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용인 남사지역의 땅값이 연초 대비 20~30% 올랐다고 한다. 직접 부동산 중계사무소를 돌면서 얻은 정보도 이와 비슷했다. 또한 최근에는 용인시의 불법행위에 대한 단속 때문에 중개사 사무소들이 일제히 문을 닫기도 했다. 지금은 매물도 충분하지 않고 높이 오른 가격 때문에 거래도 쉽지 않다고 한다. 모현면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나마 거래가 되는 지역은 신도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양지와 원삼면 등. 하지만 이곳들도 전반적인 부동산 침체 영향으로 거래는 활발하지는 못하다. 전반적으로 용인 부동산 시장을 볼 때 현재 호가만 높아져 있을 뿐, 거래는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다. 신도시 개발 기대로 용인이 들떠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폭풍 전야의 모습일까? 이런 모습 속에서 신도시 개발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과연 신도시 개발이 용인시민들에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지. #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 보는 신도시 개발 수도권의 주택 가격이 오르는 까닭을 살펴보면, 기본적인 바탕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이다. 수도권 인구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472
# 껍질을 깨고 또 다른 세상으로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대로 살자는 다짐으로 성실히 노력한 것이 지방출신이라는 핸디캡까지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된 것 같습니다.” 명료하면서도 확신이 들어있는 목소리, 누구를 만나든지 잊지 않는 큰 웃음, 처음 만난 사람이 아닌 듯 편안함을 주는 배려. 기자가 아나운서 김병찬을 만난 소감이다. 빈틈하나 보이지 않는 빡빡한 스케줄 수첩을 보니 기자 마음에 부담이 왔지만 그는 “아직 시간 있으니 더 이야기 하자”며 여유를 보인다. 1988년 안동 MBC 아나운서로 방송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0년 KBS 아나운서실로 둥지를 옮겼다. 18년 가까운 시간을 KBS에서 생활하며 간판 아나운서로 큰 인기를 누리던 그가 2006년 10월의 마지막날 ‘프리랜서’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프리랜서가 되고나니 전보다 오히려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어요. 그만큼 일도 더 많아졌고 여러 방송사의 일을 하게 되니 훨씬 바빠졌지요. 하지만 방송국에 있을 때는 인생의 전부가 방송이었지만 지금은 인생의 일부가 방송이 됐어요.” 프리랜서 된 이후의 생활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어린이날 기념 행사장에 걸려있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이란 주제의 그림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돈.물질만능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땀 흘려 애쓰지 않아도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이루지 못할 꿈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의 생각도 황금만능주의에 물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인천이 ‘2014 아시안게임’을 유치함으로써 한국 스포츠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세 번째 아시안게임을 유치하게 된 한국은 태국(4회)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대회를 치르는 나라가 됐다. 일본과 인도, 중국(2010 광저우대회 포함)은 각각 두 차례 유치했다. 수도 서울, 제2의 도시 부산에 이어 인천까지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했다는 것은 한국이 아시아의 리더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250만의 인천, 11억의 인도를 따돌렸다 항도 인천이 인도의 뉴델리를 따돌리고 오는 2014년 제17회 하계 아시안게임 개최 도시로 확정됐다. 인천은 지난 4월 17일 오후 7시 30분(한국시간) 쿠웨이트의 쿠웨이트시티 J.W. 메리어트호텔에서 열린 제26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 아시안게임 유치도시 결정투표에서 45개 국가올림픽위원회(NOC) 회원국 가운데 과반수를 넘는 32표의 지지표를 획득, 압도적으로 40억 아시아인들의 스포츠 대축제를 열게 됐다. 한국은 지난 1986년 제10회 서울대회와 02년 제14회 부산대회에 이어 12년만에 세번째로 하계 아시안게임을 개최하는 경사를 맞았다. 인천아시안게임에는 최대 45개국 1
친노(親盧) 그룹의 움직임이 이해찬 전 총리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총리로서 정무와 정책 등 국정운영의 검증을 받은 점, 충청권 출신이라는 점, 노무현 대통령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해 그를 설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사라는 점 등이 이 전 총리의 대권 도전설이 유력하게 떠오른 배경이다. # “연말 대선에서 역할 하겠다” 지난 달 22일 저녁 이 전 총리와 친노 진영 의원들의 만찬은 이를 확인한 자리였다. 이화영, 서갑원, 김종률, 백원우, 윤호중, 한병도, 김형주 의원 등 7명의 친노 인사들과 가진 만찬에서 이 전 총리는 범여권 대통합 및 대선 국면에서의 역할론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리는 “21세기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조건으로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 성숙, 사회적 대통합, 국가 경쟁력 강화 등의 아젠다가 있다”며 “연말 대선에서 이러한 시대 비전을 위해 필요한 역할이 있으면 역량을 발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김종률 의원이 전했다. 이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은 한국 정치사에서 죄를 짓는 것”이라며 “여야를 두루 거치며 20년 정치 역정을 겪어 온 사람으로서 오늘날 한국 정치의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맥아더 장군의 말처럼 “감정평가사로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는 가람동국평가법인의 한승욱(64) 경기지사 대표를 만났다. 가람동국평가법인 한 대표의 프로필에는 끊임없는 도전과 지역사회에 대한 사랑이 담겨있다. 한 대표는 부동산과 금융의 핵심 분야를 두루 섭렵한 실력가로 수년간 용인에서 감정평가사로 일해 오면서 수많은 일들을 거뜬하게 해 냈다. 지난 22일 기흥구 구갈동 강남마을에서 새롭게 출발한 한 대표는 국내 감정평가사 1호로 감정사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고참이다. 그는 감정평가사 12명이 종사하는 대형법인의 대표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국내 평가사 1호로 용인에서만 31년간을 일해 온 그는 토지평가사와 공인평가사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단연 국내 최고의 평가사란 칭호가 어울린다. 그는 이번 출발에 대해 “대표로서 책임질 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책임을 지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는 부담주지 않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 대표의 몫이란 걸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흔들림 없이 일하는 것이 중요하고 감정평가사는 계산 이외에 필요한 일들이 많은 만큼 함께 일하는 직
용인시 곳곳에서 어르신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난 26일 연꽃마을 용인노인요양원에는 지역 어르신 300여 분을 위한 독거노인 위안잔치가 한창이었다. 이날 음식을 만들고 어르신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돌아오는 대한어머니회 용인시지회(회장 박연규) 회원의 얼굴에는 저마다 웃음꽃이 피어 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발족한 대한어머니회 용인시지회는 회원들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난 2004년 해체됐었다. 이후 박연규 씨와 뜻을 같이 한 지역주민들이 지난 2005년 대한어머니회를 재결성했고 처음 20여 명으로 시작한 어머니회의 회원수가 지금은 50여 명으로 늘어났다. 박 회장은 “어머니회에서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다양한 사업도 계획했지만 많은 어려움에 부딪쳐 지금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봉사만 하고 있다”며 “바자회 등으로 얻은 수익금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주민들을 돕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회원수가 늘어난 만큼 이웃의 어려운 사정들을 많이 알게 됐다”며 “내 옆에 살고 있는 사람을 돕는 일부터 시작, 지금은 시설봉사까지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일자리를 쉽게 찾지 못하는 여성들을 위해 창업을 지원
“부모를 잘못 만나면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합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교장이 자신의 일을 다 하지 못한다면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없지요.” 서룡초등학교 김원형(62) 교장이 아름다운 꿈이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바쁜 걸음을 한다. 오는 8월 정든 교정을 떠나기 전 교육자이자 지도자로서 아직 못 이룬 꿈을 펼치기 위한 것. 지난 1971년 교편을 잡기 시작한 김 교장은 타지역 등을 거쳐 1975년 자신의 고향인 용인으로 돌아와 이제는 지난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동안 김 교장에게 가르침을 받고 바른 인성을 키운 용인시민만 수천명에 다다를 터. 아동교육에 반평생을 바쳐온 그는 다른 교육자들과 다른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김 교장은 “아이들의 인성은 환경에 따라 변화된다”며 “교장에 취임한 뒤로는 아이들이 바른 인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학교 환경을 조금씩 개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교사에게 평교사로서의 책임과 의무가 있듯이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교장으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룡초교에 교장으로 부임한 지난 2004년 그는 ‘학교 발전 3개년
화가와 음악가, 작가들만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낸다면 이것이 바로 예술 아닐까?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때가 언제일까? 많은 사람들은 연인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자신이 원하던 일이 성공했을 때 등 일상에서 크고 작은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는다. 이와 함께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맛보며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혀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흐르는 짜릿한 전율을 느낄 때가 아닐까? 용인시 곳곳에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맛있는 향기가 매일같이 쏟아진다. 명품 요리연구가 오금자 선생이 용인시 처인구의 역삼동사무소와 수지구의 여성회관에서 요리교실을 열어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요리를 전수하고 있기 때문. 그녀는 자신의 음식점을 운영하며 지난 1997년부터 요리특강과 새로운 메뉴를 개발, ‘외국조리기능사 실기’와 ‘조리기능사 이론’이라는 책을 저술했다. 이에 앞서 충주농업기술센터에서 그녀가 개발한 요리를 담은 책자까지 만들었다. 쌀피자를 비롯해 사과불고기 고구마찜, 밤 옥수수 장조림, 옥수수수제비, 사과 쌀가루젤리 등 우리농산물을 이용해 그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박지성이나 브라질의 호나우딩요보다 더 큰 선수로 성장해다오.” 200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축구. 그 기세를 몰아 우리나라 선수들이 유럽 등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며 격려하기 위해 집집마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축구가 라이벌인 일본이나 유럽국가에 비해 전략이나 기술이 단조롭다는 것은 축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지적하는 바다. 문제는 창의력!!! 우리나라의 축구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창의력을 키우고 좀 더 다양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도록 지난 1999년 경북 구미에 선산축구교실(단장 손민성)이 탄생했다. 이후 레이번스 유소년축구단(ravens soccer club)으로 개명, 2004년에 용인의 구성 F.C와 지도협력을 체결해 2006년 용인시지부 레이번스 축구단이 탄생했다. 손민성 단장은 “외국과 견주어 볼 때 우리나라 축구교육의 잘못된 점은 학습을 우선시하는 브라질과 미국, 포르투갈 등과 달리 엘리트를 육성하기 위해 어려서부터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보다 운동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달리고 있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음에는 절대 안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주저없이 또 참가신청을 할 정도로 끌리는 운동이 마라톤이에요” 불운의 사고로 왼쪽팔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맡은 일은 물론 마라톤 등 꾸준한 운동으로 신체적 장애를 딛고 일어난 이웃이 있다. 주인공은 바로 용인시 처인구청 자치행정과에 근무하는 이길재씨(34). # 용인관광마라톤과의 인연 이 씨는 고등학교 시절 부친상을 당한 친구의 상갓집에 다녀오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왼쪽팔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처음 만난 그의 표정에서 그런 아픔은 찾아볼 수 없었다. 친한 동네 형처럼 편하고 다정한 미소가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전 이렇게 책에 실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라며 수줍은 듯 말문을 연 이씨는 “저보다 더한 장애를 가지고도 더 잘 뛰는 분들도 많다”며 말을 이었다. 그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참가한 지난 2004년 제1회 용인관광마라톤대회다. 이씨는 “5km 코스를 뛰는 것이 창피했지만 어쩔수 없이 참가하게 됐다”며 “혹시 완주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남몰래 헬스장에서 연습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네모얼굴로 기억되고 있는 개그맨 김진수씨를 TV브라운관에서 못 본지가 꽤 오랜듯 하다. 얼마전 모 방송국 토크쇼에 출연해 특유의 입담과 재치있는 말솜씨로 자신의 ‘건재함’을 만천하에 알렸던 그.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에 아름답게 꾸며진 그의 스위트 홈에서 어느 때보다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연기자 김진수를 만났다. # 개그맨에서 연기자로, 이제는 ‘연출자’로 “TV에 자주 출연하지 않으니까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들 하시더라구요. 근데 방송할 때보다 지금 몇 배는 더 바쁘게 지내요. 아내도 며칠만에 보는 거라니까요. 하하.” 생각과 달리 수줍은 미소를 지닌 개그맨 김진수는 지난 몇년간 멀티 연기자로 변신해 있었다. 연극무대와 뮤지컬 공연장의 배우로서 종횡무진하고, 1년여전 자신이 세운 ‘수작 컴퍼니’의 대표로서, 연출자로서 올해말 처녀작을 올릴 준비중에 있다. 이 뿐 아니다. 조만간 드라마와 영화 출연도 계획중에 있다. 지난 3월 31일부터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올려지고 있는 ‘댄서의 순정’에서 출입국 관리소 직원, 의사, 술집 사장, 할아버지 역장 등 1인 10역을 맡고 있는 그가 현실에서도 최소 1인 5역은 맡고 있는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