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6 녹번동 이해존 1 햇살은 오래전부터 내 몸을 기어다녔다 문 걸어 잠근 며칠, 산이 가까워 지네가 나온다고 집주인이 약을 치고 갔다 씽크대 구멍도 막아 놓았다 네모를 그려 놓은 곳에 약 냄새 진동하는 방문이 있다 타오르는 동심원을 통과하는 차력사처럼 냄새의 불똥을 넘는다 어둠 속의 지네 한 마리, 조정 경기처럼 방바닥을 저어간다 오늘은 평일인데 나는 百足으로도 밖을 나서지 않는다 2 산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희끗한 뼈마디를 드러낸 절개지, 자귀나무는 뿌리로 낭떠러지를 버틴다 앞발이 잘리고도 언제 다시 발톱을 세울지 몰라 사람들이 그물로 가둬 놓았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곪아가는지 파헤쳐진 흙점에서 벌레가 기어나온다 바람이 신음소리 뱉어낼 때마다 마른 피 같은 황토가 쏟아져 내린다 무릎 꺾인 사자처럼 그물 찢으며 포효한다 3 저마다 지붕을 내다 넌다 한때 담수의 흔적을 기억하는 산속의 염전, 소금꽃을 피운다 옷가지와 이불이 만장처럼 펄럭이며 한때 이곳이 물바다였음을 알린다 흘러내리지 못한 빗줄기를 받아내는 그릇들,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방안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퍼낼 때 땀방울이 빗물에 섞였다 오랫동안 산속에 갇혀 있던 바다가 제 흔
울림을 주는 한 편의 시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윤성택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습니다 들고 있던 화분이 떨어지고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었던 뿌리가 흙 밖으로 드러났습니다 내가 그렇게 기억을 엎지르는 동안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내 안 실뿌리처럼 추억이 돋아났습니다 다시 흙을 모아 채워 넣고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손으로 꾹꾹 눌러 주었습니다 그때마다 꽃잎은 말없이 흔들렸습니다 앞으로는 엎지르지 않겠노라고 위태하게 볕 좋은 옥상으로 너를 옮기지 않겠노라고 원래 자리가 그대 자리였노라 물을 뿌리며 꽃잎을 닦아내었습니다 여전히 그대는 아름다운지 화분 속 같은 생활 속에서, 살기 위해, 뿌리를 내리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우리의 삶에도 새해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화분 속의 생이여 어제는 어두웠고 내일도 다를 바 없을 것이나 어차피 파고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밑으로 밑으로 흙의 품속을 파고들며 점점 지상과 멀어지지만, 우리의 자식들인 잎과 가지와 열매들은 환한 세상을 보게 될지니, 끊임없이 생을 파고들자. 어느 날 화분 같은 벽이 눈앞에 다가설지라도.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5 납이다 서영식 풀잎처럼 휘어진 낚싯대를 보고 있었다 그때 납이다! 아이가 소리쳤다 그래, 저건 고기가 아니라 납덩이가 낚싯줄을 문 것이란다 다시 납이다! 아이가 소리쳤다 그래, 납이다 먹먹한 물속에 가라앉아 숨을 참고 기다리는 거란다 다시 납이다! 나비다! 소리치며 아이가 뛰어갔다 아 나비, 추락을 반복하는 무거운 날갯짓 허공을 튕겨 다니는 위태로운 비행의 저것도 강물 속 봉돌처럼 자꾸만 가라앉으려는 납, 나비다 51.6% 대 48%. 당신과 나는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절반의 성공인가? 아니면 절반의 실패인가? 납인가 나비인가. 민주주의라는 랑그는 천 개의 빠롤을 가지고 있는가? 비로소 바벨탑의 국민이 되었으니, 천 개의 언어를 가지게 되겠지. 나는 납, 너는 나비.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납이든 나비이든 자꾸 가라앉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신은 납 아니면 나비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4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서산대사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청허(淸虛) 휴정(休靜)의 시 한 편을 적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거니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라의 명운이 갈릴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기에 함께 의미를 되새겨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휴정은 묘향산에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묘향산인(妙香山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불린다. 이 시는 서산대사라는 호칭으로만 우리 귀에 익숙한 그 분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시라 할 수 있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은 올 겨울뿐만 아니더라도, 누구나 눈 덮인 들판을 걸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처음 걷는 이야 막막한 심정으로 길을 내며 걸었겠지만, 그 다음 그 길을 걷는 이들은 한결 편하게 눈길을 걸었던 기억 말이다. 그렇게 새로운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알려진 바와 같이,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조직해 나라를 구한 분이기도 하다. 기득권층은 물론 임금마저 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3 타다토모의 하이쿠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얹힌 나뭇가지였겠지. 시, 한 줄도 너무 길다는 말은 그다지 틀린 것 같지 않다. 일부러 시를 외워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면야 사정이 다르겠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시란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어느 시 한 편의 한 대목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 다음엔 뭐더라, 대개 그럴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도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면 되는 일. 어쩌면 사랑 고백에 말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일. 내리는 눈발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 또한 그보다 더 많은 모든 죽어간 사람들, 그들은 무엇을 남겼을까? 이름, 그래 이름이다. 이름만 기억되어도 그는 나름 성공한 삶을 살다 간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악행으로 이름을 날린 자 수두룩하지만. 이름 몇 자, 그것이 가장 훌륭한 하이쿠가 아닐까. 당신 이름 속에 담긴 뜻을 생각해보자. 이름 뜻대로만 살아도 당신은 나름 성공한 삶을 산 것이다. 아, 주저리주저리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저 위 하얀 여백 속에 나뭇가지처럼 걸린 한 줄의 하이쿠만도 못
울림을주는 시 한 편 - 112 홍어 오태환 쐐한 薄荷잎 향기가 쓸쓸했다 썩은 두엄더미와 썩은 볏짚 속에서 삭힌 한 철 내내 비뚜로 구겨진 채 검게 빈 구강, 아직 선득선득한 배지느러미, 방패연같이 납작하고 흐린 몸피, 미늘 같은 가시가 돋친 꼬리, 울금빛 애까지 샅샅이 항구의 그림자처럼 어두워졌겠다 항구의 그림자에 항구의 그림자가 포개진 것처럼 어두워졌겠다 불완전연소의 허기 콧속과 인후를 양잿물에 재 놓은 것 같다 뱃살 한 점에 미나리를 얹고 양념간장을 찍어 입안으로 가져간다 그러니까 소줏잔을 곁들인 무심한 젓가락질은 다만 그것의 쓸쓸함과 내통하거나, 그것의 어둠에 독하게 부역하는 일 이 숨죽인 식욕을 채우는 저녁나절, 눈발 날리는 항구의 저녁나절 아, 우리 콧속으로 들어오는 그 모든 냄새는 냄새가 되기 위해 얼마나 깊게 썩어문드러져야 하는 것이냐. 우리 몸을 빠져나가는 냄새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우리 몸속에 머물다 가는 것이냐. 냄새는 머물다 가는 것. 연기처럼, 사라지기 직전에 퍼지는 주술 같은 것. 당신이 코를 돌려 피하는 냄새는 이미 당신 몸속에 가득 들어차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냄새는 욕망을 입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10 - 용인신문 창간 20주년에 부치는 편지 당신이라는 울림 당신에게 보낼 편지를 쓰다가 잠시 눈을 감기도 했습니다. 생활로부터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을 떠돌던 시절, 낯선 곳에 주저앉아 책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두세 번 눈길로 언더라인 한 후 갖곤 하던 버릇입니다. 한 여자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연인을 생각하며 영국 도버에서 띄워 보낸 유리병 편지가 바다를 건너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서 30년 후에 발견되었다는 글을 읽었을 때, 나는 편지를 쓰는 일의 목적은 답장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도 받아야할 사람도 모두 죽고 난 뒤였습니다. 하지만 답장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현현되든 간에, 누대에 걸쳐 그래왔듯이,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종이에 쓰인 간절한 마음이어도 좋고, 이마의 피를 닦으며 재림하는 메시아여도 상관은 없습니다. 이 편지는 출근 후, 당신에게 보낼 시를 다시 한 번 읽고 난 뒤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 내려간 것입니다. 물론 사이사이 인터넷을 통해 메일을 검색하기도 했고, 읽다만 책을 잠시 펼쳤다 다시 접기도 했습니다. 아, 걸려온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짧게 한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09 형편대로 김주대 술파는 여자를 사랑했다 그녀는 내 형편을 사랑했고 한동안 나는 외로움을 잊었지만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녀는 떠났다 형편 좋은 사람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사랑이 밥 먹여 주느냐는 말, 틀린 말 아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당신과 당신의 아내 혹은 남편은 서로 먹여 살리기 위해 돈을 벌고 또 밥상 앞에선 입 안에 맛있는 반찬도 집어 넣어주는 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절 지났다고 말하지 마라. 대신 당신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라. 그런 날 연애할 때나 있었다고 말하지 마라. 왜 연애할 때와 살림 살아갈 때의 마음이 달라졌는지 먼저 따져보라. 안타깝게도 이 밥 먹여주는 사랑은 생각처럼 오래 가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에게 떠 먹여주던 밥숟가락이 자식 입 속으로 들어가는 날을 기준으로 사랑은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 아, 그러나 나는 사랑이 밥 먹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몇 번 본 적 있다. 몇 해 전 장인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암 병동에서 투병 중이었다. 이 소식을 어찌 알았는지 장인의 50년 전 첫사랑 여인이 찾아왔고, 그 여인은 사선을 넘나들며 혼수(간성혼수)를 오가는 첫사랑
눈물의 방 김정란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작고 작은 방 그 방에서 사는 일은 조금 춥고 조금 쓸쓸하고 그리고 많이 아파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방바닥에 벽에 천장에 숨겨져 있는 나지막한 속삭임 소리가 들려 아프니? 많이 아프니? 나도 아파 하지만 상처가 얼굴인 걸 모르겠니? 우리가 서로서로 비추어 보는 얼굴 네가 나의 천사가 내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 조금 더 오래 살다 보면 그 방이 무수히 겹쳐져 있다는 걸 알게 돼 늘 너의 아픔을 향해 지성으로 흔들리며 생겨나고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크고 큰 방 삶이 감동만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건 학교를 마치고 사회로 나와 한두 달, 혹은 결혼 후 몇 년 살다보면 알게 된다. 감동과 서러움과 기쁨과 후회와 서글픔이 섞어찌개처럼 한데 섞여 우리와 한 방을 쓰며 살아가듯이, 그 맵고 씁쓸하고 달콤하고 아린 것들의 궁극에는 눈물 방이 있다. 슬퍼도 눈물이 흐르고 기뻐도 눈물이 흐른다. 사랑하는 이가 떠나도 눈물,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도 눈물, 슬픈 영화를 보다가도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강물처럼 흐르나 그 시작도 알 수 없고 끝도 알 수 없다. 우리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07 관통 이인철 목구멍 너는 나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았다 낙지 빨판이 목구멍 수백 개 목구멍으로, 나를 바다를 삼키고 있다 절단된 연체의 목구멍들이 입천장에 들러붙어 죽을힘을 다하여 내 목구멍을 몸도 없는 제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한다 남자가 사랑의 이름으로 여자의 뻘을 드나들듯 너도 뻘의 목구멍을 들랑거리면서 도덕과 내장을 목 넘기고 살았잖니 세상의 마지막 바닥을 기는 겸손처럼 사랑도 목숨을 내놔야 한 사람의 가슴을 관통하여 죽는 날까지 내 길이 되지 않겠는가 또 다른 세상으로 다시 태어나려면 죽어야 하듯 내 몸을 통하여 관통하여라 늪보다 더 깊은 꾸물꾸물한 소장과 따뜻한 대장을 지나 밖으로 삼키는 항문의 목구멍으로 별이 별을 관통하며 폭발하듯 네 주검이 네 비애를 관통할 것이다 신의 항문을 통해 죽음들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우리 몸 자체가 구멍이다. 구멍에서 태어나 구멍 속에서 살다가 구멍으로 돌아간다. 구멍을 통해 밥을 먹고 사랑을 속삭이며, 구멍을 통해 사랑의 밀어와 오욕을 함께 듣는다. 사랑할 땐 서로의 구멍을 찾아 빈틈을 메우고, 이별할 땐 구멍을 빠져나오며 상처를 남긴다. 어느 쪽이든 더 큰 구멍을 만들 뿐이다. 구멍 중
달팽이 전다형 내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무기수였다 평생을 독방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은 외출을 했다 그의 따뜻한 집이 슬픈 감옥이었다 절벽 앞에는 겹겹의 어둠이 보초를 섰다 온몸으로 푸른 감옥을 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집이 있어 짐이 되었다 창문도 없는 감방에서 제 살을 파먹으며 젖은 슬픔을 말렸다 비가 감옥의 문을 열었다 굳게 닫힌 귀를 열고 안테나를 높이 세웠다 온몸으로 바닥을 읽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마른 길에게 부드러운 속살 다 파 먹히고 겨울 무논에 빈 껍질로 둥둥 떠 있었다 네 어미의 어미가 그랬다 살아서 감옥이던 집 네 어미의 자궁을 열고 네가 태어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집 슬픈 감옥을 죽어서 빠져 나오고 있었다 무기수 아닌 인생이 어디 있으랴. 누구나 종신형, 지상에 머물다가는 형량만 다를 뿐 우리는 너나없이 한 평 독방 신세의 죄인들이다. 누군 팔십에 죽고 누군 삼십에 죽는다. 20평 아파트에서 30평 아파트로, 다시 45평 아파트로 평생 대출금을 등에 지고 옮겨 다니다가 죽고 난 뒤 묘지 반 평 혹은 납골당 두 뼘 유골함에 들어가는 것이 이 땅에 사는 달팽이족의 일생이다. 집
화살나무 박남준 그리움이란 저렇게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찢어 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대의 품 안 붉은 과녁을 향해 꽂혀 들고 싶은 것이다 화살나무, 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있다 그립다는 말의 어원은 그린다. 그리움이란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림. 새들은 제 울음소리에 맞는 이름을, 나무는 제 모양에 맞는 이름을 갖고 있다. 새들의 그리움은 울음으로 그려지고, 나무의 그리움은 몸짓으로 그려진다. 그리움은 함께 나눌 수 없어 새는 혼자 울고, 나무는 덧없이 흔들리며, 인간은 저 혼자 한 숨 짓는다. 새는 날아가 그리운 것의 품속에 깃들이고, 나무는 몸짓으로 그리운 것의 영혼을 불러들이고, 다만 인간은 그리운 이의 이름을 속으로 부르며 가슴 속에 얼굴을 그리고 또 그린다. 드러내 울 수도 없고, 갑자기 찾아갈 수도 없고, 목 놓아 이름마저 부를 수 없을 때, 그리움은 완성된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