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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부끄러운 도서관 …책 훼손 실태

- 너덜너덜한 양심 -

강창희 경기도교육위원

도서관 이용자들이 험하게 다뤄 표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훼손된 도서를 누가 대출받아 책을 읽고 싶어 할까. 망치, 펜치, 총 모양 접착제(글루건)…등 목공소에서나 볼 법한 ‘공구세트’가 학교도서관 한 귀퉁이에 있었다. 파손된 책을 수리하는데 쓰이는 도구들이다. 이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은 훼손된 책을 대형 스테이플러로 책의 가장자리를 잡은 뒤 뒤쪽으로 튀어나온 철침을 망치로 쿵쿵 두드리고, 그 위에 테이프를 붙여 수선을 마무리했다.

다른 한 쪽에도 사서 선생님의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이 8-9권 쌓여 있었다. ‘증상’은 가지각색이다. 로마 역사를 다룬 어린이 만화책은 표지와 속지 모두 여러 번 칼질을 당해 너덜너덜해졌다. 어느 책은 누군가 열심히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공부했고, 어느 책은 분홍색 형광펜으로 색칠돼 있다. ‘러브서바이벌’이란 연애소설은 알맹이는 온데간데없고 표지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파손 도서가 늘어나는 것은 도서관에 무인(無人) 반납기가 도입됐고, 도서관 이용자가 증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도서관에서 파손된 책을 수리하는 숫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이 학교도서관뿐 아니다. 각 공공 도서관마다 이용자들이 책에 밑줄을 긋거나 오리는 등 책을 훼손하는 경우가 연간 수백-수천건씩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수험서적이나 아동도서 훼손이 특히 심하다고 한다. 보통 학교도서관에서도 한 달에 10권 정도를 보수하여 활용해야 하고, 해마다 장서 점검 결과 파손 등으로 더 이상 대출이 불가능한 책도 상당히 많을 것으로 사료된다. 파손된 책은 보충하여 도서 구입에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
학교도서관에서 훼손자 색출은 거의 불가능하다. 피해는 다른 이용자들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 대출받은 책을 읽다보면 뭘 먹으면서 읽었는지 커피나 음식물이 묻은 책을 보면 기분이 불쾌해 진다. 책의 내용이 좋아도 지저분하면 아이들이 읽기 싫어한다. 중요한 부분만 오려가거나 찢어가 버려 정작 내가 필요했던 정보를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도서 훼손 행위는 예방이나 제재가 거의 불가능하다. 학생들의 도서 반납 때 사서들이 일일이 책 상태를 확인하고 책에 겉표지를 씌워 수명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각 도서관 사서들은 “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문제이다. 책을 소중히 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손에 침을 묻혀 책장을 넘기거나 가장자리를 접는 등 사소한 행위에도 책은 엉망이 된다.”고 경고하고 싶다. 학생들에게 어릴 때부터 도서관 책은 “공공(公共)의 재산”으로 여기는 자세를 가르쳐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수업 중에 공공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면서 도서관 자료에 대한 소중함을 가르치고 터득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 공공 도서관에서 낙서를 한 책을 거의 본 일이 없다고도 한다. 쉽게 파손될 수 있는 어린이 팝업북(pop-up book. 그림이 튀어 나오는 책)도 대부분 깨끗했다”고 말한다.

각 도서관에 책을 보면 밑줄 긋기, 형광펜으로 줄치기는 예사이고, 글의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찢었을까 마음에 든다고 오려 갔을까. 도서관에 무인반납기 도입하여 감사해야 할까. 빌린 책은 제 책인양 다루어야 하고 책에 대한 너덜너덜한 양심을 버려야 한다. 도서관 책이 훼손된 실태를 보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책을 깨끗이 다루고 책을 사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