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에서 제일 큰 문제는 언어와 음식일 것이다. 그중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는 서로 오해를 하거나 섭섭한 마음이 생기기 쉽상이다. 그럴 때마다 말로 풀어야 하지만 서툰 한국말로 표현하자니 어려운 높임말 때문에 역효과를 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의 남편은 위로 누나만 둘이 있는 장손이자 외동아들이다. 결혼하기 전 나는 한국에 아직도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관념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남편한테 만약 우리가 결혼하면 꼭 아들을 낳아야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는 못 사는 성격이다. 그래서 아들을 낳아야 된다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은 요즘 시대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자신의 누나들이 부모님께 더 잘 하는 것을 보고 딸이 더 좋다는 것이었다.
결국 결혼을 했고 시부모님과 일 년 여간 사는 동안 너무나 잘해 주셨다. 나는 시부모님이 은근히 아들을 낳아주기를 바라는 눈치를 챘고, ‘그래, 잘해 주신 시부모님을 위해서 아들을 낳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얼마 뒤 첫 아이를 낳았다. 딸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중에 멋진 왕자님과 결혼해서 딸아이를 낳고 머리를 예쁘게 따주는 것은 나의 소원이었으니 마음속으로 기뻤지만, 시부모님께는 죄송했다. 시부모님이 내색하진 않으셨지만 또 기대하는 눈치였다. 산후조리를 시댁에서 했는데 이상하게 큰 아이가 자꾸 새벽에 보채서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는 우리 딸내미를 보고 ‘똥강아지’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우리 딸이 아들이 아니라 싫으셔서 ‘똥강아지’라고 하시는 건 줄 알았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아니야, 아니야, 우리 딸내미가 똥강아지가 아니야, 예쁜 강아지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시아버님이 웃으시면서 한국에서는 아이를 귀엽게 부를 때 똥강아지라고 하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똥’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어서 안 좋은 말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중에 남편한테 얘기해줬더니 한 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제는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 ‘똥강아지’라는 호칭을 입에 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