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7 한 사람이 있는 정오 안미옥 어항 속 물고기에게도 숨을 곳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낡은 소파가 필요하다 길고 긴 골목 끝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작고 빛나는 흰 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지나가려고 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진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반복이 우리를 자라게 할 수 있을까 진심을 들킬까봐 겁을 내면서 겁을 내는 것이 진심일까 걱정하면서 구름은 구부러지고 나무는 흘러간다 구하지 않아서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나는 구할 수도 없고 원할 수도 없었다 맨 손이면 부드러워질 수 있을까 나는 더 어두워졌다 어리석은 촛대와 어리석은 고독 너와 동일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오래 기도했지만 나는 영영 나의 마음일 수밖에 없겠지 찌르는 것 휘어 감기는 것 자기 뼈를 깎는 사람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나는 지나가지 못했다 무릎이 깨지더라고 다시 넘어지는 무릎 진짜 마음을 갖게 될 때까지 ------------------------------------------------------------------- 여름, 숨 막힌다는 느낌은 꼭 기온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젊은 시인이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어항 속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6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김윤배 소금밭으로 변한 호수 위에 내가 섰다 수심 깊이 숨어 있던 그리움들의 부활, 너와 나를 종단하던 시간이 순장의 수수만년을 기다려 수정의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현장 흰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한 시간 속에 네가 없다 소멸 위에 꽃 핀 참혹한 시간이 있을 뿐 대지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려 네게로 가는 길을 냈을 거다 시간이 작은 수정의 모습으로 부활하기를 기다렸던 거다 기다림이란 저런 거다 죽은 시간 위에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하는 사랑 나는 지금 그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 우리는 지금 도래할 그 무엇을 기다리고 있지요. 간절히. 김윤배 시인은 한 아티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늘의 시대는 총체성을 상실한 시대이며 상실된 총체성의 회복을 위해 만들어진 문학적 형식이 서정시며 소설이라는 것이다. … 문학에서의 총체성의 획득 공간은 주체와 객체의 화해가 실현된 곳이 아니라 실현을 추구하는 과정으로서의 공간이다.”(「시인의 문학적 체험은 루카치적인가 아도르노적인가
용인신문사 사옥이전 및 개소식 안내 용인신문사가 지난 1일처인구 삼가동으로 사옥을 이전했습니다. 본사는 신사옥 이전을 계기로부설 미디어센터와 한국태교아카데미를 신설운영합니다. 1992년△향토문화발전 △지역발전선도 △왜곡보도불식 등 3대 사시를 모토로창간된 용인신문사는 임직원 모두지방자치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격려와 성원 부탁드립니다.감사합니다. 용인신문사 발행ㆍ편집인 / 대표이사 김종경 올림 -일시: 2015년 7월 8일 오후 3시~6시 -장소: 용인신문사 처인구지삼로 590(CMC빌딩307호) -문의: 031-336-3133 ★화환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5 샤퍄 연필깎이 심재휘 사춘기는 수식어가 없는 밤이다 열여섯을 앓고 있는 딸이 눈물방울을 떨구고 아직은 식지 않은 여름밤에 선풍기는 소리 없이 돌고 나는 연필깎이로 샤파 샤파 연필을 깎는다 연필은 어둠 속에다 무엇을 쓰려는 걸까 선풍기는 고개를 좌우로 젓기만 하고 나는 연필깎이를 적당히 정말 적당하게 힘을 주어 돌리는 오래된 손 아빠의 달은 창밖을 공전하고 딸의 별빛은 너무나 희미하고 이 넓은 우주에서 샤파 샤파 아프게 깎고 깎이는 연필의 밤 셀 수 없는 몇 자루의 밤을 몸 안에 품고 오늘은 딸이 운다 그럴 때면 나는 뭉툭하고 눈물이 그렁한 연필을 연필깎이에 넣고 길고 까만 심이 나오도록 손잡이를 돌리는데 살살 돌리는 방법밖에 알지 못하는 나의 손에는 얇고 구불구불한 눈물의 밥만 가득한데 연필의 내심(內心)이 제법 뾰족해져도 나에게는 열여섯 사춘기를 베껴 쓸 수 있는 연필이 끝내 없다 서글픈 딸의 봄밤은 작고 가지런한 그녀의 발등 위로 수식어도 없이 한 방울씩 툭툭 떨어져 번지고 있다 -------------------------------------------------------------------- 누군가 저녁별이 연필 깎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4 환희가 금지된 송승언 빈터에서 꽃들이 자란다 빈터를 밀어내며 빈터에서 꽃들은 자란다 지워지는 빈터에서 꽃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다 꽃이 아닌 것들이 빈터에서 자라고 있다 꽃이 아닐 꽃들이 웃고 있다 꽃은 아닌 얼굴들이 빈터에서 웃고 있다 얼굴은 절대 아닌 것들이 빈터에 들어차 있다 빈터에서 그것들이 자라고 있다 그것들이 함께 웃는다 함께 깔깔거린다 함께 이글거린다 함께 일그러진다 빈터에서 무너진다 무너진 것들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일어서려 한다 꽃의 잔상이 되려 한다 그러나 모두 일어서지는 못하고 모두 사라지지도 못하는 빈터에서 잔해를 헤치고 새로운 꽃이 자라고 있다 늘어진 줄기를 곧추세우려 한다 꽃은 아직 제 이름도 혈통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웃지는 못하고 있다 ------------------------------------------------------------------- 당신의 빈 터는 어디인가요. 시 속의 빈 터에는 ‘꽃들’과 ‘꽃 같은 것들’과 ‘꽃이 아닌 것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기묘하게도 ‘꽃이 아닐 꽃들’도 웃고 있네요. 인간은 누구나 꽃이지요. 다만 이 세계에서 혹은 빈 터에서 “모두 일어서지는 못하고 모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63 유빙(流氷) 신철규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다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 당신은 시계 방향으로, 나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커피 잔을 젓는다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우리는 마지막으로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점점,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갔다 입김과 눈물로 만든 유리창 너머에서 한 쌍의 여인이 서로에게 눈가루를 뿌리고 눈을 뭉쳐 던진다 양팔을 펴고 눈밭을 달린다 꽃다발 같은 회오리 바람이 불어오고 백사장에 눈이 내린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하얀 모래알 우리는 나선을 그리며 비상한다 공중에 펄럭이는 돛 새하얀 커튼 해변의 물거품 시계탑에 총을 쏘고 손목시계를 구두 뒤축으로 으깨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최초의 입맞춤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시계방향으로 당신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리는 천천히 각자의 소용돌이 속으로 다른 속도로 떠내려가는 유빙처럼, .................................................................................................................
제1회 태교수기 공모 (전국 남녀 대상) 사랑스런 자녀를 위해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실천한 태교, 출산담, 모유 수유 등에 관한 수기를 공모합니다. 임신부 혼자서 했거나 부부, 자녀,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의 도움으로 실천했던 소중한 경험이 예비 부모들에게 많은 지혜를 줄 것입니다. 아울러 세계 최초의 태교 전문서인 이사주당의 태교신기와 관련한 독후감도 공모합니다. □주최주관: 이사주당기념사업회 / 후원: 용인시, 용인신문사 □응모자격: 아기를 출산한 경험자나 현재 임신한 부부(지역ㆍ성별 불문) □응모기간: 2015년 5월 11일(월)~8월15일(토) □응모부문: 1. 태교수기 2. 출산담 3. 모유수유 4. '태교신기'관련 서적 독후감 □응모요령: 1. 아래 한글 10포인트 작성(바탕체 10p 줄 간격 160%) 2. 부문별 중복 응모 가능 3. 응모작은 온, 오프라인에 발표되지 않은 순수 작품 □필수기재사항: 1)응모 부문 2)작품명 3) 본명 4) 연락처 5)주소 □작품 접수: 이메일 접수만 가능-태교수기공모위원회 담당자 앞 이메일 주소: sajudang@nate.com □시상내역:1)최우수상: 1명 (30만원) 부상: 가족사진권(4050)-50만
오룡의 역사 타파(71) 애국과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짧은 생각 - 지금은 충군애국의 전근대적인 시대는 아니다. 1898년 10월 29일 서울 종로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단상에는 태극기가 걸렸고 의정부 참정대신 박정양, 중추원 의장 한규설을 비롯한 10여명의 정부 대신들까지 참여한 독립협회의 관민공동회였다. 지식인, 중인, 향리, 성균관과 사부학당의 학생, 신식학교 학생, 부인, 상인, 승려, 천주교도, 기생, 광대, 백정 등 신분과 관계없이 1만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개막 연설은 백정 출신인 박성춘이 했다. 이 사람은 대한에서 가장 천하고 무지몰각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충군애국(忠君愛國)의 뜻은 대강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이국편민 하는 길은 관민이 합심한 연후에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 차일에 비유하건대, 한 개의 장대로 받치면 역부족이지만 많은 장대를 합해 받치면 그 힘이 매우 공고해집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관민이 합심하여 우리 대황제의 성덕에 보답하고 국운이 만만년 이어지도록 하게 합시다. 당시에 가장 급진적인 단체였던 독립협회의 생각도 나라는 백성의 것이 아니라 임금의 것이라 생각한다. 애국은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을 위하는
오룡의 역사 타파(70) 염치없는 양아치와 야합하는 정치인들깜냥이 안된다는 의미로 통했다. 815 광복 직후에 거지들의 조직이 분업화되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얻어 오는 것을 상납 받아 생활하는 왕초, 왕초의 시종 역할을 잘해서 얻어 먹는 자들이 똘마니였다. 날치기는 막무가내 빼앗아 오는 자, 꽃제비는 몰래 훔쳐 오는 자(지금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북한의 어린 아이들을 지칭하는 은어)로 조선 후기에 소매치기에서 생성된 용어였다. 장타령은 각설이 타령의 평범한 예능을 보여주고 먹을 것을 요구하는 자들이었고, 남이 버린 물건을 주어오는 자들을 쓰레기라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곧 넝마주이로 불렸다. 구걸꾼은 남의 집이나 점포 앞에서한 푼을 요구하며 떼는 쓰는 자들이었다. 양아치라는 말은 한국전쟁 이후의 빈곤기에동냥아치가 변한 것으로 날치기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주로 깡패와 건달 사이를 오가는 자들로 거지 근성을 버리지 못한 이들을 부르는 비속어의 상징이었다.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자들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 자들을 이렇게 불러온 것이다. * 야하다라는 말은 1960년대 후반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 농촌을 떠난 많 은 젊은이들이 직
이경철 시인의 초부리 시첩詩帖 5 입춘 지나 설날과 우수로 가는 2월, 순정한 새봄을 위해 2월처럼 밋밋하고 허탈한 달도 없을 것이다. 작대기 두 개, 가을과 겨울 사이에 허허롭게 껴있는 달이 11월이듯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그 사이에 껴 참 밋밋한 달이 2월이다. 정초의 작심(作心)이 무너져 그저 세월 속으로 흐르는 달이 2월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올 2015년도 달력을 보시라. 입춘이 있고 설날이 있고 꽁꽁 언 북녘 강물도 풀리는 우수도 들어있다. 전년도엔 설날보다 한참 뒤쳐졌던 입춘이 설날 앞서 갔고 설날은 또 우수와 겹치고 있지 않은가. 지각한 절기를 작년 윤달로 다 청산하고 올해는 일찍, 제철을 맞고 있지 않은가. 찬바람 맞고 있는 매화도, 언 땅속의 마늘도 꽃과 이파리를 틔울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는 2월이야말로 천지간 삼라만상의 시작일 것을. 바람은 차도 따스하도록 환한 햇살 속에는 이미 봄이 와 있지 않은가. 이곳 초부리 전원 속으로 이사한 이래 나는 24절기와 함께 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분명 감지하고 있다. 도심에서 포은대로를 달려 귀가하며 산 능선으로 커다랗게 떠오르는 달들이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해가는 형상들을 보면서, 새벽하늘
오룡의 역사 타파(69) 영조의 위민 사상과 어느 전직 대통령의 자화자찬 허세의 차이점은 주어가 있고 없음 이다 18세기 이후 한양에는 거지들이 많았다. 왕이 사는 곳에 굶어 죽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오래된 왕도사상의 영향 때문이다. 전국의 거지들이 몰려든 혜화문 부근과 용산의 활인서에서는 날마다 죽을 쑤어야만 했다. 한 그릇 죽을 먹기위해 3000명의 굶주린 거지들이 몰려 들었다. 거지들의 대부분은 기근과 흉년으로 고향을 버리고온 빈민들 이었다. 왕이 나서서 배고픈 백성을 구휼하는데 신하들이 모른채 할 수 없었다. 서울의 부자들(대부분이 고위 관리였을)은 이때부터 거지들을 위해 빈자떡을 만들었다. 이 말이 변해서 유행가요에 나온 빈대떡이다. 돈 없으면 집에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에 나오는 빈대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영조 17년(1741) 좌의정 송인명이 도성에 떠돌아다니며 빌어먹는 자가 매우 많으니 5부의 관원으로 하여금 친히 살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자원하는 자는 양식을 주어 보내고, 한양에 남고자 하는 자는 진휼청으로 하여금 구제토록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에 영조는 백성들의 사정이 이와 같은데 군왕이 그것을 듣고 떠날
오룡의 역사 타파(68) 새나라의 어린이와 국민교육헌장, 애절양 그리고 진시황과 황희 -욕심이 없는 권력은 영원하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새나라의 어린이는 서로서로 돕습니다. 욕심장이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광복 직후 나온 윤석중이 작사한 창작 동요 새 나라의 어린이다. 1절보다 더 와닿는 내용은 2절이다. 1945년 815 당시의 어린이들이 원했던 세상은 부지런히 일하지만 서로 돕고 나누는 나라, 정의로운 나라의 건설이었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 1968년 제정된 국민교육 헌장은 각종 기념식과 기념일까지 제정되어 1993년까지 국가 주도하에 이어져 왔다. 한민족으로서의 긍지, 개인 윤리 의식의 고취, 국민이 지켜야 할 도리, 개인과 국가의 일체감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시절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어쩌면 그런 정신이 일정부분 시대적 공감을 얻은 측면이 있었기에 영화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