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양 황인찬 친구의 과수원에 놀러 갔다 과수원에서는 벌을 많이 친다고 했다 빛 많은 날에는 벌들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고 꽃나무가 늘어서 있고 친구는 벌들과 같이 바쁘다 다른 세상 같아 무심코 나온 말에 친구는 말이 없다 과수원을 한바퀴 돌았다 사과꽃에 벌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왱왱대며 움직이며 빛 소음 운동 빛 모두 부수고 있었다 황인찬은 2010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의 특징은 시니시즘이다. 세상 모든 사물을 뜻 없이 본다. 그리고 냉소 한다. 이런 특징은 그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에서 분명해진다. 그의 시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김현 시인의 말처럼 차가운 정념으로 빚어낸 시이고, 슬픔도 놀라움도 없는 시이고, 죽음을 선험하게 하는 시이고, 어디에도 나온 적이 없는 시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펴낸 『사랑을 위한 되풀이』도 다르지 않다. 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메시지를 던지는 건 의미가 없어요. 아주 일시적이고, 심지어는 내가 무슨 메시지를 갖고 있었는지 나도 잘 몰라요. 그런 건 다 착각이에요.’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없다. 그가 말한 것이 전부다. 독자는 느끼면 된다. 의미를
국립도서관의 영원한 밤 신해욱 내 자리에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서. 너는 죽은 책을 읽고 있다 커튼이 부풀고 있다. 사물이 펼쳐지고 있다. 죽은 까마귀. 죽은 불가사리. 죽은 가자미. 죽은 노래의 메들리가 들려오고 있다. 원을 그리면서. 반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면서. 나는 나의 동정을 살피고 있다. 두 개의 귀. 열 개의 손톱.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나쁜 버릇. 너는 죽은 농담의 뼈를 모으고 있다. 죽은 생각의 무덤을 파헤치고 있다. 죽은 단어를 모아둔 필통을 뒤적이고 있다. 죽은 가자미의 눈동자가 너를 노려보고 있다. 수분 과다로 죽은 선인장에 나는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있다. 화장실을 참고 있다. 발소리를 죽이고 있다. 원을 그리면서. 점점 더 완전한 원을 그리면서. 죽은 속담을 외우고 있다. 죽은 시계. 죽은 가마우지. 죽은 불가사리. 딱딱한 것이 만져지고 있다. 나는 웃고 있다. 내 자리에서. 더할 나위 없는 내 자리에서. 신해욱은 1998년『세계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는 정제된 언어와 견고한 형식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첫 시집 『생물성』은 인칭 없는 고백과 시제를 넘나드는 아이러니를 보였다. 그후 근원이라 할만한 것으
레파도미솔 김승일 검지를 접었다 펴고 약지를 접었다 펴고 엄지를 접었다 펴고 중지를 접었다 펴고 새끼를 접었다 폈다 오각별을 상상하면서 오각별이 사라지면서 다시 그리고 오각별이 사라져서 다시 그렸다 오각별을 그린 그날부터다 뒤집힌 오각별은 염소의 머리와 시 나는 가끔 그렇게도 그렸는데 솔미도파레 그게 그런 뜻인 줄은 몰랐다 레파도미솔 김승일은 2009년『현대문학』신인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2012년에 상자한『에듀케에선』이후 7년만이다. 문지시집 표사는 대개 시인 자신의 글이다. 김승일은 표사에서 ‘.....이 책은 완벽하다는 말 외는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며, 정말로 감동적이다. 완벽한 작은 보석과 같은 작품. 아름답다.’고 쓰고 있다. 정말 더 많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놀라운 작품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패기가 놀랍다. 자신감인지 역설인지 혹은 나르시시즘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암튼 재미있다. 그의 이번 시집이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성별, 연령, 국적, 거주 행성 등 다양한 화자들이 등장해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시가 재미있다. 그런가 하면 기계를 시적 화자로 등장시켜 기계들의 규칙이 어떤 알레고리를 만들어 내는지 지켜보는
쾰른성당-곡두8 김민정 우리 둘의 이름으로 초를 사서 우리 둘의 이름으로 초를 켜고 우리 둘을 모두 속에 섞어놨어. 모두가 우리를 몰라. 신은 우리를 알까. 우리 둘은 우리 둘을 알까. 모두가 우리가 우리인줄 알겠지. 우리 둘도 우리가 우리 둘인 줄만 알겠지. 양심껏 2유로만 넣었어. 김민정은 1999년 『문예중앙』신인문학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아름답고 쓸모 없기를』등의 시집을 펴냈다. 그녀는 최고의 편집인으로 평가 받는다. <문학동네>의 시집은 거의 그녀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리고 <문학동네> 자회사인 <난다>의 대표다. <난다>의 책들도 그녀의 작품이다. 도발적인 이름의 이번 시집 『너의 거기는 작고 나의 여기는 커서 우리들은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그녀 가까이 있던 문인들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으로 드는 문은 작은데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의 삶의 문은 넓다는 의미고, 죽음으로 우리들이 헤어지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 의미를 알고 나면 다소 에로틱하게 읽혔던 시집 제목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온다. 그녀가 왜 곡두라는 부제를 붙였을까. 곡두는 눈
곧, 봄 김길녀 뜻밖에 눈을 만난 삼월 언저리 기차는 강원도로 가고 있다 펄펄 내리는 시린 햇살 속 - 삼월에 웬 눈이람 나한정역과 홍정역 사이에서 풍경들이 덜컹거리자 건너편 여자가 흰 지팡이를 꼭 쥐었다 여자의 눈이 된지 오래인 듯 흰 지팡이는 닳아 있었다 여자는 귀로 무언가를 보는 듯 창밖으로 오랫동안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가끔 여자의 미간이 섬세하게 흔들렸다 두 눈 뜨고도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 여자의 볼우물에 피어나는 복사꽃 꽃잎, 꽃잎 기차는 비로소 고개를 넘는다 김길녀는 1990년 『시와 비평』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세계를 받치고 있는 이미지는 몸과 바다라고 구모룡은 말한다. 맞는 말이다.「곧, 봄」역시 몸의 이미지와 바다의 이미지가 시를 끌고 간다. 나한정역과 홍정역 사이를 달리는 기차는 강원도로 가고 있다. 삼월 언저리라고 했으니 아직은 삼월인 것이다. 때 아닌 눈발이 내리고 있는 바깥 풍경을 보고 있던 시적화자는‘삼월에 웬 눈’이냐고 혼잣소리를 한다. 기차는 강원도에 들어 필경은 푸른 동해를 보게 될 것이다. 강원도라는 말, 나한정역이라는 말, 홍정역이라는 말 속에 이미 바다의 이미지는 살아있다. 기차가 덜컹거리자‘건너편의 여자가 지팡
howling 이설빈 너는 울다가울다가 울다가 나에 이르러 목을 축이고 길을 물었다 나라는 작은 물고기 입안에 머금고 너는 사막을 건너야 하네 너는 걷다가걷다가 갇다가 목을 축이고 너에 이르러 길을 물었다 이설빈은 2014년 『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그녀의 시는 우화적인 전개를 중심축으로 한다. 그녀의 우화형식은 세계를 우화로 만드는 작시와 스스로의 삶을 우화로 만드는 작시와 내면의 풍경을 우화로 만드는 작시가 있다. 그녀의 불안의 기울기는 내면을 우화로 만드는 시에서 더 크게 발생한다. 「howling」 역시 그녀의 내면의 불안한 풍경이다. 우는 행위와 길을 묻는 행위는 불안의 징조거나 불안의 은폐다. 울며 내게 이르는 너는 목을 축이고 길을 물었지만 걷고 또 걷다가 목을 축이고 너에게 이른 너는 길을 묻었다. 길을 잃은 것이다. 깊은 불안이다. 이탤릭체의‘나라는 작은 물고기/입안에 머금고/너는 사막을 건너야 하네’는 길을 물어보는 행위와 길을 묻는 행위 양쪽에 걸리는 불안의 징후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나와 너는 동격이기도하고 동일 인물로 읽힌다. 사막을 건너야 하는 나는 작은 물고기고 네가 입에 머금고 가야하는 운명이다. 스스로를 지고 건너
외국 여행 이영주 각자의 말들로 서로를 물들일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어둠과 다른 색 오래전 이동해 온 고통이 여기 와서 쉬고 있다 어떤 불행도 가끔은 쉬었다 간다 옆에 앉는다 노인이 지팡이를 내려놓고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흰 이를 드러내며 나는 웃고 우리의 혼혈은 어떤 언어일지 생각한다 이영주는 2000년, 『문학동네』로 등단했다. 지난 20년 동안 그녀의 발화는 크게 요동치지 않았다. 세상을 읽는 패라다임의 깊이가 깊어지고 있었다는 말이기도 한다. 그녀의 시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이야기들은 변주되기도 하고 핵심을 이루기도 하며 서로 교호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원형질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그녀의 이야기인 것이다. 「외국 여행」역시 그녀의 이야기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는 지금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들 사이에 끼여 있다. 그녀가 여행자인 것이다. 다양한 인종의 다양한 언어로 서로를 물들일 수는 없다. 언어가 달라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는 그와는 다른 어둠과 다른 색’에 이르면‘그’라는 대명사의 인물이 궁금해진다. 그는 고국에 두고 온 그일 수도 있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옆의 노인일 수도 있다.
불미 윤의섭 병실 창문에 비친 목련은 아름다웠으나 아름답지 않았다 눈을 떠 보니 옆 병상은 홀연 비어 있었고 며칠 뒤 때늦은 목련 한 송이가 수줍게 피어났다 머리맡에 놓인 묵주에서 그럴 리 없는 생향이 흘러나오고 멀리 언덕 오르는 노인의 엷은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 나는 지극해진 것이다 벤치에 앉아 병동을 그리는 소녀의 풍경화에는 꽃 없는 꽃줄기가 창문에 머리를 대고 서 있다 전위의 날들이 이어졌다 윤의섭은 1994년,『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 그는 등단 이후 계속해서 죽음의 문제를 천착해왔다. 마치 바로크문학의 전위를 보는 듯 했다. 시인에게 전위라는 말은 축복의 언어다. 전위라는 말 속에는 기존의 미학적 질서를 파괴한다는 의미가 내포되기 때문이다. 오늘 읽는 윤의섭의 시 「불미」또한 그의 시적 지향을 엿보게 하는 제목이다. 불미는 우선 몇 가지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아름답지 않다’는 의미와‘불전에 올리는 쌀’이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의섭의 불미는 이러한 사전적인 의미를 뛰어 넘는 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끝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 시는 죽음을 노래한 시가 분명하지만 죽음이 단순한 생명의 소멸을 의미하
산벚나무 박경희 법당 언저리 잎 진 산벚나무로 서 있는 내게 주지 스님이 삭발하자, 말씀하시고는 길 따라 내려가신 지 여러달 캄캄이다 달도 차서 참나무 숲으로 기운 게 여러번 눈길 밟아 마음도 득달같이 속세로 달아나버렸다가 미끄러져 돌아오는 날이 돌마당 갈잎으로 뒹굴었다 긴 머리 질끈 묶고 모과나무 그늘에 서서 산 아래 읍내 그림자만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놓고 온 것들에 대한 서글픔이 눈앞을 가리는데 어질어질 산벚꽃 핀 자리로 돌아오신 스님 내 눈을 깊이깊이 들여다보고는 오늘은 안되겠다, 하시며 바랑에 내 설움까지 넣고 또 휘청휘청 고갯길 넘어가셨다 박경희는 2001년 『시안』신인상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첫시집 『벚꽃 문신』은 농촌의 삶속에서 신화적 요소가 작용한다는 점에서 이번 시집과 차별화 된다. 뒤숭숭한 꿈자리와 화재, 구렁이의 죽음 후에 저수지 둑의 무너짐 등이 일상생활에서의 신화적 재현이다. 첫시집이 나오기까지 15년이 걸린 것에 비해 이 번 시집은 3년 만이니 그녀의 작업이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녀의 시에는 해학과 골계가 있어 유쾌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가족사를 고백하기도 하도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처럼 풀어내기도 한다. 그
피 최정례 내 피의 반은 할머니 피다 허리가 기억자로 꺾였던 할머니 뼈는 내 굽은 등뼈가 되었다 나를 안아준 나를 팽개친 내 뺨을 갈긴 아들이 내 속에 함께 산다 내 속에서 국을 끓이는 이 못을 박는 이 불을 피우는 이 할머니다 창 아래 오종종 피어난 채송화 내 눈에 이쁜 것도 촛대를 닦아 꽃불을 피우던 할머니 피 때문이다 할머니 죽던 날 할아버지 마당만 쓱쓱 쓸었다 한다 억울하게 능멸당하면 벌레가 되어 울다가 독버섯으로 피었다가 뱀처럼 늘어지고 싶은 거 할머니 때문이다 (하략) 최정례는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와는 거리가 멀다. 난해하고 다층적이고 산문적인 요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 20년 후에 낸 『붉은 밭』은 삶의 현장을 깊이 있게 응시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지극한 껴안음이 미덕인 시집이다. 「피」는 할머니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신에 대한 노래다. ‘여자의 일생’을 들여다보게 하는 시편의 곳곳에는 그녀와 할머니가 얼마나 닮았는지, 사는 모습이 어떻게 빼다 박았는지를 용기 있게 고백해 읽은 즐거움과 삶의 환희와 상황의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할머니 뼈가 그녀의 굽은 등이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기쁘다 천양희 바람결에 잎새들이 물결 일으킬 때 바닥이 안 보이는 곳에서 신비의 깊이를 느낄 때 혼자 식물처럼 잃어버린 것과 함께 있을 때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욕심을 적게 해서 마음을 기를 때 슬픔을 침묵으로 표현할 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으므로 자유로울 때 어려운 문제와 답이 눈에 들어올 때 무언가 잊음으로써 단념이 완성될 때 벽보다 문이 좋아질 때 평범한 일상 속에 진실이 있을 때 하늘이 멀리 있다고 잊지 않을 때 책을 펼쳐서 얼굴을 덮고 누울 때 나는 기쁘고 막차 기다리듯 시한 편 기다릴 때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 쓰는 일일 때 나는 기쁘다 천양희는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가 절정을 이루었던 『마음의 수수밭』을 읽고 가슴 먹먹했던 독자들의 기억이 있다. 절망을 살아왔던 그녀의 시편들은 아리고 고통스럽고 비장했다. 이제는 일흔을 넘긴 세상살이다.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이 순해지고 아련해졌다. 그렇다고 그녀가 모든 욕망을 놓은 것은 아니다. 시인은 욕망을 버린 사람이 아니라 시라는 욕망에 끝까지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다. 참으로 작고 사소한 것들에 기쁜 그녀는 ‘사는 것에 길들여지지 않을 때’
달 구두 신영배 버려진 날에는 집을 지나 더 걸었다 발은 백지가 되었다 물을 건넜다 구름을 딛고 나무에 매달렸다 몰에 빠져 죽은 여자를 오래 들여다 보았다 새들을 따라 날았다 모래 언덕 위에 앉았다 백지를 읽었다 더 걸었다 뒤꿈치가 부풀었다 다 갈었다 물집을 키웠다 밤을 기다렸다 떠올랐다 신영배는 2001년 『포에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그녀의 시세계는 여성성의 섬세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제시했었다. 여성적인 감각과 상상력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거느려 왔던 것이다. 그녀의 시에 나타나고 있는 키워드는 물, 그림자, 몸, 소녀, 달 등이다. ‘달 구두’는 달과 구두라는 의미다. 달은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걷고 있거나 날아다니거나 앉아 있어가 들여다보는 시적화자를 비추는 역할로서의 달이다. 달은 어둠을 밝히는 신성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달빛 아래 드러난 물에 빠져 죽은 여자는 죽은 자의 모습이 아니라 잠든 자의 모습으로 읽힌다. 시적 화자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구두는 여자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역할로서의 구두다. ‘더 걸었다’는 문장은 뒤꿈치가 부풀었다는 문장을 이끌어낸다. 걷는 것이 운명인, 물집을 키우는 여자는 자학의 고통을 즐기는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