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의 임무인 치안예방 활동은 물론 불우이웃 돕기 등 봉사활동을 비롯해 , 환경 캠페인, 청소년 선도 등 다양한 지역활동을 펼쳐온 용인민간기동순찰대 어정지대(지대장 한선희, 이하 어정민기대). 1995년 창립한 이래 12년간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들과 동고동락하는 지역지킴이로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봉사활을 하고나서 지역 주민들이 고맙다고 말해줄때 더욱더 힘이나요” 작년에 취임해 어정민기대를 이끌고 있는 한선희 지대장은 이런 봉사활동의 보답으로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대원들에게 힘이 되는지 강조한다. 어정민기대는 대원 34명에 운영위원이 70여명이 될 정도로 큰 단체다. 매일 저녁 9시부터 새벽2시까지 대원 4~5명이 교대로 순찰활동을 펼치고 있다. 어정민기대의 제일 중요한 활동은 지역 치안예방을 위한 방범 활동이다. 어정 지킴이로 방범 활동을 하는 어정민기대는 지난 달 17일 신촌마을에서 박상환대원 등 4명이 절도범을 발견하고 추격전 끝에 붙잡아 파출소로 인계하기도 했다. 또 늘어난 학교와 학생들 때문에 밤늦게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학생들을 선도하는 청소년 선도 활동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한 지대장은 “
환경이 도시개발의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과거 난개발시대에는 환경을 무시한 도시 개발이 이뤄졌으나 환경의 중요성이 역설된 이후 자·타의 형식으로 환경평가를 받는 등의 환경 우선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서 잘 알려졌던 ‘지율스님’의 천성산 터널공사 반대 또한 이러한 맥락의 일이다. 우리가 사는 지역인 용인 또한 마찬가지의 상황에 봉착해 있다. 난개발의 상징물이 된 수지지역의 무리한 개발의 여파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경 우선 정책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개발은 필요 하며, 그것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적당한 선에서 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적당한 선’이 무엇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대안일 것이다. 현재의 환경보다 좋은 환경, 지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정도로 개선하는 것. 하지만 지난 8월 11일 환경부가 용인시에 통보한 목표치 BOD(생물학적산소요구량)4.1ppm은 그런 수준의 것은 아닌 것 같다. 수질오염총량관리제(水質汚染總量管理制)란? 지금 논란의
3100가구 규모의 주거지역으로 개발되고 있는 기흥구 중동의 어정가구단지. 공장을 오가는 화물차들과 조금이라도 싸게 가구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어정가구 단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무너지고 부서진 가구단지 건물 사이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는 한쪽다리가 없는 견공의 모습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의 서룡초등학교가 경기도중소기업청과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비즈쿨(BIZCOOL·경제·창업 교육)교육을 실시하면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비즈쿨이란 비즈니스(Business)와 스쿨(School)의 합성어로 학교 교육과정에서 비즈니스를 배운다는 뜻으로 용인지역 초등학교에서는 서룡초등학교가 유일하게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기초개념인 기업 및 기업가에 대한 이해와 창업, 그리고 경영 등을 현장체험과 함께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비즈쿨은 유럽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보편화 된 교육이다. 새로운 경제 교육으로 미래의 사업가를 양성하고 있는 서룡초등학교를 들여다 본다. △새로운 시대를 대비, 지식교육에 노력하다. 기업가 정신함양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일찍이 1919년부터 청소년에 대해 기업가정신이 교육되었고 EU도 미국 성장의 주요 원인을 기업가정신으로 분석하여 이미 초등학교부터 기업가 정신 교육을 의무화토록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사업구상부터 판로개척까지 학생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초등학생 비즈쿨은 경제활동의 자신
시사전문프로그램을 연예인이, 그 중 개그맨이 진행을 한다면 어떨까? 아마 십중팔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저 재미있게만 보이는 개그맨이 시사프로그램의 딱딱함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할까. 하지만 요즘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시사프로그램의 진중함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가볍지 않게,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진행하고 있는 개그우먼 김미화씨가 화제다. 이마에 일자눈썹을 그리고 한손에 야구방망이를 든채 “음메 기살어!”하며 달려 나올듯한 개그우먼 김미화씨를 만났다. △새 보금자리 용인에서 지난 달 29일 처인구 원삼면사무소. 이날 명사초정강연회에 특별한 손님이 왔다. 2개월 전 용인으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김미화가 특별 강사로 지역주민들과의 만남을 가진 것. 면사무소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은 강사라기보다는 그저 친근한 이웃 같았다. 사실 김 씨와 5살 연상인 남편 윤승호 교수는 이미 원삼면에선 유명인사다. 그들은 이미 지역주민들과 형님 동생하며 지낼 정도로 이웃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저희 친정아버지가 용인 신갈이 고향이에요. 그래서 어렸을 적 얼마동안은 용인에서 살았어요. 그때문인지 이사 온
# 용인에서 핀 시조의 꽃 요즘 세상에 시조라니? 그냥 시인이라고 해도 사람을 다시 쳐다볼 시대에 시조시인이라고 하면 박물관에서 나온 사람인가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막상 정수자 씨의 작품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현대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어에 다만 시조의 정형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만 차이가 날 뿐. 사람들이 갖는 본연의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었다. 정수자 씨(丁秀子·51)는 용인에서 출생해 1984년 세종숭모제전 전국시조 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한 이후 2003년에는 등단 15년 이상된 작가의 작품 가운데 한 해의 작품을 뽑는 중앙시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시와 수필을 꾸준히 썼던 것이 글 쓰는 힘이 됐다고. “수지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학교 대표로 용인군내 백일장에 나갔어요. 용인초등학교 큰 플라타너스 밑에서 시제를 받아 글을 썼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그땐 상을 못 탈까봐 부담이 컸는데 특선을 해서 어효선 동시집을 받았죠. 그 유명한 시인의 시집을 책으로 보게 돼 어찌나 감동을 받았던지 지금도 보관하고 있어요.” 신봉리 언덕 꼭대기에 살던 그는 개천에서 놀기도 하고, 광교산을
지난 지방 선거에서 패한 후 현재 6.3동지회 경기남부지부장을 맡아 6.3 동지회의 운동정신을 잇는 일에 올인 하고 있는 이정문 전 용인시장. 시장 때나 지금이나 활기찬 모습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정당생활을 했지만 정작 나라가 정치 경제적 위기에 있을 때 나라를 지킨 사람들은 학생들이었습니다. 보람을 갖고 운동정신이 이어져 내려가도록 몸을 던져 일하고 있습니다.” 바쁜 가운데 잠시 짬을 내서 인터뷰에 응한 이 전시장. 뭐가 그리도 바쁘냐는 그 질문에 그는 시장직을 그만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6.3 동지회 일 이외에도 바쁜 일정이 많다고 했다. “떨어지고 나니까 시장 때보다 더 바빠요.” 농반 진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는 “그때 새벽 2시 정도에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새벽에 나는 사우나 3곳을 돌면서 도와줬던 지인들을 만나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어요”라며 말을 잇는다. 지난해 떨어진 것을 안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만남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람 만나고 뛰어다니다 보니 여행 한번 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단다. “사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다면 은둔생활 하면서 바쁠 일이 없겠지만 나이로 봐서
2007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설왕설래 말들도 많았지만 어찌했든 노 대통령은 길을 넘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과는 사뭇 다르지만 군사분계선은 보이지 않는 벽이었기에 그날 노 대통령은 남북 민족을 가르는 벽을 허문거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면서 가슴 뭉클해 하고 감격했다. 군사분계선에는 물리적으로 아무것도 가로막혀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노 대통령도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반세기동안 민족을 갈라오던 벽을 허무는 거라고 말했다. 길을 열었다. 남북이 협력하고 공동 번영하고 더 나아가 통일을 할 수 있는 전초가 되는 길을 연 것이다. 그 길을 노 대통령이 넘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넘나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으면 걷기 편하고 정겨운 길이 된다. 이념이 달라서 같은 핏줄임에도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천형이다. 어찌 이보다 가혹한 벌이 있을 수 있는가. 부모 자식이 서로 떨어져 지척에 두고도 만나지 못하는 형벌.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친 벽 속에 갇혀 문을 겹겹이 닫아 걸고, 문마저 없애버렸으니 안타까운 역사다. 우리는 역사를 보면서 느끼고
제12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일정으로 화려하게 진행됐다. 올해는 64개국 275편의 영화가 부산 앞바다에 돛을 폈다. 영화제가 열리는 10월은 영화에 환장한 씨네필이든 그저 가을바다가 보고픈 청춘이든, 누구나 가릴 것 없이 부산을 찾는다. 12회를 맞은 영화제는 국제 적인 명성을 얻으며 서비스업 이외의 이렇다할 핵심 산업이 없던 부산을 최고의 국제문화 도시로 탈바꿈 시켰다. △아시아 영화의 중심 부산.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 1996년 9월 13일.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를 목표로 화려하게 출발했다. 1회 대회에는 29개국 170여편의 영화들이 수영만 야외상영관과 남포동 극장가를 누볐고, 27개국 224명의 초청인사들이 부산으로 입성했다.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국제영화제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들을 엄선하여 동적인 영화관람의 형태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참여하는 영상문화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회 대회 이후 PIFF가 아시아 최대의 영화축제로 자리잡으면서, 이번 12회 영화제에도 많은 영화들이 부산에서 처음 관객과 만났다. 275편의 영화 가운데 66편이 월드 프리미
용인시 기흥구 신갈저수지. 이곳은 용인시가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기흥호수공원 사업을 추진 중인 곳이다. 그러나 지난 여름 신갈저수지는 극심한 오염 상태를 드러내며 급기야 인근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며 관계기관에 정확한 원인 분석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극심한 악취, 고통 받는 주민들, 과연 오염의 원인은 무엇이며 책이은 누구에게 있는가! △극심한 오염 지난 8월 말 신갈저수지는 심각한 녹조현상과 수면위에 떠있는 부유물질이 썩어 심각한 오염상태를 적나하게 드러냈다. 주변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심각한 악취는 지난해부터 조금씩 나기 시작, 올 6월부터는 생활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심각해 졌다. 지독한 악취는 급기야 저수지가 자리한 기흥구 하갈동 뿐 아니라 상갈동과 영덕동 일대를 뒤 덮었다. 20분 남짓 저수지 인근에서 서 있기 조차 힘에 겨운 상황. 머리에 어지러움이 느껴지고 구토가 날 정도였다. 수면위 썩은 부유물질은 저수지 어느 한 곳이 아니라 전체를 뒤덮고 있으며 더운 날씨에 생긴 녹조 현상이라 보기엔 그 심각성이 눈으로도 확인 될 정도. 저수지 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태(52`남)씨는 “심한 악취로 낚시꾼들의 발길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그런데 한 길만 50년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강산이 변해도 몇 번은 변했을 시간동안 맞춤복 만들기에만 전념한 김종학 씨(63).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옛 말이 된 요즘엔 만나기 어려운 얘기다. 처인구청 건너편에서 시장 쪽으로 걷다보면 만날 수 있는 ‘문화라사’. 크지 않은 점포라 관심이 없으면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곳이지만 김종학 씨는 이 자리에서만 30년째 일하고 있다. “저쪽 백암에서 65년에 처음 양장점 개업을 했었고, 그곳에서 2년 일하다가 군대를 다녀온 뒤엔 70년에 용인시장 안에서 가게를 열었어요. 76년에 현 시장약국 자리로 옮겼는데 78년에 지금 이 자리로 옮겨서 계속하고 있어요. 용인에서만 40년 맞춤복을 하고 있는 셈이죠.” 1945년 해방둥이로 용인 김량장동에서 태어났다는 그는 군대 3년과 기술연마를 위해 객지에 있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용인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가 옷을 맞추는 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4살 때였다. 50년 전이다. 용인에서 대흥라사를 운영하던 소진흥 씨를 은사로 재단을 배우기 시작해 16살에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야학도 다녀봤지만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