다. 모글리의 생물학적인 엄마는 메수아라는 여인이었다. 호랑이 때문에 네 살 무렵의 아이를 잃은 메수아. 야성을 가진 아들이 돌아오자 인간세계에 적응하는 법을 가르쳤다. 메수아는 마을 사람들이 아이를 이방인 취급하자 안타깝지만 마을에서 떠나게 한다. 숲에서 길을 잃은 모글리를 키워낸 부모는 늑대무리이다. 대장 아켈라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모글리의 생존을 보증했으며 모글리가 납치되자 끝까지 추적해서 구해낸다. 곰 발루와 표범 바기라는 가르치는 부모의 역할을 맡았다. 때로 따뜻하게 때로 엄격하게 정글의 법칙과 언어를 가르쳤다. 특히 바기라는 모글리가 찾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