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마지막회 동백, 대신 쓰는 투병기 박후기 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계절에 대해 생각해 가을에 태어난 아버지는 가을에 죽었고 봄에 태어난 형은 봄에 죽었지 부지불식간, 꽃 피는 순서는 있어도 꽃 모가지 떨어지는 순서는 없다지 묘역을 공원이라 부르니 죽음이 더욱 친밀해지더군 동백 무덤, 언 땅을 파지 않아도 죽음은 꽃 구덩이에 파묻히지 바다로 가는, 걷고 싶은 죽음의 둘레길 산다는 게 죽음의 둘레만 빙빙 돌다 가는 일인지도 몰라 사랑은 피어나는 순간 종말이란 걸 알아야 해 그러니 서로 살 섞기 직전까지 간직해 온 붉고 짙은 설렘만 주고받기로 하자 우리 언제나 사랑의 도입부에만 머무르며 아, 꽃 피기 직전의 떨림으로 추락을 맞이하자 언 땅 위에서 자고 일어나면 봉오리가 부어올라 눈을 뜰 수가 없어 얼굴에 화색이 돌지 않는다고 걱정하진 마 꽃이 색을 기억하는 건 얼굴 표정이 그대로 여물어서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야 다음 생의 겨울엔 곱은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면 흐릿한 연기와 함께 훅, 하고 불이 피어오르는 그런 저녁이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어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밤, 불안과 다투는 시간이 짧았으면 좋겠어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52 숙호에서 길을 잃다 김인자 서른 발자국을 걸었을 뿐인데 무덤 앞에서 길을 잃었다 한때는 다시없는 꽃밭이었을 저 조붓한 길 지금쯤 무덤 주인은 망연히 숙호*마을 낯익은 굴뚝을 바라볼 테고 섬처럼 홀로 어둠에 들 키 작달막한 그의 안식구도 처마 끝 풍경이 흔들릴 때마다 까치발로 서서 구절초 핀 동그란 무덤을 지켜볼 것이다 빤히 보이는 곳에서도 연기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이 그리움이라면 생生과 사死란 집요하게 벽을 타고 올라가 곤히 잠든 식구를 들여다 볼 수는 있어도 더듬어 만질 수 없는 담쟁이 넝쿨 같은 게 아닐까 살아서 손잡고 가는 소풍이라면 설흘산* 봉수대 나란히 기대앉아 대나무밭에 이는 바람소리로 귀를 씻고 만추에 물든 푸른 앵강만鶯江灣* 바라보며 죽음도 나쁘지 않을 것이나 살아있어서 이렇게 눈부신 거라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가을이 계절의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마을엔 여전히 소문처럼 연기가 피어오른다 왜 나는 연기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까 돌아보면 잡고자 했던 모든 것이 한갓 연기였음에도 주) 숙호는 경남 남해군 남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고, 설흘산은 남면에 있는 산이며 앵강만은 남면에 있는 호수처럼 생긴 만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50 꽃의 신비 김정란 꽃, 고요한 침묵으로 너무나 잘 말하는 신비 묘비명이 열 줄을 넘는 경우는 없다. 살아 생전 수십 권의 책을 남긴 이도, 수천 편의 시를 남긴 이도, 수천 억의 재산을 남긴이도 묘비명에 이름 몇 자 남기고 가는 것이다. 사랑해, 라는 말 한 마디를 이길 수 있는 수백 마디의 말은 없다. 하물며, 요즘 시는 왜 이리 긴 것인가? 이름 석 자 걸고 무에 그리 할 말이 많은가? 박후기 시인 (hoogiwoogi@hanmail.net)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50 더덕북어 안영선 용대리 덕장에 겨울이 소복이 쌓인다 이 비릿한 어류의 본적은 러시아산 오호츠크 바다 바다를 떠난 순간 더러는 이름을 바꾸기도 국적을 바꾸기도 한다 피었다 시든 얼음 꽃에서 비릿한 이국 언어가 흘러내린다 굳고 단단한 몸이 바람과 햇살에 겨워 숨겨둔 바다를 쏟아낸다 속살이 푸석하게 부풀어 오른다 낡은 침대 위 아버지가 어류처럼 누워 있다 바람에 한껏 마른 낡은 몸 쥐어짜듯 온몸에서 물기 흘러내린다 흘러내린 물기에 바다를 담은 지도가 흥건하다 한 때 명태처럼 깊은 세상의 주인이었을 아버지, 단단한 고집과 견고한 헛기침을 놓자 물기 빠진 팔과 다리에서 푸석푸석 소리가 난다 속살이 푸석해질수록 아버지는 이름을 바꾸곤 했다 어머니는 황태를 더덕북어라 부른다 두드리지 않아도 푸석한 속살이 부드러워 좋다 한다 온갖 시름 내려놓아야 속살이 부드러워진다는데, 채이고 흔들리고 숨죽여 온 생 아침부터 황태 속살을 뜯던 어머니가 침대 위 아버지를 슬쩍 돌아본다 물기 빠진 아버지 낡은 배가 푸석하게 부풀어 오른다 병상에 돌아누운, 비쩍 마른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적 있는지. 기침 할 때마다 얇은 내복 속에서 꿈틀거리는 주름 깊은 생애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49 녹턴 김혜선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피아노를 치네 스물세 명, 할배 할매 늙은 개 두어 마리 왔다 갔다 하는 섬마을 폐교 운동장에서 하릴없던 양귀비꽃이 변소 벼르박에 그린 노란 눈 염소가 말라가던 미역이 귀를 세우고 쇼팽을 듣네 마요르카 섬을 울리는 바람소리 상드의 치맛자락에 스치는 밤공기 찻물은 끓어 넘치고 올리브 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쇼팽이 듣네 달빛이 밤바다에 물수제비를 뜨면 날아가 낯선 별, 내 지하방 천장에 박혔네 누워도 누워도 낮은 방은 감귤처럼 뭉그러져 꿈속까지 얼룩은 번지는 지하방은 아편 먹은 유령선처럼 떠돌고 나는 떨어진 별이 굴러다니는 소리를 들었네 올리브 잎에 떨어진 빗방울이 피아노 위를 구르네 꾸덕꾸덕 폐교처럼 말라가던 작은 섬이 귀를 열고 가만히 시간의 결이 멈추는 풍경을 듣고 있네 음악은 나를 아주 먼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물론, 그 먼 곳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알아서 할 일이었지만, 적어도 음악만큼은 술집 주인처럼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다. 음악을 모르고 늙어간다면, 그것만큼 불쌍한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이 음악을 듣는 동안 시간은 멈출 것이며, 음악은 그 누구도 들
울림을 주는 시 한편 - 148 11월, 다섯 줄의 시 류시화 차가운 별 차갑고 멀어지는 별들 점점이 박힌 짐승의 눈들 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는 옛날의 애인 아, 나는 11월에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하이쿠를 말하며 한 줄도 너무 길다고 했지만, 다섯 줄은 너무 짧다. 인생이 그렇고, 시가 그렇고, 시인의 종말이 그러하다. 스물여섯 살에 죽은 이상(李箱)은 그 선이 짧고 굵으며, 85세에 생을 마친 미당(未堂:서정주)은 가늘고 길게 끌고 갔다. 하지만 마흔 두 살에 죽은 박정만은 무언가 아쉽게만 느껴진다. 가늘지도 굵지도 않은 나이, 이름 하여 사오십. 그 옛날의 애인은 잘 살고 있는지 더 이상 궁금해 하지 마라. 사랑은 일 년도 너무 길고, 사람 인생 오십은 너무 짧아서 몇 번의 사랑을 갈아치운 후에야 우리는 차가운 별이 되어 고요히 잠드는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147 패(牌) 이돈형 패에서는 뼈를 오랫동안 우려낸 맛이 난다 패와 패 사이 나를 미끼로 허공에 띄워 뜬구름을 잡아챌 때 훅, 훅, 훅킹의 감촉 패를 든 손에서 다리를 흔드는 버릇이 생겨나고 뼛속 깊이 스며들었던 고집스런 피 맛이 날 때 손 안에는 神이 포기한 외통수가 있고 내가 포기한 당신들이 있고 당신들이 포기한 뒤집힐 판이 있어 패를 까기 전에는 함부로 비웃지 마라 통뼈가 아닌 나는 자주 패를 쥐고도 웃음이 나는 늘 엿이었으며 좆이었으며 가끔은 쥐꼬리였음을 뒤집힌 패에서 다시 피 맛을 보지만 나는 한 순간도 패를 배신한 적 없고 패는 한 순간도 나를 놓아준 적 없는 패는 멀쩡해서 너무나 멀쩡해서 오늘도 패 하나를 까뒤집어 본다 혹시나 엿이거나 좆이거나 쥐꼬리였을 당신을 위하여 상처와 사랑은 얼마나 가까운가. 사랑에 관하여, 우리가 숨기고 있는 마지막 패는 무엇인가. 혹시, 당신은 사랑이 아닌 증오를 손아귀 속에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순간 쇼부(勝負.しょうぶ)를 쳐야 하는 게 우리네 생이라면, 결국 마지막에 웃는 자는 죽음밖에 없을 것인데, 우리는 왜 그토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을 하며 살아가는가. 속이거나 속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46 몽유 산책 안희연 두 발은 서랍에 넣어두고 멀고 먼 담장 위를 걷고 있어 손을 뻗으면 구름이 만져지고 운이 좋다면 날아가던 새의 목을 쥐어볼 수도 있지 귀퉁이가 찢겨 있는 아침 죽은 척하던 아이들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이따금씩 커다란 나무를 생각해 가지 위에 앉아있던 새들이 불이 되어 일제히 날아오르고 절벽의 호주머니 속에서 동전 같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올 때 불현듯 돌아보면 공중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있다 거의 사라진 사람이 있다 땅속에 박혀 있는 기차들 시간의 벽 너머로 가고 있는 귀는 흘러내릴 때 얼마나 투명한 소리를 내는 것일까 나는 물고기들로 가득한 어항을 뒤집어 쓴 채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현실이 꿈이라면 우리는 그저 깨어날 일만 걱정하며 살아갈 텐데. 과거에 저당 잡힌 미래 따윈 안중에도 없이 우린 오늘만을 즐기며 살아갈 텐데, 사랑할 텐데. 나비가 되어도 좋고 잔나비가 되어도 좋은 게 꿈이지만, 현실에서까지야 그럴 수는 없지. 나비가 될 수는 없고 잔나비가 될 수는 없고. 그저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돈 벌고, 그저 잔나비처럼 재주 부리며 돈 벌어야지. 언제나 꿈보다 해몽을 믿고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45 살아남은 자의 기쁨 박상천 한 영혼이 먼 길을 떠났다. 까만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방명록에 사인을 하고 봉투를 내밀고 영전에 꽃을 바치고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유족들을 위로하고 영정을 뒤로 하고 나오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웃으며 반갑게 악수를 하고 함께 모여 담배를 피우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명함을 나누고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먼저 간 그에 대한 추억을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고 사업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은 혀를 차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지만 아, 먼저 간 그가 마련해준 이 기쁨의 자리, 기쁨의 자리. 여간해서는 사촌도 만나기 힘든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는. 사촌을 넘어, 5촌 당숙과 6촌 그리고 사돈의 팔촌은 모두 옛말이 되어버렸다. 형제, 부모자식 간에도 일 년에 두세 번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다지도 멀어지게 만든 것일까.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우리를 몰고 가는 것은 누구인가. 가족마저 포기하면서까지 죽도록 일을 해야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정치와 가족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스펙이나 쌓으며 개미처럼 있는 힘 다해 일하다 죽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누가 가르치고 있는가. 장례식
칸타타 사탕가게 김현서 사탕가게는 네거리 약국 옆에 있다 가방은 무겁고 새벽 두 시의 침묵은 아프다 오랫동안 졸음을 참으며 철심교정기를 낀 강가를 걷는다 매끈하게 빗어 넘긴 물풀 사이로 새로운 간판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불빛들이 삐걱거리는 거리 그의 다리와 내 다리를 합치면 완벽한 테이블이 된다 사탕가게로 가는 길은 다가갈수록 멀다 하반신이 잘린 채 웃고 있는 사과나무와 슈거파우더를 뿌리는 가로등 6월의 밤공기가 둥글게 모여 앉아 콧노래를 부른다 바닥에 떨어진 불빛들이 주르륵 몸을 타고 올라온다 흙이 묻어 있던 어린 시절의 사탕처럼 어둠 속에서 생글거리는 눈동자들 늦은 시간에 사탕가게로 간다 강물은 머리칼처럼 뒤엉켜 순조롭게 흘러가고 맥주 거품 같은 밤안개가 창을 들고 뿔뿔이 찾아온다 숨을 쉴 때마다 뚝뚝 떨어지는 은빛 물고기 떼 붉어진 밤공기를 마시며 나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어둠으로 두 뺨이 불룩해진 사탕가게 앞에서 사탕은 순수하다. 쓴 맛을 단 맛으로 속이지도 않는다. 달콤한 맛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은 사탕 장수의 농간이지 그것이 사탕의 죄는 아니다. 어릴 때는 사탕을 입에서 놓지 않고 지내다가 커가면서 사탕을 멀리한다. 이가 썩는 이유가 어디 사탕만
고백성사 - 못에 관한 명상1 김종철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 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 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가슴에 못을 박는다,라는 말은 들을 때마다 괜히 아팠다. 어머니가 철부지 어린 나를 타이르며 하셨던 말, 아버지가 사고로 아들 먼저 앞세우던 날 눈물을 흘리시며 하셨던 말. 그 땐 그렇게 아픈 말인 줄 몰랐는데 내가 나이 들어 생각해보니 그 때 나의 부모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이제야 그 정한(情恨)이 못대가리처럼 고개를 쳐든다. 그 때 박힌 못을 겨우 기억 속에서 빼어 보는데, 못이 파고들었던 가슴 저 아래쪽이 뭔가 모르게 뻐근하게 느껴진다. 추석은 가까워 오고 아버지 기일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휘어진 못처럼 엎드려 절이나 하는 수밖에. 부모님 가슴에 못이 박힐 때 내 귀에도 못이 박혔던 것은 아니었는지, 자꾸만 서글퍼지는 중추가절이었다. 박후기 시인 hoogiwo
서랍이 달린 여자 이주언 여자의 몸에 달린 기억들. 가시로 손톱 밑 찔러대는 것들. 찌르면서 부드럽게, 피 흘리며 고귀해지는 것들. 하나의 몸에 달린 치명적 기분들! 아랫배 서랍 열린다. 젖을 빨며 요람에 눕고 싶은 것들. 혈액으로 쏟아지기 이제는 지겨운, 가득한 하품과 지루의 표상으로 남은 것들. 캄캄한 궁에 들면 편안히 눈감는 것들이 붉은 눈동자로 흘겨본다. 쾅 닫아버려야지, 저것들! 그러나 해안 가득한 요람. 그 속에서 바둥거리며 뭇 생명이라 불리는 것들. 아직 이름 얻지 못한 것들이 운다. 입을 연다. 하나의 요람에는 하나의 발성법. 너희는 아직 하나의 서랍뿐이구나! 운다. 거미줄에 걸려든 태아가 운다. 끝없는 분열의 근원, 저 신생의 불안들에게 젖을 물린다. 뻥 뚫린 가슴으로 도대체 젖을 먹일 수가 없다구! 서랍 잃은 여자가 기억을 붕대로 친친 감고 있다. 바닥에 퍼질러 앉아 사라진 가슴 주워 모으고 있다. 꺼이꺼이 웃어주고 있다. 경멸의 눈빛들 바닥을 긴다. 이마에 달린 손잡이 잡아당긴다. 작다. 이 작은 서랍이 나를 지탱해주기를. 흙탕물 가득하다. 흙탕물의 역동 다 지났다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물결친다. 운다. 작게 운다. 너는 언제나 작게 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