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박지성이나 브라질의 호나우딩요보다 더 큰 선수로 성장해다오.”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축구. 그 기세를 몰아 우리나라 선수들이 유럽 등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격려하기 위해 집집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축구가 라이벌인 일본이나 유럽국가에 비해 전략이나 기술이 단조롭다는 것은 축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지적하는 바다. 문제는 창의력!!! 우리나라의 축구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창의력을 키우고 좀 더 다양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지난 1999년 경북 구미에 선산축구교실(단장 손민성)이 탄생했다. 이후 레이번스 유소년축구단(ravens soccer club)으로 개명, 2004년에 용인의 구성 F.C와 지도협력을 체결해 2006년 용인시지부 레이번스 축구단이 탄생했다. 손민성 단장은 “외국과 견주어 볼 때 우리나라 축구교육의 잘못된 점은 학습을 우선시하는 브라질과 미국, 포르투갈 등과 달리 엘리트를 육성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보다 운동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Before vs After
2009년 말 완공을 목표료 공사가 진행중인 신개념 교통수단인 용인경량전철. 경전철은 기존 육상교통수단인 도로·철도·지하철에 이은 제 4미래형 교통수단으로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실용화돼 있다. 지금은 지하철과 도로를 대체하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받는다. 이에 용인시는 지난 1995년부터 고질적인 교통난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경전철 사업을 추진, 2005년 11월 17일 착공하게 된다. 시는 경전철이 완공되면 동서부를 30분만에 오고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루 14만명의 시민들이 경전철을 이용하게 돼 기존 교통난의 30%가량이 해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사업 초기부터 거대자본 투입에 따른 사업의 실효성 및 민간사업자 선정문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시민단체와의 마찰, 녹십자 이전문제, 역사 위치 문제 등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특히 최근에는 경전철과 연결되는 분당선 연장선 (분당 오리~수원역)사업이 예산부족 등의 이유로 지연되면서 개통시기가 당초 계획보다 2~3년간 늦어질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에 용인시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경전철 사업을 짚어본다. ■ 경전철은 돈먹는 하마 용인시가 교
수지구의 A씨(61·남)는 얼마 전 치통 치료를 위해 치과진료를 갔다가 의외의 진료결과를 들었다. 스트레스성으로 알고 있던 두통의 원인이 턱관절 때문이었다는 것. 이후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항상 같은 위생사가 치료를 보조해줘 의사에게 본인의 상태를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동안 다녔던 일반 치과와는 다른 시스템을 경험한 것. 그는 충치의 신경치료는 물론 보철과 레진 치료 등으로 치열의 높낮이를 맞춰 턱관절을 치료, 두통 치료도 함께 하고 있다. A 씨는 “치료에 따른 분야별 전문의 진료와 나를 담당해주는 위생사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 병원치료는 환자의 심리까지 수지 이다치과(대표원장 조옥환)의 장점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다치과 그룹소속으로 지난 3월 수지구 성복동에 문을 연 수지 이다치과는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CT와 같은 첨단장비 시스템 등으로 기존의 치과와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담당 위생사제와 분야별 전문의 제도를 도입, 환자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담당 위생사제는 개별의 환자를 담당하는 위생사를 두는 제도로 일반 병원에서 한 두 명의 위생사를
신당동 떡볶이 골목.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80년대에는 정말로 많은 젊은이들이 찾던 곳이다. 세월이 흘러 ‘그 때를 아십니까?’가 다시 방영된다면 나올 가능성이 제법 큰 추억의 거리다. 물론 나도 그 곳을 자주 갔다. 그런데 실로 유감스러운 것은 그 골목을 수십 번 넘게 갔으면서도 TV 광고에도 나온 그 유명한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를 끝내 먹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 할머니 가게와 마주 보고 있던 떡볶이 가게 ‘조가네’가 하필 친구네였던 탓이다. “맛은 다 똑같지”라고 친구는 말했지만 마복림 떡볶이를 먹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있나. 건너편 마복림 할머니 가게는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였다. 다른 가게들이 파리를 날려도 그 집만은 예외였다. 그곳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장사가 너무 잘 돼 그 옆 가게들은 마치 ‘삼성 거리’처럼 ‘마복림 거리’를 이루었다. ‘마복림 할머니 막내 아들네 집’은 아직도 잊지 못하는 이름이다. 난 그때 알았다. 사람들은 떡볶이를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마복림 할머니’ 가게를 온 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복림’이라는 시뮬라크르를 통해
맛대맛 | 황금돼지 해 맛으로 승부한다 기흥구 공세동 ‘남원박첨지추어탕’ # 한결같은 마음으로 13년을 이어오다 여름철 원기회복을 위해 보양식으로 즐겨 찾는 추어탕! 그러나 남원박첨지추어탕(지킴이 박민주·50)은 여름철 보양음식의 틀을 과감하게 깨버렸다. 영양만점의 추어탕이 오로지 한길을 걸어온 음식의 대가를 만나 남녀노소 누구나,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웰빙음식으로 재 탄생한 것. 용인시 기흥구 공세동에 위치한 남원 박첨지 추어탕은 특유의 담백함과 구수함으로 널리 알려진 집이다. 미꾸라지(추어)는 예로부터 원기를 돋아주는 자양 강장식품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이시진이 엮은 ‘본초강목’에 보면 “미꾸라지는 원기를 돋우고 주독을 풀며 갈증을 없애주고 위장을 따뜻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추어탕은 내장까지 함께 끓이기 때문에 알과 난소에 함유돼 있는 많은 비타민을 모두 섭취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음식이 있을까? 그러나 음식이 영양만 만점이라고 누구에게나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추어탕은 그 특유의 향이 여성들과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곳 ‘남
주 5일제 근무로 가족 단위의 외식 수요가 늘고 있다. 이제 식당은 배고픔을 달래주는 단순한 먹거리 차원이 아니라 여가를 즐기는 레저로 이해된다. 식당 경영자는 일정 메뉴만을 내놓는 반복적인 행위에서 벗어나 소비자의 심리를 읽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먼저 펼쳐 보이는 전략 전술가가 돼야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앞선 경영전략을 실행하면서 외식업계의 선두주자로 우뚝 선 CEO가 있다. 한터 시골농장가든의 조미 사장. 조 사장은 미래의 외식 경향을 읽기라도 한 듯 오늘날 유행하는 트렌드를 이미 오래전부터 충족시키며 국내외 분점 등 남들보다 여유롭게 사업 다각화를 모색하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조 사장의 성공. 그러나 이 모든 성취는 뛰어난 감각과 노력,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최대한으로 즐기며 즐겁게 일할 줄 아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 또 미래를 앞서 내다보기 위해 틈틈이 경영 서적을 읽고 벤치마킹을 통해 정보를 꼼꼼히 챙기는 프로정신의 소유자. 시골농장가든의 성공 신화는 결코 우연스럽게 다가온 행운의 산물이 아니다. 철저하게 조 사장의 땀과 노력으로 이뤄졌다. # 운명적인 식
새처럼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인간의 오랜 소망. ‘날고 싶다!’는 인간의 소망이 이제는 누구나 가능한 세상이 됐다. 발아래로 나무와 계곡을 굽어보고 새와 친구도 될 수 있는 패러글라이딩이 있기 때문이다. 기초체력과 약간의 용기 그리고 날고 싶다는 꿈 하나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만점 레포츠인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며 봄 하늘을 날자. △ 한 걸음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사람들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초부리. 둥글게 솟아 있는 정광산(해발 440m)을 향해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여기저기 패러글라이딩이란 문구가 눈에 띈다. 차를 세우고 산을 향해 고개를 돌리니 형형색색의 글라이더들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산 아래쪽에는 한가득 무언가 감싸 안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시원한 표정으로 다시 정광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활공장 입구. 한 패러샵에서 까무잡잡한 피부를 자랑하는 사람이 보기에도 탄탄해 보이는 팔뚝으로 이리오라고 손짓을 한다. 바로 정광산 자락에서 패러글라이딩샵을 운영하면서 송골매 클럽을 이끌고 있는 이영복 팀장이다. 그는 패러글라이딩 세계에서는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다. 패러글라이딩으로 용인에서 경상북도 봉화까지 167km를 5시간 3
지난 1917년 시작된 국제라이온스협회는 벌써 전세계 200여개 국가에 뿌리를 내려 회원수만 무려 130여만명에 다다른다. 해마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나며 지역공동체를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용인과 함께한 38년 용인라이온스클럽 354-B지구가 용인에 뿌리를 내린 것은 지난 1970년. 그해 1월 이천라이온스클럽의 제의로 초대 경기도의회 의원 출신인 故이학린 씨와 용인군 문화원장 출신인 故조구행 씨 등이 수차례 회합을 거쳐 같은해 7월 31일 25명의 창립회원이 이끄는 국제라이온스클럽 309-A지구 132번째 클럽이 탄생했다.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심언택 씨가 클럽에서는 37번째 회장인 만큼 용인라이온스 안에 깊이 쌓여 있는 내력과 화려한 발자취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초창기에는 매달 한번씩 나서는 시가지 청소를 비롯해 불우청소년에 선물전달, 모범집배원 표창과 상품전달, 보리베기 봉사와 농기구 전달 등 시골 정서에 맞는 활동으로 시작했지만 세월이 흘러 공원조성과 함께 아치 건립 등 활동의 규모도 달라졌다. 회원들은 “역대 라이온스 선배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배려하는 진정한 봉사정신 즉, 라이오니즘을 보여
“달리고 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음에는 절대 안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주저없이 또 참가신청을 할 정도로 끌리는 운동이 마라톤이에요” 불운의 사고로 왼쪽팔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맡은 일은 물론 마라톤 등 꾸준한 운동으로 신체적 장애를 딛고 일어난 이웃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용인시 처인구청 자치행정과에 근무하는 이길재씨(34). # 용인관광마라톤과의 인연 이 씨는 고등학교 시절 부친상을 당한 친구의 상갓집에 다녀오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왼쪽팔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처음 만난 그의 표정에서 그런 아픔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친한 동네 형처럼 편하고 다정한 미소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전 이렇게 책에 실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라며 수줍은 듯 말문을 연 이씨는 “저보다 더한 장애를 가지고도 더 잘 뛰는 분들도 많다”며 말을 이었다. 그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참가한 지난 2004년 제1회 용인관광마라톤대회다. 이씨는 “5km 코스를 뛰는 것이 창피했지만 어쩔수 없이 참가하게 됐다”며 “혹시 완주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남몰래 헬스장에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네모얼굴로 기억되고 있는 개그맨 김진수씨를 TV브라운관에서 못 본지가 꽤 오랜듯 하다. 얼마전 모 방송국 토크쇼에 출연해 특유의 입담과 재치있는 말솜씨로 자신의 ‘건재함’을 만천하에 알렸던 그.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아름답게 꾸며진 그의 스위트 홈에서 어느 때보다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연기자 김진수를 만났다. # 개그맨에서 연기자로, 이제는 ‘연출자’로 “TV에 자주 출연하지 않으니까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들 하시더라구요. 근데 방송할 때보다 지금 몇 배는 더 바쁘게 지내요. 아내도 며칠만에 보는 거라니까요. 하하.” 생각과 달리 수줍은 미소를 지닌 개그맨 김진수는 지난 몇년간 멀티 연기자로 변신해 있었다. 연극무대와 뮤지컬 공연장의 배우로서 종횡무진하고, 1년여전 자신이 세운 ‘수작 컴퍼니’의 대표로서, 연출자로서 올해말 처녀작을 올릴 준비중에 있다. 이 뿐 아니다. 조만간 드라마와 영화 출연도 계획중에 있다. 지난 3월 31일부터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올려지고 있는 ‘댄서의 순정’에서 출입국 관리소 직원, 의사, 술집 사장, 할아버지 역장 등 1인 10역을 맡고 있는 그가 현실에서도 최소 1인 5역은 맡고 있는 셈
# 금측자(金側子) … 변하지 않는 사람 1m 83㎝의 큰 키, 솥뚜껑 같은 손, 항공모함 같은 신발 그러나 큰 몸집과 달리 항상 밝은 표정의 얼굴 … 용인시의회 최대 거구인 강웅철 산업건설위원장의 겉모습이다. 다른 시의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등을 보면 더욱 눈에 띄는 외형의 소유자. 강 위원장이 시의회에 입성한 것은 지난해 7월 3일. 제4회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공인으로 입문했다. 지난 10개월 여 동안 동료의원들이 본 그의 의정활동은 강직함, 그것이다. 자신의 지역구라서 또는 누군가의 부탁 때문에 이런 저런 민원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보다는 시 전체를, 소수의 이익 보다는 다수의 공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기에 그의 큰 모습이 더욱 믿음직스러워 보인다는 평이다. 그는 자신의 생활신조를 ‘금측자(金側子)’라고 소개했다. 직역하자면 ‘금과 같은 사람이 되자’는 것이지만 다시 한번 되내여 보면 ‘금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뜻이 담겼다. “아버님께서 해 주셨던 말처럼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는데 살다보니 가장 어려운 것이더군요. 시대가 변하는데 나만 안 바뀌면 되나요. 시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