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주는 시-68 비 오는 날 천상병 아침 깨니 부실부실 가랑비 내린다. 자는 마누라 지갑을 뒤져 1백 50원을 훔쳐 아침 해장으로 나간다. 막걸리 한 잔 내 속을 지지면 어찌 이리도 기분이 좋으냐? 가방 들고 지나는 학생들이 그렇게도 싱싱하게 보이고 나의 늙음은 그저 노인 같다. 비오는 아침의 이 신선감(新鮮感)을 나는 어찌 표현하리오? 그저 사는 대로 살다가 깨끗이 눈감으리오. 목 여사님(목순옥)도 남편 따라 하늘로 돌아가시고, 비 오는 날 인사동 〈귀천〉은 적요하다. 새 주인은 모르겠고, 비 맞은 우산만 탁자 밑에서 한 시름 젖어 있다. 만약 천당 가는 통로가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면, 아마도 손바닥만한 〈귀천〉 같은 곳은 아닐까. 150원은 몰라도 150억으로 막걸리 한 잔 마시긴 어렵지. 천당 가는 일도 마찬가지일 테고. 어차피 죽으면 많아야 한 평, 끽해야 한 줌인 것을. 내곡동은 어림도 없을 거야.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7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을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읽지 않은 책이 읽은 책보다 더 많이 꽂혀 있는 거실의 책꽂이는 사십을 넘긴 피곤한 내 모습이다. 좋게 말하면 익숙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타협적인 사색. 어느 순간, 길 없는 곳엔 발길을 주지 않고 익숙한 길만 고집하는 나. 늦은 밤 책꽂이 앞에서도 읽은 책만 또다시 꺼내드는 권태로운 영혼의 익숙한 손길을 거부하지 못한다. 세계의 닫힌 문을 쉼 없이 두드리던 열정을 두려움과 안락 따위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그 많던 패기와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6 하늘공장 임성용 저 맑은 하늘에 공장 하나 세워야겠다 따뜻한 밥솥처럼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곳 무럭무럭 아이들이 자라고 웃음방울 영그는 곳 그곳에서 연기 나는 굴뚝도 없애고 철탑도 없애고 손과 발을 잡아먹는 기계 옆에 순한 양을 놓아먹이고 고공농성의 눈물마저 새의 날갯짓에 실어 보내야겠다 저 펄럭이는 것들, 나뒹구는 것들, 피 흐르는 것들 하늘공장에서는 구름다리 위에 무지개로 필 것이다 삶은 고통일지라, 죽어도 추억이 되지 못하는 고통을 하늘공장의 예배당에서는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힘없이 잘린 모가지를 껴안고 천천히 해찰하며 내일이라도 당장 하늘공장으로 출근을 해야겠다 큰 공장 작은 공장 모두 하나의 문으로 통하는 하늘공장에 가서, 저 푸르른 하늘공장에 가서 부러진 손과 발을 쓰다듬고 즐겁게 일해야겠다 땀내 나는 향기를 칠하고 하늘공장에서 퇴근하는 길 지상에 놓은 집 한 채가 어찌 멀다고 이르랴 하늘에 올라가 309일. 영도조선소 내 85호 크레인(35미터) 위에 올라가 부당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목숨을 건 투쟁을 벌였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드디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죽으면 하늘나라에 간다는데, 노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5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박철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 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멀리 쑥꾹쑥꾹 쑥꾹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 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다시 한 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 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어느 한쪽,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 속 깊은 곳에서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살면 살아진다고 해서 삶인가. 한없이 여린 시인이 돈 4만 원 들고 찾아가는 영진설비는 세상의 저 먼 끝에 있다. 끝까지 가야만 끝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시는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4 울음이 타는 강 박재삼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 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가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강을 처음 보것네. 해질 무렵 가을 강변에 홀로 서 본 적 없는 그대여, 그것은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다. 내일이 막막하고 오늘이 지겹거든 그대여 한 번쯤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바라볼 일이다. 강물에 떠내려가는 게 어디 청춘뿐이겠는가? 회한뿐이겠는가? 강이 멀거든 근처 물 마른 샛강에라도 나가 수런거리는 억새의 품이라도 들춰보자. 거기, 유년의 그대가 숨어있을 지도 모를 일이니. 돈이 없어 중학교에 가지 못한 가난한 소년 박재삼(朴在森). 삼천포 여중 사환을 하다 김상옥 선생을 만나 시를 알게 되고, 대학도 가고 시인이 된다. 시인이 되어 다시 저무는 강 앞에 섰을 때, 가난은 여전히 그의 옷깃을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3 납골당 신축 감리일지 천서봉 흉흉히 날 저문다. 魂의 입주일이 가까워오면서 이마에 손수건 붙인 사람들 출입 잦다. 언덕배기로부터 내닫는 바람은 당신의 할머니, 나의 삼촌이 통성명하는 것이므로, 풍하중에 대한 보강을 요구하다. 한바[飯場], 아주머니의 고단한 손금이 허기를 불러 모으고, 작업 중 음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다. 보아라, 베어진 둔덕을 쥐고 휘청거리는 억새의 관절을, 관절을 꺾으며 죽은 자의 아파트가 자라고. 골골골 흘러내리는 위태로운 저녁의 벼랑들. 인부들이 모두 돌아간 뒤 드럼통에 남겨진 잔불을 끄다. 시공의 이음새가 매끄럽지 못하다. 비를 가진 구름이 북촌에서 몰려오는데 거친 내 영혼은 재설계가 가능할까. 흉측하게 드러난 계단탑 단부가 산자의 오만처럼 단단하다고 공문 띄우다. 어둠이 시끄럽다. 나무들이 자주 공사장까지 내려온다. 미리 집을 보러 오는 혼의 처연함. 입주를 위해 꼬박꼬박 부어온 햇살의 계좌는 숲처럼 두텁게라는 시방을 지우고 내 귀가 종이짝처럼 얇아졌다고 쓰다. 계통수를 묻어둔 자리에 말뚝을 박다. 지하 깊숙이 흐르는 물길에 대하여, 별들과 협의하다. 천서봉, 그는 건축가다. 납골당 신축현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2 술래의 잠 박석수 1 일곱 살의 골목에는 야도를 찍어내는 두려움이 와아 와아 햇살처럼 쏟아지고 스무 살 이후의 도시는 대패날이 되어 나를 문지르고 있었다. 귓속을 웅웅대는 憂愁의 빛깔을 끌어내 내가 완전한 자유를 깁고 있을 때 내 生涯는 蘭이와 눈 맞추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꽃이 찾는다 - 幻覺의 다리에 물구나무선 나의 일곱 살 호주머니에서 쏟아지는 천진한 기침을 숨었던 이마들은 辨明하고 나는 자꾸 목이 말랐다. 2 渴症을 뜯는 기억의 바다 더듬거리는 스무 살을 소리치다가 치다가 찢어진 냄새여, 숨찬 야도여. 빌딩 사이에서 彷徨하는 內界의 노오란 잠은 험준한 산맥을 넘어온 밤바람을 만난다. 만나는 손바닥. 握手의 안에서 눈뜨는 가롯 유다의 야도 소리. 스무 살 진한 내 感性의 바다를 햇살처럼 헤엄쳐 가는 물고기의 魂이여, 視野에서 흔들리는 노래여, (중략) 4 5 야도가 飛翔하는 울음 가운데서 뽑은 옥매듭진 스무 살의 잠이여, 핏줄을 타고 흐르는 야도의 녹슨 바람소리여, 自己를 監禁하는 누에의 作業이여, 일곱 살의 골목에는 야도를 찍어내는 두려움이 와아 와아 햇살처럼 쏟아지고 스무 살 이후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1 삼베옷을 입은 自畵像 조용미 폭우가 쏟아지는 밖을 내다보고 있는 이 방을 凌雨軒이라 부르겠다 능우헌에서 바라보는 가까이 모여 내리는 비는 다 直立이다 휘어지지 않는 저 빗줄기들은 얼마나 고단한 길을 걸어내려온 것이냐 손톱이 길게 쩍 갈라졌다 그 사이로 살이 허옇게 드러났다 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치마를 펼쳐들고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입은 두꺼운 흰 삼베로 된 긴 치마 위로 코피가 쏟아졌다 입술이 부풀어올랐다 피로는 죽음을 불러들이는 독약인 것을 꿈속에서조차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 속이 들여다보이는 窓봉투처럼 영롱한 사람이란 얇은 비닐봉지처럼 위태로운 것 명왕성처럼 고독한 것 직립의 짐승처럼 비가 오래도록 창 밖에 서 있다 스티브 잡스가 영면했다. 나는 아이패드의 열렬 유저이기도 하지만, 아이패드를 만질 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직관과 단순함의 철학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나 역시 시를 쓸 때 예의 그 단순함의 미학을 고민했기 때문에, 부음을 듣던 어제 아침과 오늘 저녁, 그의 타계가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버스 안에서, 잡스의 부음을 듣고 조용미의 시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을 생각했다.
■ 울림을 주는 시 한 편-60 풀 잎 강은교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血)를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 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 풀 잎」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암기한, 제 시집 두 권을 갖고 있는 지금도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시. 1971년 강은교 선생의 첫 시집 『허무집』에 실렸던 작품인데, 당시 다섯 살이었던 내가 이 시집을 읽었을 리 만무했을 터. 일곱 살 무렵, 입학을 목전에 두고 겨우 한글을 깨치고 더듬더듬 책꽂이의 책등을 훑어대던 무료한 여름 한낮. 마루 한쪽 벽에 걸린 작은 액자 속의 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로 시작되는 시를, 그 뜻을 알지도 못하면서, 봉당에 앉아 흙 파고 놀다가 하릴없어 중얼거리며 외워버렸다. 나이 차 많은 형님이 문청이었던 관계로 시집을 구해 읽고 그 중 「풀잎」을 액자에 옮겨 걸어
울림을 주는 시 - 59 태업의 강도 백상웅 나는 오늘 태업하오. 볼펜만 돌리며 껌을 씹겠소. 밥을 축내다가 변기에 앉을 때, 힘은 그 때 쓰고 되도록 멍해지겠소. 화분에 심은 벚나무는 그러다가 죽었소. 근육의 긴장을 풀어서 꽃피지 않았단 말이오. 비명횡사한 나무가 불쌍해 보여도, 나는 의자와 한 몸이 되어 의자에 물들라오. 학연, 지연, 혈연 모두 동원하여 조금은 딱딱해도 의자와 붙어먹겠소.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날, 조직이 낡아가고 동네가 부러지고 가문이 주저앉아서 다리 밑에 버려져도 꿋꿋하게 버티겠소. 월급은 꼬박꼬박 받아 챙길 것이오. 나도 꽃 피는 법은 배워야지 않겠소. 아침부터 저녁까지 쥐 죽은 듯이 있을 것이오. 그러다가 순식간에 죽어도 나는 모르오. 나는 의자니까, 몸이 굳어 있어도 오늘은 태업하오. 태업은,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의 꿈이다. 빨리, 좀 더 빨리 자라고 좀 더 크게 거두어들이는 것만을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신자유시대의 자본 교두보 대한민국에서 태업은 돈 없는 모든 사물의 꿈이다. 백상웅 시인은 젊다. 생의 태업을 꿈꾸는, 룸펜 같기도 한 그는 전도유망하다. 적어도 시에 대한 자세만 놓고 볼 때는 그러하다. 생활의 앞길은
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58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설명이 필요 없는, 극작가 브레히트의 시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남주 시인이 옥중에서 번역해 같은 제목의 책으로 엮었다. 사랑은, 도덕이라는 잣대 앞에서 자주 발가벗겨지곤 한다. 어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위정자들은, 때론 자신도 지키기 못하는 도덕적 덕목을 약자에게 강요한다. 얼마 전, 카다피의 리비아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15, 17, 18세 딸을 참수시킨 아버지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어린 제 딸들이 당할 때 아버지는 무엇을 했나? 남의 일일 뿐인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간 아녀자들이 몇 해 뒤 조국에 돌아왔을 때, 이 나라의 남자들은 무엇을 했나? 환향녀(還鄕女)들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죽이거나 자진을 시키거나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화냥년이란 말의 유래가 그로부터 비롯된다. 제 여자 하나 지키지도 못하면서 도덕을 들이댄 것이다. 왜 도덕과 윤리의 잣대는 약자에게만 통용되는 말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울림을 주는 시 한 편-57 쓸쓸한 환유 이성목 살아있는 뱀으로 술을 담글 때, 술병에 술을 가득 채우지 않으면 뱀이 술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견딘다고 한다. 그 허기진 뱀은 제 꼬리를 조금씩 잘라 먹으며 목숨을 부지한다고 한다. 훗날 그런 술병 속에는 눈을 치켜뜨고 죽은 뱀의 머리통만 주먹만 하게 불어서 둥둥 떠 있다고 한다. 양파가 붉은 망을 뚫고 푸른 촉을 내밀었다. 뿌리도 없이 양파의 몸을 뚫고나온 촉에 손을 대는 순간 둥근 양파의 몸이 푹 꺼졌다. 양파의 촉은 제 몸을 빨아먹으며 한 방울의 육즙도 남지 않을 때 대궁을 부풀리며 자진한다. 몸에 없는 것이 아플 때가 있다. 오른 쪽 다리를 잘라낸 친구는 다리를 잘라낸 뒤에도 발목이 시큰거리고 발가락이 꼼지락거린다고 한다. 잠결에 발바닥이 아파 뒹굴며 발에 손이 갔을 때, 발은 어디 있는지 잡히지 않고 뿌리 없는 통증은 며칠을 그렇게 몸을 다녀갔다고 한다. 다리를 자르지 않았다면 목숨을 구하지 못했으니, 그는 날마다 몸의 일부를 떼어주며 내생을 향하여 절룩절룩 걸어갈 것이다. 나는 꼬리뼈를 퇴화시키며 사십 년을 살아 왔다. 날개 죽지를 지우며 몸 안으로 숨은 지 사십 년이 지났다