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서 나고 자란 40~60대의 시민들은 저마다 협궤열차에 대한 추억을 하나씩 갖고 있다. 화차의 동력이 약해 높은 언덕을 오를 때면 승객들이 내려 걸어 올라간 뒤 언덕 정상에서 다시 태웠다. 메주고개와 흥덕지역에서 영통을 지나 원천으로 넘어가는 장승백 고개를 넘을 때면 동력을 잃은 기차가 한참을 뒤로 갔다가 가속을 붙여 올라가기도 했다. 용인신문 자매지인 ‘The Good People’ 1월호에 실렸던 수여선 협궤열차에 관한 기사를 독자들의 요구로 용인신문에 게재한다. □ 협궤열차를 아시나요? 일제강점기인 지난 1930년 12월 당시 전쟁 중이던 일제는 이천과 여주 등지에서 생산되는 쌀과 석탄 등을 수탈해 본국으로 이송할 목적으로 총 길이 73.4Km의 수원~여주 간 협궤열차를 개통한다. 당시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일제는 선로 폭이 표준궤인 1435mm보다 좁은 762mm의 협궤를 건설했다. 수여선은 소래지역의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건설한 수인선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제는 수여선을 통해 수원으로 이송된 쌀과 석탄 등을 다시 수인선을 이용해 인천으로 옮겼고, 인천항에서 선박으로 일본
‘용인의 산수이야기 저자’ 이제학씨와 함께 걷는 ‘한남정맥’-9 / 부아산~무너미고개 삼국사기 백제본기 시조 온조편에는 주몽(고구려시조)의 곁을 떠난 비류와 온조는 오간 등 열 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부아악에 올라 도읍이 될 만한 곳을 찾았다는 내용이 있다고 하는데 일부 사학자들은 이 부아악이 부아산(403.6m)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부아산은 이동면 천리 쪽에서 보면 산모습이 아기 업은 형상이라 이름이 그렇게 불리고 있다. 용인시내에 가까이 있는 산으로 등산객이 많이 찾는다. 부아산에서 남동쪽으로 내려서면 걷기 편한 능선 길이 이어진다. 계속 내려서면 마루금은 송전탑을 지나면서 공동묘지를 만난다. 묘지는 하고개 에코브릿지(동물 이동 다리) 양쪽에 있는 서울공원묘원다. 서쪽에서 에코브릿지로 내려서는 급경사로 동물 이동로가 아니라 동물 낙하 자살고지 같다고 선답자들은 얘기하곤 한다. 오른쪽 묘지를 통해 급경사를 내려서면 넓은 공터가 있다. 이 고개는 에코부릿지 터널공사를 하면서 학고개로 명명했지만 실제는 삼가리 아래 있는 하고개로 알려진 고개다. 오른쪽 급경사 절개지로 오르면 능선길로 명지대앞 덕골에서 오르는 길과 마주친다.
■ 터널 생겨 등산로도 변해 아차지고개 남쪽 가구단지 아래는 동백지구로 신시가지가 건설 중이다. 아차지고개를 질러 능선으로 오르면 잡목과 아카시아나무가 지저분하게 나뒹굴고 있다. 산 아래 소목장 철조망을 끼고 능선으로 들어서면 수 마리의 젖소들이 한가로이 누워 마루금을 찾는 정맥꾼들의 부산함을 여유 있게 보고들 있다. 단숨에 능선에 오르며 가구단지 위로 건물들이 보인다. 동진원마을로 한센병(나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전에 선거참모로 동진원마을 다방에서 한센환자 마을대표들과 만나 난생처음 그 분들과 악수를 나눌 때 식은 땀을 흘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비록 필연의 만남이지만 무엇이든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교훈으로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이다. 능선에 오르니 산속에 생각지 못한 건물이 나타난다. 전원주택이 능선을 점령했다. 주택을 끼고 앞으로 나서면 청덕마을아파트가 우뚝 솟아 있다. 초록색 철조망을 따라 가려면 민가로 내려서야 한다. 밭 옆으로 해서 산 능선으로 오르면 아파트 전면능선에 측량 삼각점이 있다. 아파트를 끼고 돌아 내려선다. 소나무가 빼곡한 숲길엔 가족묘지여서 ‘조용하라’는 흰 팻말 자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